홍대 앞 새벽 세시: 감성과 자본의 격한 충돌의 시공간

 

성기완, <홍대 앞 새벽 세 시>, 사문난적, 2009


홍대 앞 새벽 세 시. 나에게도 홍대 앞 새벽 세 시가 있었다. 동행이 있으면 음악이 크게 나오는 맥주집에 있었고, 동행이 집에 가고 나면 홀로 피씨방을 향했다. 5만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언젠가 소녀시대의 ‘Gee’를 무한 재생시켜 놓고 첫차를 기다린 적이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사이를 역주행하는 심신이 지친 1인. 출근하는 사람들과, 둘 다 피곤한 눈빛이었지만 뭔가 다른, 눈을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낯설었다.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그렇게 나를 낯설게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머물자, 시인이자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 성기완의 <홍대 앞 새벽 세 시>가 궁금해졌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

그는 기타리스트이다. 1집 앨범 “Self-Titled Obsession”을 2000년에 발표했으니, 훨씬 전부터 홍대 앞을 누볐을 게다. 그에게 ‘누비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경제적 부는 모르겠지만 기타 하나 등에 매고 거침없이 걸었을 테니, 그리 나쁜 표현은 아니겠다. 여기엔 그가 만난 동료 뮤지션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크라잉 넛, 달파란, 황신혜 밴드, 서울전자음악단, 장기하와 얼굴들 등은 지난 10년 동안 각자 다른 흔적을 남긴 자유로운 영혼들. 그는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홍대 인디문화의 기원을 찾아간다.

책에서 인디 뮤지션들의 배고픈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배고프지 않은 인디 뮤지션이 어디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그는 술자리에서의 비화를 들려주며 ‘이렇게 힘들게, 치열하게 살았어’라고 말하기보다 음악에 집중해 그들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홍대 문화나 인디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귀 기울일 만하다. 나 또한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이야기가 나올 때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신이 났으니까.

또 음악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게는 도움이 될 책이다. 음악에 대한 글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텍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청자에 따라 느껴지는 정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음악보다 뮤지션의 히스토리나 주변에 집중하는 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이야기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는 각종 루머를 상기하지 않는다. 그저 밴드의 사운드, 가사를 언급하며 ‘찌질이 세대의 시대적 송가’라 일컫는다. 열정 혹은 쓸쓸한 담배연기 가득한 홍대 무대에서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시인: 시공을 노래하는 사람

지금까지 이야기를 보면 음악이나 인디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이 책에 별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그는 시인이다. 시인은 가시적 공간을 상상의 공간으로 치환하는 ‘재주’를 가진 자들이다. 때문에 시인은 사물을 보는 깊고 예리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홍대 앞 새벽 세 시에 목격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한다. 흥분이 절정에 다른 이들, 술 취해 비틀 거리는 이들, 외로움에 치를 떠는 이들, 지독히 혼란하거나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는 홍대 앞 새벽 세 시. 평범할 리 없다.

그가 주목한 공간은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하루 종일 물건들의 잠을 재우지 않는, 물건들의 유곽’이며, ‘불빛을 스물네 시간 켜놓고 사람들의 욕망이 자기 논리 밖으로 비어져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는 늦은 밤, 이른 새벽 편의점을 지나며 이 공간의 지령을 듣는다. “단 1초라도 불빛을 끄지 말고 욕망을 관리하라.”(p. 154) ‘아름다움, 현명함, 부드러움, 강함, 심지어 참선까지도 관리 당하는 세상’에서 편의점은 ‘인간의 일회용품의 최말단 소비에 관한 욕망을 자기 밑으로 회수’한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컵라면을 먹고, 순간의 상쾌함을 체험키 위해 콜라를 마시고, 사랑을 하기 위해 콘돔을 산다. 쉽게 소비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1차적 의미를 묻지 않는다. 컵라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콜라는 어디서 왔는지, 콘돔은 ‘왜’ 필요한지 중요치 않다. 물론 편의점에서 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기(生氣)를 강요하는 형광등 불빛, 바코드 문신을 하고 발가벗겨지기만을 기다리는 물건들, 그리고 내 몸짓을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까지.

“너는 물건이다. 니가 물건들을 고르는 것 같지만 실은 물건들이 너를 고르는 것이다. 니가 창녀를 고르는 줄 알지만 그건 오해다. 실은 창녀의 강한 생활의 눈빛이 널더러 날 고르라, 고 해 너는 그 창녀를 고르는 것이다. 물건들이 너를 본다. 물건은 너를 택하여, 예쁜 일회용 비닐 옷을 던지고 우물우물 흉하게 씹히거나 후루룩 더럽게 마셔지고 똑 분질러지며 북 찢어지고 휘리릭 넘겨진 다음 죽어버린다.” (p. 24)

음악과 편의점이 만나는 시공간이 홍대 앞 새벽 세 시다. 인간의 뜨거운 숨과 자본의 욕망이 격하게 충돌하는 곳. 책을 읽다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위해 줄을 선 모습은 ‘인간 소시지’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모든 책이 마찬가지겠지만,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천천히 읽는 게 좋다. 일을 하지 않아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시간 새벽 세시. 모든 것이 빠른 지금,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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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르바 2009.06.24 15:13 address edit & del reply

    홍대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3호선 버터플라이의 '꿈꾸는 나비'가 떠올라 울먹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 그런데 그땐 새벽 1시였죠.

    • 반디앤루니스 2009.06.24 15:29 신고 address edit & del

      아마 혼자셨나봐요..
      혼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 저 멀리 스쳐가는 사람들.. 어둠.. 기억들.. 이것들이 모이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전 아직 울먹했던 기억은 없는데, 순간 방향을 잃어 멍했던 기억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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