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5.02.2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2. 2015.02.12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3. 2015.02.05 『도시의 시간』 - 도시의 멜로디
  4. 2015.01.1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5. 2014.12.31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6. 2014.12.23 《고래》 - 천명관을 처음 만났다
  7. 2014.12.05 다시, 소설
  8. 2014.11.07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텅 빈 야구장에서
  9.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10. 2014.09.30 《그랑 주떼》 - 주떼, 주떼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2013


대학 졸업반 시절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문학 관련 잡지도 찾아 읽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할까 고민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요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뒷장에서 이 책의 편집, 디자인, 마케팅을 누가 했는지 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찾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봤었다. 요즘은 통 못 봐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토록 꿈꾸던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학이라도 간 걸까.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새해」의 주인공은 성진과 정연이다.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는 옛 여자친구 정연의 요구에 성진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헤어진 남자에게, 그것도 6년 전에 준 선물을 내놓으라는 정연의 요구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건, 고가의 명품인 줄 알았던 그 시계가 알고 보니 짝퉁이었던 것. 시계를 되찾기 위해 성진과 정연은 다시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둘은 연인이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성진의 대사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29~30쪽)

둘이 사귈 때는 영화 속 여배우의 대사마저도 내 것 같았다는 정연의 말에 성진은 다 남의 것이고 내 건 하나도 없다고 자조한다. 정말 그렇다. 사랑할 때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온갖 사랑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 사람이 내 것 같지만, 헤어지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품인 줄 알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짝퉁만도 못한 싸구려로 전락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건 하나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성진이 언젠가 둘이 함께 갔던 휴양지 호텔방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연인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도 기억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어서 인간은 아무리 이별이 슬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던 그 남자와 그 여자. 문학을 사랑하던 그 남자를 동경했던 그 여자는 이제 그를 동경하지도 않고 남자를 따르는 대신 택했던 길을 걷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던 소설을 읽고,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는다. 가끔 그를 추억할 뿐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정말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기고 간 '내 것' 덕분임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다시 사랑할 때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내 것'으로 취했을까?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블로그에 올리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다른 서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부재, 아쉬움, 무력하고도 귀한 감정이 담긴 책을 읽을 땐 그 책을 읽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단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읽어야 좋던가요?

저녁 퇴근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할 일 없는 주말 낮 등 여러 시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은 옛 애인, 돌아가신 부모님 등 과거의 인물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아서 팍팍한 현실을 잊고 추억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에 읽기 좋았습니다. 단편집이라서 한 편씩 읽고 잠을 자기에도 좋았고요.

● 이번 서평에는 쇼키치님 개인의 사연이 퍽 담겼습니다. 이 서평을 마친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청춘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대 초, 중반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책에 실린 「벚꽃 새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학 졸업 무렵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렸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서평을 썼는데요, 서평을 마치고 나서는 그 사람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 펜벗 앨범을 다시 열어 쇼키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독자와 서평 블로거로 보냈고, 30대는 '지은이'로 거듭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책을 써 볼 생각이라면, 어떻게 쓰실 건가요?

20대에 고시, 취업, 전직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소설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거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책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처럼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처럼 기발한 발상이 빛나는 인문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4개월간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여쭤봐도 될까요- ‘펜벗’은 어떠셨어요?

비록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매달 같은 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평을 공유했으니 이 또한 더없이 소중한 ‘벗’이 아닐까요. 그동안 다수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보았는데, 서로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공유하는 활동은 없었기에 펜벗 활동이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펜벗 1기로 활동한 지난 4개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쇼키치'님은?

블로그 ‘키치의 책다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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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정유정 | 『내 심장을 쏴라』 | 은행나무 |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1회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 세계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뚜렷한 개별성이 있다. 텍스트의 가독성과 재미를 중시한다. 한국판 나오키상(直木賞)이라 할 수 있다. 세계문학상은 읽기 쉽고 몰입도가 높은 대중적인 소설이 꾸준히 선정됐다. 도발적인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 빠른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갖춘 작품이 세계문학상의 표적이 된다.

