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14.09.24 [반디앤루니스] 펜벗 관련 문의 사항을 정리했습니다
  2. 2010.01.27 <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 2> - 잠시 쉬었다 가세요! (2)
  3. 2009.12.18 <소울 아프리카> -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대륙
  4. 2009.12.17 <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5. 2009.12.16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6. 2009.12.15 <나이브? 슈퍼!>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7. 2009.12.11 <공룡대공원> - 공룡 타고 떠나는 상상 여행! (2)
  8. 2009.12.10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자주 열어보고픈 소중한 책
  9. 2009.12.08 <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10. 2009.12.04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 치밀하고 완벽한 이야기 (2)

[반디앤루니스] 펜벗 관련 문의 사항을 정리했습니다

 

 

 

 

◆ 펜벗에 대하여 ◆

 

 

 

 

1. 오늘의 책 테마란

우선, 반디앤루니스에서 처음 서평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분히 신간에만 주목하지 않으려 했던 점입니다. 펜벗은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하는 [오늘의 책] 성격을 이어받았습니다. 거기에 기존 [오늘의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테마’를 두게 된 것입니다.

 

펜벗이 출범되면, 펜벗 구성원에게 월간 [오늘의 책 테마]를 공지할 것입니다. 동시에 테마에 어울리는 책도 함께 소개하지만, 꼭 목록에서 책을 고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테마가 공지되면, 펜벗은 테마에 맞는 도서를 고르고 한 달 동안 적어도 2 편 이상의 서평을 쓰셔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 적립금 5만원이 지급되며, 펜벗이 유지됩니다.

 

한 달 동안 모인 펜벗의 서평 중 우수한 것은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됩니다. 이 서평은 기존 [오늘의 책 서평]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  우선 홈페이지 메인에 ‘펜벗 추천’ 서평이라는 표식이 붙습니다.

- [오늘의 책과 연관된 도서]를 추천할 때에도 왜 연관도서로 추천했는지 펜벗의 의견과 함께 소개합니다.

- [오늘의 책 페이지]에서는 펜벗의 인터뷰와 함께 펜벗이 쓴 다른 서평을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링크를 걸 것입니다.

- 오늘의 책 서평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기본 적립금 외 기념 적립금 5천원이 추가로 지급되고요.

 

 

 

2. 책을 선택할 때

펜벗을 책의 ‘장르’를 구분해 모집하지 않습니다. 40명이 모두 같은 테마를 보고, 자유롭게 책을 선택하여 서평을 쓰시면 됩니다. 테마에만 맞는다면요.

 

예를 들어 펜벗 활동의 시작이 10월 말 즈음일 텐데, 처음 공지될 12월 [오늘의 책 테마]가 ‘크리스마스’라 하면,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사건, 단어를 요모조모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서평할 책으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선택해도 되고, 김애란의 단편 <성탄 특선>을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도서 선택은 자유입니다. (여기서 ‘크리스마스’는 예시일 뿐이지 정해진 건 아닙니다.)

 

테마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어쩌면, 테마 자체가 책의 장르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테마를 통해 여느 서평 전달 방식과는 다른 시도를 해볼까 합니다.

 

 

 

3. 적립금

기본 적립금 5만원과 기념 적립금 5천원을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밖에 추가로 드릴 혜택 또한 있습니다. 펜벗의 활동 주기는 4개월입니다. 4개월 간 활동이 활발하고 특별했을 때에는 감사의 뜻을 담아 소정의 적립금을 드립니다. 또한, 펜벗 출범 이후 이곳 서재에서 책을 중심에 둔 몇 가지 글짓기 기획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에서는 [오늘의 책 서평 형식]을 벗어난 글을 소개할 것입니다. 글짓기에 참여해 주신 펜벗에게도 적립금을 드립니다.

