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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0 [윤영배: 이발사[EP]] - 이것은 하나음악이 아니다

[윤영배: 이발사[EP]] - 이것은 하나음악이 아니다

 

 

윤영배 | [윤영배: 이발사[EP]] | 푸른곰팡이 | 2010

 

윤영배. 대중음악계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장필순의 앨범을 통해서다. 「빨간 자전거를 타는 우체부」와 「스파이더맨」은 심상치 않은 곡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 빨간색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하나음악과는 다른 상상력임에 분명했다. 나는 믿고 있다. 장필순 6집이 명반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하나음악과 다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다름의 51%는 윤영배의 것이라고. 그게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그러다 대뜸 작년 말에 툭 던지듯 앨범을 하나 발표했다. 정확히는 윤영배가 쓰고 부른 이발사 『바람의 소리』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만든 풀 앨범도 아니고 다섯 곡만 달랑 들어 있는 작은 앨범이다. 감질맛 나서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기가 쉽진 않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너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이 앨범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마주한 옛 친구 같은 하나음악 사운드”, “일상의 여행”, “한국 포크의 명맥을 잇는” 운운. 혹은 “이규호도 빨리 나와라”, “오소영 혼자 (하나음악 지키느라) 힘들었겠다”는 반응도 있다. 이 작은 앨범을 시작으로 하나음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첩보도 들린다. 하나음악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하지만 이 앨범에 대한 기존 하나음악 팬들의 추억들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하나음악과는 전혀 다른, 하나음악이라는 이미지에 반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음악이라는 게 특정한 스타일로 수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크와 가요 사이에서, 팝과 펫 메시니(Pat Metheny) 사이에서 뛰어난 편곡 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어떤 류를 형성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장필순과 조동익, 한동준과 오소영, 이다오와 초기의 토이, 박용준 등을 한 데 묶기는 참 곤란하다. 한동준은 인터뷰에서 하나음악이란 음악을 최고 가치로 삼았던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을 뿐 장르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음악에 대한 불투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맑고 깨끗한, 세상사에 휩싸이지 않는 순수하고 영롱한 파편의 음악. 물론 이 앨범에도 그런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인식들과 다르게 왠지 불온한 감각들을 돋아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앨범 커버처럼 뭔가 흐리멍덩하면서도 음흉하다. 그런 것이 이 앨범이 가진 매력이다. 

 

첫 곡 「이발사」부터 그렇다. 맨 처음 드러나는 풍경은 목소리가 미묘하게 겹쳐 있다는 느낌이다. 한 5밀리미터쯤 겹쳐진 듯 들린다. 겹쳐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자세히 들어보면 믹싱 단계에서 보컬을 양쪽 스피커로 나눠 놓아 겹쳐진 듯 들리는 착청이다. 일반적으로 목소리를 소리 공간의 중앙에 위치시키는 것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두 번째 트랙 「바람의 소리」에 이르면 정말로 좌우 스피커의 목소리에 미세한 차이를 두어 소리를 겹쳐 놓았다. 한 3밀리미터쯤? 이런 작은 선택은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기타와 목소리가 전부인 노래들에 적당한 환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믹싱 기술을 가지고 환각 운운하는 것이 과장이라고 들릴 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생각의 차이가 놓여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스테레오를 넘어서 7.1, 8.1 채널까지 가는 입체음향의 시대지만 스피커가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난 50년대 중반에 있어 그 변화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보컬은 항상 가운데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앨범이 제기하는 이러한 의문은 감각을 몇 배 확장시키는 약물처럼 이 세상을, 이 세상 소리들을 다르게 듣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환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두 곡을 듣는 순간 단박에 시드 베릿(Syd Barrett)이 떠올랐다. 코드 두 개를 무한 반복하며 만들어 낸 「Terrapin」이나 「Baby Lemonade」 처럼 묘한 최면 효과를 불러왔다. 한 구절을 끝내고 거문고 농현처럼 낮게 떨어지는 음정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윤영배는 포크의 식물성 환각과 맞닿은 자라고. 스타일이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포크적인 몽환, 그 지독하고 끈질긴 환각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거론하고 싶은 것이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그런 효과를 배가 시킨다. 도대체 “내 머리 타던 날”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온 종일 걸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술은 도대체 무슨 수수께끼란 말인가? 한국은 포크의 강국이다. 40년 전 세시봉이 다시 부활하는 것만 봐도 통기타로 상징되는 포크가 얼마나 큰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엄밀히 따진다면 세시봉은 스탠더드 팝으로 치부해야겠지만 한국 포크의 원류를 조동진과 김민기로 잡는다 해도 꽤 유구한 전통이라 하겠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이런 식으로 환각을 유발하는 포크는 적어도 내 깜냥으론 한국대중음악사에 있지 않았다. 네오 포크(이 말도 3~4년 전 얘기지만)라 불리는 새로운 포크도 일상의 세세한 모습을 그리는 데 열중할 뿐이다. 그래서 윤영배의 작은 소품집은 더욱 소중해진다.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하나음악에서 이렇게 불온한(혹은 의미를 포기한) 음악이 배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물론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다. 내 주관적인 감상이 지나친 연결을 시도한 것일 수 있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익숙한 멜로디들, 지나치게 잘 치는 기타는 오히려 각성을 이야기하는 듯 들리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된 하나음악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윤영배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하나음악이지만 하나음악이 아닌 음악을 만들어 낼 떡잎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음악의 좋은 것은 그대로 두고서 하나음악과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낼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섯 곡밖에 들어 있지 않은 앨범임에도, 몇 개월 전에 발표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힘주어 별 네 개를 투척한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전자인형'님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맑은 날 컬처클럽 뮤직비디오를 보고 2차 성장을 감지한 구 메탈키드. 대마초 한 대 펴 보는 게 소원인 말보로 라이트 헤비 스모커. 웹진 음악취향 Y에서 전자인형이란 필명으로 평균 조회수 50의 잡다한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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