1회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질문함으로써 꽤 충격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신경진의 『슬롯』은 도박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백영옥의 『스타일』은 신세대 한국여성의 진화된 원형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잘 읽히면서 도발적이고 신선한 점이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공통적 분모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한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지만 보다 '문학적'이다. 요컨대 재미와 무게를 함께 지녔다. 최근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내 심장을 쏴라』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소설은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삶에서 열정을 얻는다.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1인칭 화자 이수명, 그와 같은 날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력장애인 유승민. 둘의 첫 만남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부터 친밀한 우정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생기 있게 담겼다.

수명과 승민은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수명이 내면으로 자신을 축소한다면, 승민은 외면을 향한 방향에 집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명과 승민은 모두 과거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정유정 작가는 두 인물의 트라우마와 그것에 함몰되어 일상이 뭉개지는 현실의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과거에 봉착되어 있던 수명과 승민의 내밀한 비밀이 밝혀진다.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고백으로 깨달아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서사는 느리다. 몰입하기엔 미지근하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게 되면 여태까지 소급되어 응축된 이야기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독자의 가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 수명이 오랫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던 삶의 참된 진실을 인식하고 용기를 표출하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울림이자 카타르시스다.

『내 심장을 쏴라』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자아'와 '자유'다. 폐쇄된 정신병동이라는 외면의 벽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기를 원하는 내면의 열정에 닿아있다. 두 인물의 과거의 아픔과 이에 구속된 일그러진 현재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못 두었을 때를 그대로 은유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빠진 채 비본질에 대한 집념과 고집만이 반복될 뿐이다. 자유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식은 자아의 역동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의 파괴, 또는 내적 울림과의 단절에 불과하다.

두 인물의 자유 성취와 자아 성찰에 대한 공전(空轉) 행태는 승민이 병원을 탈출하여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활공하는 바로 그 순간, 앎과 행복의 실현으로 반전된다. 승민은 끝내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소설의 마지막 수명이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죽은 승민은 수명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고. '새' 아니면 '비행기'냐고. 이에 대한 수명의 답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는 것.

한 사람의 자유는 타자의 간섭이나 외부의 구속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 또한 타자가 아닌 자아의 추동, 즉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生)의 강렬한 욕망은 항시 자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사는 것은 분명한 진리다. 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 명제 앞에서 삶은 때때로 외부를 의식하고 타자에 주눅들며 방황한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내가 내 삶의 주어로서 존재하며 약동할 때 빛을 낸다. 내 실존은 누구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 말이 진리라면, 외부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내 심장을 쏴 봐.

굉장히 잘 쓴 소설이다. 서사를 풀어가는 능숙함과 재치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순간순간에 감동과 재미가 녹아 있다. 정교하고 정제된 묘사와 독자의 호흡을 쥐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이 훌륭하다. 이런 소설에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자유와 자아의 고찰에 번민하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소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다윗의서재'님은?

순수한 책 읽기와 건강한 지적 소통을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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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 도시의 멜로디


박솔뫼 | 『도시의 시간』 | 민음사 | 2014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서울 토박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은 왠지 '토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도시다. 많은 사람이 그리는 '고향'은 없지만 서울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면 포근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광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같은 특색이 드러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살지만 저마다의 색깔이 빛나는 곳.

서울의 이질적인 면을 깨닫게 된 것은 지방에서 살던 친척 오빠가 잠시 우리집으로 와서 대학을 다녔을 때였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 다녔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난 내가 살던 곳이 무척이나 익숙했고, 내가 사는 도시가 좋았다. 그러나 오빠의 입장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이전에는 잘 올라오지 않았던 서울에서 부모와 형제들 없이 생활해야 했을 어려움과 익숙하게 살았던 그곳과 달라 도시의 이면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함께 이야기하던 중 '서울은 참 차가운 도시'라 했던 오빠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가 있고, 들어갈 집이 있는 나에게는 이 도시의 차가움과 흐린 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오빠에게는 도시의 시간이 삭막하고, 사람들이 어디든지 많은 곳이지만 고독하여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도시의 시간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은 나와 우미, 우나, 배정이 보냈던 십 대 시절이 아닌 지금이다. 박솔뫼 작가가 느릿느릿 리듬의 속도를 내며 한창 순수했고, 발랄했고, 때론 감수성이 짙었던 시절에는 그 시간의 막막함을 몰랐던 것 같다. 어른이 된 후에 이 책을 읽으니 그들이 느꼈던 암흑과 그들이 함께 보냈던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이 위로가 되고, 꿈이 되었던 시절을 깨닫는다.

나는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정작 뭐가 되어 가는 것은 없었다.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되는 것 없이 변하는 것 없이 완성되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가는 것도 없다. 그것만 꼭 그렇게 될 것이다. (46쪽)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도시의 시간』은 회색빛이다. 음울하고 차가운,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감이나 들뜬 기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류는 대단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 달나라에 갈 것처럼 더 발전되고, 안정된 사회를 생각했을지도. 그러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무심함은 어쩌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고민했을 흔적이자 동시에 회색빛 아래에서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나와 우나는 십 대인데 중고생은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채로 타는 냄새를 지나쳤다. 우나가 가져온 음악은 도서관 휴게실보다 한밤의 미분양 아파트와 더 어울렸다. 밤이라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기가 긴장되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잡은 채로 시멘트 덩어리 사이를 걸었다. 우나는 기타 하나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모두 먼 곳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연기가 향해 가는 곳, 웃음소리가 떨어지는 곳, 그보다 먼 곳을 노래했다. 우리가 어두운 밤과 음악에 집중하는 사이 우우우 우우우 시멘트는 그렇게 노래했을지도 몰랐다. (55쪽)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네 명의 청춘들의 이이야기는 시작과 끝도 없이 도시의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들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책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삶을 유추할 뿐이다. 『도시의 시간』은 경장편에 속하는 짧은 소설이지만 호흡이 굉장히 느리다. 책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들을 그리는 것 같지만 세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삶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동시에 그들의 감정선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무엇 하나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청춘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명확한 고조가 드러나면서도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그 호흡이 느려 무엇을 이야기하기에 이처럼 모호하고 단조로울까 싶었다. 어느새 작가의 호흡으로 들어가 까마득했던 그 시간을 기억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방울'님은?

책도 하나의 인연이라 생각하며,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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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을 좇는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고,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질적 대칭과 양적 비대칭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빛과 어둠. 질서와 무질서. 의미와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디 마이너스》, 500쪽)



1997년과 2007년 사이에도 한국에 학생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디 마이너스》의 저자 손아람은 1997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이 책에는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간절하게 바라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던 ‘잃어버린 10년’이 담겨있다. 《디 마이너스》는 소설이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애호가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현재사’이기도 하다.


Editor_정혜원 | Photo_Goro


프로필_손아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는 용산참사의 법정 내용을 다룬 소설 《소수의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 가 있다. 한겨레 월간지 《나들》의 인터뷰어로도 활동했다.



 



Q. ‘디 마이너스’는 수업에서 낙제를 모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점수예요. 제목이 왜 F가 아니라 D-일까 생각했어요. 겨우 빌어서 얻어낸 최악의 점수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죠. 꼭 2000년대 당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세상에 매긴 점수 같다고나 할까요.

사실 F와 D-는 성취도로 봤을 땐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F는 너무 명백한 멸종이에요. 도태에 가까운 점수죠. D-는 명목상 살아 붙어 있는 점수이고요. 이 소설 속 운동권 인물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는 영역도 그렇죠. F와 D-의 경계. 2000년대 당시 많은 노동자의 삶도 이미 바닥까지 쳤는데, 자기들은 살아있고, 희망이 있는 싸움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죠.



Q. 소설에선 그 당시 있었던 사건들이 자세히 언급돼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 또한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요. 《디 마이너스》를 쓰면서 친구와 지인의 경험을 많이 참고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책에 담긴 여러 사건,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에요.

소설에 고유명사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세계와의 거리를 최소화해 놓으려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뒤섞어 놓는 것은 제가 고집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고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오래전부터 그때의 광경을 글로 쓰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네. 다른 작가들이 쉽게 쓸 수 없는 제 자산 같은 것을 하나 쓰고 싶었어요. 전 그걸 쓸 수 있는 위치에서 목격하고 경험했어요. 어렴풋이 다들 학생운동에 대해 알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단 말이에요. 단지 유희적인 차원에서 쓰기에는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고. 그래서 고민하다 이것저것 다른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저번 장편 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보다 언론 쪽 일을 많이 했는데, 다른 쪽에서 몸담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학생운동 이야기만을 가지고 소설을 한다 했을 때 굉장한 치기라든가 편향된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어요. 한 세계를 온전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고요.



Q. 자신 있게 쓴 이 소설에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하세요?

다 담겼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런데 가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담은 부분에 대해선 만족해요. 학생운동에 직접 몸담았거나 관심이 컸던 사람들이 대부분 현재 좌파라고 불리는 분들이에요.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선 뜻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디 마이너스》에서도 인물들은 각각 다른 정파를 이루어요. 같은 좌파여도 방법과 방향이 달라서 갈리죠.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까운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이러한 관계에 따라 결정적으로 움직여요.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파라는 것도 제가 느끼기에는 인간적인 부분에 많이 좌우돼요. 물론 그들 스스로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사고, 정치적인 사고를 하지만, 사실 인간적인 중력 같은데 끌려가는 것들이 굉장히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Q. 《디 마이너스》에 나오는 인물 중 자신은 누구와 가장 가까워요? 주어진 형편은 소설에서도 미학을 전공한 주인공 태의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에게 조금씩 걸쳐 있는 것 같아요. 취하면 랩인지 노래인지 시를 읊는 고학번 현승 선배, 세상의 삐딱한 현상을 절대 못 참고 책임지려 하는 미주. 작가인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요.

태의에 가깝긴 하죠. 스스로 매우 흔들리는 인물이잖아요. 확신도 없고. 저도 그래요. 친구들이 대부분 학생 운동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저는 그 조직논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지금 작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깊숙이 들어가면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요. 큰 틀의 운동을 위해 양보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Q. 저울질하다가 스스로 합리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한가요?

그렇다기보다 전 예술가와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운동에 이따금 합리해도 지속적으로 그 조직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지금도 작가로서 굉장히 정치적인 글을 쓰는 편이지만, 특정한 진영 안에 들어가 있진 않죠.



Q. 《디 마이너스》에는 《소수의견》에 연속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요.

이후에도 한 작품 정도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어요. 《디 마이너스》를 통해서 젊은 시절 성장했던 사람들이 《소수의견》이라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그 이후, 또 다른 대목의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결말을 한번 내고 싶어요.



Q. “너희가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이 말이 많이 나와요.

이 책은 제 친구들, 제 젊음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꿈꿨던 세계와 그들의 꿈에 바친다는 느낌으로 썼고요. 재미있는 게 이 소설은 같은 장소에서 시작과 끝이 났어요. 우연히 어떤 술집에서 진우의 모델이 된 친구를 만나서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사진도 보고 그랬는데요, ‘아, 이들과 이러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오늘부터 우리 이야기를 써 보겠어.’하고 시작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상처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80년대 영광된 싸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운동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싸웠고, 어떻게 세상에 스며들어 갔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내 젊음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끝낸 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 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술집이 그 술집인 거예요.



Q. 작가로서 세상에 책임을 느끼세요?

글을 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꼭 해야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난 작가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제가 무언가 강렬한 책을 읽었을 때 당장 내가 혁명적으로 바뀌진 않지만, 그 세계에 대한 시각이 매우 강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수많은 책을 통해 경험이 쌓였을 때 한 인간이 달라지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곧 사회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전 그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잘 쓴 글 이상을 쓰고 싶어요. 위험한 글에 가까운 느낌.



Q. 글로 세상을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이네요.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던 만큼 세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무언가를 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고민은 작가가 된 이후부터 시작했죠. 이게 직업이 됐단 말이에요. 학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놀다가도 가끔 재미있는 글 하나를 쓰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직업이 된 순간부터 거기서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좀 더 큰 걸 바라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더 큰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택했을 거야, 생각하게 됐죠.



Q. 언젠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쓰셨어요. “나는 세계가 지성적인 곳이기를 열렬하게 희망한다. 지성적인 윤리와 지성적인 사악함과 지성적인 구조논리와 지성적인 저항.” 지성이란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 배워야 얻는 건 아니잖아요.

성찰에 가까운 느낌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공정하게 보려고 하는 노력들. 그런 것들을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늘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늘 정교하게 입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지점에서 자기가 얽혀 있을 때는 매우 비겁해지는 모습을 많이 봐요.



Q. 존경하는 인물상이 있어요?

네. 인물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전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너무나 똑똑하면서 유약한 종(種)의 사람들은 제 주변에 아주 많아요. 그런 사람들의 한계를 많이 봐 오면서 실망도 컸고. 포레스트 검프는 강인하지만 바보예요. (소설 속) 진우도 어떻게 보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보 같지만,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주변을 감동시켜요. 세계가 바뀔 여지를 만들어가는 인물. 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우 존경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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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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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을 처음 만났다

 

 

천명관 | 《고래》 | 문학동네 | 2004

 

천명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답니다. 꽤나 유명한 소설가인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이라는 말에서 오는 기대와 설렘보다는 오히려 밋밋하고 그저 그럴 것이라는 편견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처음'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대개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한 짜릿한 설렘을 느끼게 마련인데 말이죠. '첫눈', '첫사랑', '첫키스' 등 처음으로 시작되는 이런 숱한 말들은 그 흔함과는 별개로 각별하고도 강렬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처음'이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언어인 동시에 가장 개별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러한 개별성 때문인지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첫'경험은 항상 새롭고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워 듣게 됩니다. 어쩌면 '처음'은 가장 진부한 주제인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느꼈던 한국 소설에 대한 편견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고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묘하게도 천명관의 소설 《고래》는 그가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그럴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은 기존의 한국 소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지요. 뭐랄까, '신선하다'고 하면 식상하고, 이게 과연 소설이라는 장르에 제대로 속하기나 할까 의심부터 드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파격의 연속이지요. 그는 형식 밖의 형식으로 자신만의 글(또는 소설)을 쓴 셈입니다. 

 

그의 이력이 궁금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국어국문학이나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내가 어느 시점에서 한국 소설과 멀어진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만 보였던 창작 분야에서마저 산업화의 영향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소설이라는 특정 형식은 판에 박은 듯 일정하고 내용만 조금 달라진 수많은 소설이 쏟아졌던 거지요. 제 눈에는 그게 그거인 듯 보였고, 심지어 일정한 생산 설비에서 자동으로 뽑혀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내가 한국 소설에서 멀어졌던 게 아마 그때부터였던가 봅니다.

 

이따금 궁금하기는 했어요. 그럴 때면 어려서부터 눈에 익은 유명 작가의 작품에만 손이 가더군요. 그마저도 없으면 일본이나 서구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요. 그러다가 최근 유행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천명관의 《고래》였습니다. 말하자면 《고래》는 나로 하여금 한국 소설과 재회하게 한 첫 소설인 셈입니다.

 

아, 천명관의 이력이 궁금했었다는 말을 해놓고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군요. 늘 이런 식입니다.  두서가 없지요. 다들 예상하겠지만 그가 이 세상에 《고래》를 내놓기 전 그의 (작가로서의) 이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가다판을 전전하다가 영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말입니다. 그가 소설 같지 않은(그래서 더욱 놀라운) 소설 《고래》를 쓸 수 있었던 것도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았던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고래》는 긴 겨울 밤 시커먼 남정네들이 행랑에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을 때, 작가가 투명인간이 되어 그들 몰래 방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그런 소설입니다. 이를테면 허풍과 현실이 한데 섞여 서로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음담패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그러면서도 한국 근대사가 교묘히 섞여들어간, 때로는 '가량맞다'와 같은 순 우리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소설입니다. 설화나 전설, 신화가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 작가는 불쑥 '독자 여러분!'을 외치며 등장하기도 합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놀란 독자는 '아, 맞아.  이건 가상현실이지.'하며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군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는 자신이 다시 선출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정적들은 더욱 거세게 그를 압박해왔고 민심은 그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집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률을 공포한 것이었다. 그것은 독재의 법칙이었다." (351쪽)

 

이런 터무니없는 소설이 어떻게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것이 비단 작가의 글솜씨나 소설로서의 파격에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뻥과 허풍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살짝 비껴간 듯하면서도 결코 현실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그들의 말, 그들의 삶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덕과 법의 테두리 속에 존재하는 삶이 난데없는 뻥과 결합했을 때 우리가 받는 느낌은 비현실이 아니라 무한한 자유와 재미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합쳐 흐트러짐 없는 서사로 엮어낸 작가의 능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것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그들만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소설 《고래》는 기존의 소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것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소설의 태생이 그렇듯 뒷골목의 이야기를 일정한 형식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작가 천명관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내려간 까닭에 독자는 규칙에서 해방된 듯한 자유를 느끼고 그의 뻔한 허풍에 웃음을 짓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탈 없이 이야기가 꾸려지는 게 신기하지요?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 강제로 이끌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자유로운 소설에 무수히 많은 법칙이 등장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작가는 소설 중간중간에 말도 안 되는 법칙들을 갖다붙여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이 다큐가 아닌 예능으로 읽히도록 강제하는 듯합니다.  예컨대 '구라의 법칙', '권태의 법칙', '생식의 법칙', 아랫것들의 법칙', '구호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논쟁의 법칙', '고용의 법칙', '사랑의 법칙' 등 법칙이란 법칙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는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의 말솜씨에 세 여자가 모두 넋을 잃어 국이 졸아붙는지 밥이 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 (140쪽)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별 의미도 없지만 천부적인 입담꾼 천명관의 손에서 펼쳐지는 글의 얼개는 국밥집 노파와 금복, 금복의 딸 춘희로 이어집니다. 읽는 독자에 따라 금복을 주인공으로 또는 그녀의 딸 춘희를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 속 무대인 평대를 중심으로 이재에 밝은 금복은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부자가 됩니다.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된 셈이지요. 그것은 순전히 한을 품고 죽은 박색 노파의 재물을 손에 넣었기 때문인데 결국 금복은 그 죽은 노파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됩니다.  산골 출신의 한 소녀가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는 모습입니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271쪽)

 

금복이 지었던 고래를 닮은 영화관은 그 상징성이 남다릅니다. 영화라는 가상현실, 그 덧없음은 우리가 욕심내는 어떤 것도 스크린의 그것처럼 허망한 것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결국 금복은 영화관과 함께 불에 타 죽게 됩니다. 방화범으로 몰린 벙어리 춘희는 자신에 대한 변명도, 결백에 대해 주장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매섭고 긴 옥살이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장한 육체 하나에 의지하여 간신히 버틸 뿐입니다. 순진하리만치 미련한 춘희, 남에게 해코지 할 줄 모르는 춘희도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주제로 집약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01쪽)

 

천명관의 《고래》는 내가 그동안 줄곧 생각해왔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단박에 깨트린 작품이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천명관이라는 작가로 인해 한국 소설에 대해 기대와 흥미를 한동안 품고 지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첫눈에 대한 막연한 기대처럼 설레는 것일 테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고래》로 인하여 그동안 가졌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가 깨졌다고 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었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준다면요.

 

뭐랄까, 기발하다거나 독특하다고 느낄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고요. 일단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에 드는 다른 소설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나 수고 하는 것이 부질없다 생각하게 마련이죠. 다 그게 그거라는 편견이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국 소설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바람이나 한국 소설을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독특한 소재를 다룬 파격적인 소설을 기대합니다. 예컨대 한국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뒤처진다는 느낌이 강했었죠. 저만 그렇게 느꼈을까요? 게다가 표현에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순화하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모습이 많았거든요. 특히 성애의 장면이 그렇죠. 작가가 판단할 때 어떤 장면의 세밀한 묘사가 작품에 꼭 필요하다 느끼면서도 대충 넘어가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일부러 성적인 묘사를 많이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죠.

 

금복이 ‘고래’에게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처럼, 꼼쥐1님에게도 지금껏 그토록 강력하게 매료되었던 대상이 있었는지요. 한 가지를 꼽는다면요.


저는 참 무미건조한 사람입니다. 딱히 어떤 대상에 애착을 갖는다거나 매료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실이나 이별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여 미리 방어막을 쳐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내 소유의 어떤 물건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요.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되어서도 물건에 대한 애착은 생기지 않더군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그동안 일부러 외면하거나 등한시했던 베스트 셀러 작품을 챙겨 읽고 있어요. ‘올해의 책’ 목록에 오른 작품을 위주로 보고 있죠. 책에도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가 있어서 그것을 마냥 무시하며 내 나름의 독서를 고집한다는 것도 조금 우스워 보이거든요. 연말이면 대개 그랬던 것 같아요.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못 읽고 지나쳤던 책이라던가 제 취향은 아니지만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을 주로 읽게 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꼼쥐1'님은?

책을 사랑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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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다시, 소설 

 

지난 2일이었습니다. 서울 동숭동에서 특별한 기획을 알린 행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한국 문학 100년을 재조명하고자 시대를 대표하는 100인의 배우가 소설을 낭독한다는 것이죠. 소설은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10년부터 제5공화국 시기까지 발표한 것 중 문학적 가치를 엄선하여 100편을 선정한답니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이런 소소한 시도가 얼마 만인지요. 금번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우리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서평을 나누며 책 이야기 하는 친구, 펜벗’과 함께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곱씹어 보았죠. 잠자고 있던 어느 소설이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들추어지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펜벗과 함께 며칠 동안 모아본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리 내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첫 문장만 추리니 단어가 더 도드라져 보임은 물론이고요. 문장의 힘이 느껴집니다. 한자씩 읊조리며 문장을 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왕들의 상여는 능선 위로 올라가다. 김훈,『현의 노래』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조정래,『아리랑』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김애란,「자오선을 지나갈 때」(『침이 고인다』)

 

이참에 다 같이 소설 얘기하며 ‘소설이 왜 좋은지.’ 저마다의 이유도 되짚어보았는데요. 각자의 이유가 소설의 존재, 소설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제가 살아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한량의 독서 님

“소설을 덮은 직후 잠깐 동안 내가 익숙하게 알던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syongg 님
"소설은 픽션이지만 현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철학적인 질문도 갖추고 있습니다. 작가가 글로 만든 장치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행간을 저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며 읽는 행위 자체에도 흥미를 느낍니다.” -북찬희 님

“이해라는 말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우리들에게 소설이란 것이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Rootbeer 님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우리네 삶과 가장 많이 닮은 분야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을 통해 함께 아파하고, 위로받을 수 있어 좋아합니다.” -선인장 님

 

다시, 소설. 어쩌면 지금 이때 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매체’는 소설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같은 현실 말고 진짜 소설 말이죠. 걸출한 작가들이 날을 세웁니다. 한국 문학이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소소한 행사를 빌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소설(小雪)에 분다는 ‘손돌바람’만큼 무지막지한 위력은 아니어도 잔잔한 바람이 되어, 지금.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을 누군가에게 ‘애정’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첫 문장을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나 보세요.

 

연관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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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텅 빈 야구장에서

 

 

박민규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신문사 | 2003

 

새나라의 어린이는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TV가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하자 많은 집과 아픈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관리하고 건사하시며 차곡차곡 빚을 갚아나가셨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메뚜기, 사마귀를 잡고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서 이따금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을 함께 쓰던 옆집 할머니도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이놈의 최루탄냄새” 하며 불평하셨지만, 작은 마루 자리를 보존하며 놀러 온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밤 9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가며 어머니와 TV를 보다 보면, 결국 시간을 넘겼다. 그럼 난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닌가 보다, 하며 9시 뉴스까지 봤다. 9시 뉴스엔 어김없이 '땡전뉴스'와 그래프가 들어간 경제 기사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종종 들렸던 어머니의 탄식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가 그리 좋지 않나, 어린 마음에도 걱정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시며, 자녀들의 학비 대부분을 지원받았다. 아버지의 노고와 어머니의 알뜰함 덕에 우리 집은 빚을 다 갚았다. 동네에서 거의 처음으로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를 장만했고, 이어 아버지 생애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이후에 겪은 모두의 고난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시대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했다. 노동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모두 살아갔을 것이다. 책이 덮인 후 이어진 시간을 따라 현재로 와 봐도, 분주함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낭떠러지까지 굴러가야 했던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가속도를 감내하고 달린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나 달리 여유가 늘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변해가는 환경에 무언가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지침을 말해야 하는지, 지쳐서 이제 그만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이제 좀 천천히 가볼 수 없을까? 관성 때문인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조금 두렵다. 낭떠러지의 실체 또한 분명치 않다. 달려봤자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아는데, 왜 실체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일까? 사실 책을 다 읽었다는 이유로 이런 독후감이나 쓰고 있는 나 역시 두렵다. 나는 여전히 두려워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야구단이 '복원야구'에서 깔끔하게 지고, 텅 빈 야구장을 차지했을 때, '마치 재구성된 지구의 대륙처럼 그 봄의 텅 빈 홈그라운드'에서는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 발걸음을 가다듬고 속도를 줄인다면, 현실 속 인생도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이미 오래된 의문 앞에서 답은커녕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민욱아빠'님은?

현직 외과의사입니다. 서울에서 수련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내려와 생활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제주이민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많은 의미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계급적인 견지에서 일상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그 고민들이 삶에 녹아들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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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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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 주떼, 주떼

 

 

김혜나 | 《그랑 주떼》 | 은행나무 | 2014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비밀이니 너만 알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그렇다. 김혜나의 소설 《그랑 주떼》는 말하지 못했던 비밀 아닌 비밀에 관한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될 상처를 꺼내 이제야 소독약을 바르는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예정은 동네 무용원의 발레 강사다. 전문적인 발레 수업이 아니라 자세 교정이나 체중 감량을 위해 수강생을 가르친다. 열다섯 늦은 나이에 예정이 발레를 시작한 건 미국에서 온 전학생 리나 때문이다. 약간의 사시 때문에 왕따를 당하던 예정에게 리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리나가 다니는 무용원에서 리나를 기다리다 예정은 발레 선생님에게 큰 발과 높은 발등을 가졌다는 칭찬을 듣는다.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던 칭찬. 그것이 예정과 발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발레를 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에 비해 예정은 춤을 추지 못했다. 연습하고 동작을 익혀도 춤은 늘지 않았다. 결국 예정은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 강사가 되었다.

 

예정은 원장 대신 수업을 진행하고 학원을 청소한다. 얼핏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청춘의 절망에 대해 들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들이 도착하면서 예정은 흔들린다. 작고 여린 아이들의 몸짓과 마주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여덟 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고모네 오빠까지 몸을 더듬었던 잔혹한 기억과 대면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울부짖는 예정에게 어른들은 윽박지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다짐만 받을 뿐이다. 그런 예정에게 발레와 리나는 가장 큰 위로였다.

 

리나의 이야기가 내 안에 가득 차오를수록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내 몸이 사라지고, 내 이야기가 사라지고, 내 삶이 사라지는 듯했다. 무겁기만 하던 나의 이야기가, 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나의 몸이, 공기와 같이, 산소와 같이, 무한히 가볍고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사라져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63~64쪽)

 

하지만 예정은 리나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은 상처받을까 겁을 내고 손을 놓고 만다. 점점 커지는 가시를 숨긴 채 어른이 된 예정은 이제야 그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저 자신도 환한 아이였고 그 빛을 감추는 법을 알지 못한 연약한 아이였다는 걸 말이다.

 

아이들의 생김새는 모두 달랐다. 몸이나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 어깨, 가슴, 겨드랑이, 배꼽, 허벅지, 종아리, 발가락…… 심지어 피부 색깔까지도 모두가 다 달랐다. 그러나 그 어떤 아이도 밉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빛을 감추거나 숨기는 법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났다. 아주 어렸던 그때의 나에게도,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빛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흘러나오고 있었을까? (124~125쪽)

 

《그랑 주떼》는 성폭력과 왕따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지만, 상처와 슬픔을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루었다. 가만히 다가와 슬픔을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이제 비밀 상자를 감싼 끈을 풀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곁에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높게 그랑 주떼를 뛰며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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