 

 

 

4. 타 매체에 서평을 등록했을 때

가장 궁금해하실 부분이며 반디앤루니스에서도 가장 주시하는 부분입니다.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쓰셨던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타 서점, 혹은 서평이 소개되는 언론 매체 포함)


반대로,
개인 블로그에 올리셨던 서평을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등록하셔도 좋습니다.
(이 경우에도 타 서점, 혹은 서평이 소개되는 언론 매체 포함)


다만,
이전에 다른 곳에서 우수한 서평으로 선정돼 시상을 받은 서평,
혹은 그 서평으로 어떠한 혜택을 받으셨을 경우,
해당 서평을 다시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게시하는 것은 지양합니다.
반디앤루니스에서는 그 글에 대하여 똑같은 혜택을 드릴 수 없습니다.

 

올라오는 콘텐츠에 대해 위와 같은 여부를 모두 검토하기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미리 이 점 인지해 주시고, 서평을 작성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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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 2> - 잠시 쉬었다 가세요!

 

박영현 외, <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 2>, 채우리, 2009


길 위에서 잠깐 멈춤

저는 지금 길 위에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요. 저도 똑같이 그들을 지나쳐가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멈추는 일 없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네요. 그렇지만 이 길이 끝나는 어딘가에서 저는 멈춰 설 거예요. 사람을 마음에 담기 위해서는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잠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있다 해도 그곳이 의미로 남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죠. 쇼윈도의 화려함에 빼앗긴 마음은 아주 잠깐 저를 즐겁게 한 후 미련 없이 떠나가 버리거든요. 그러고 보니 소유를 향한 마음은 금세 변심해버리는 변덕쟁이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쉽게 변하지 않는 마음을 담아보려고 해요. 지금 길 위에 멈춰 서 있는 건 제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서, 제 마음 안으로 들어가 멈춰 있는 시간을 불러내 보려고요.

멈춰있는 시간이 주는 그리움

자꾸만 변하는 마음에 질려버린 저는, 오래 묵혀두었지만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인 어떤 향기를 떠올려요. 고교시절 봄이 되면 교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자신을 알리던 라일락 향기. 그때 전, 선생님의 말씀 대신 라일락 향기를 마음에 담았나 봐요. 잠깐 동안 멈춰 서 있었던 시간의 향기가 이토록 오래 남아 있는 걸 보면요. <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고 알았는데, 라일락에게는 좋은 향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있대요.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는 향기가 아주 풍부해서 동네에 한 그루만 있어도 좋은 향기가 오랫동안 이어” (94쪽)진다고 해요. 그래서 “옛날엔 이 꽃이 피면 따서 말려 방안에 은은한 향기가 나게 했고, 여자들은 몸에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서양에서는 이 꽃을 개량하여 향수를 만드는 원료로 쓴” (95쪽)다네요. 그래서 제 기억도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걸까요?
 


 

잠깐 멈춰 섰을 뿐인데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어린 날의 어느 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을 함께 만나요. 마치 한 곳에 잠자코 머물러 여러 해의 시간을 보아왔던 식물의 기억이 저에게 온전히 전해진 것처럼요. 악을 쓰고 기억하려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서로에게서 지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지워지지 않은 식물의 기억은 그 자체로 그리움이 되네요. 사람들이 뭔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자꾸 움직이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서 어느 시절 어떤 기억이 잠자코 머물러 있는 수면의 시간에 찾아오는 거 아닐까요? 잠깐씩은 잠을 자지 않고도 멈춰 서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잠시 쉬었다 가요. 몸도 마음도.

부디 스스로(自) 그러하(然)길

<우리 식물 이야기>는 길 위에 있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왔어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길 위에서 멈춰 선 걸음걸음인 듯 쉬이 눈을 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자연의 색과 모양에 매혹된 마음이 쉽사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책의 어느 쪽이든 펴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네요. 그렇게 머물러 있는 시간이 식물의 이야기를 담고 오면, 오늘의 저는 문득문득 부끄러워져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살아남기 위한 생명에게 남겨져 있는, ‘스스로 그러한’ 삶의 방식이 저와는 많이 다르거든요.

“도시에서는 물이 있는 시내나 연못이 없어서 고마리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간혹 하수도 주변에서 보이기도 하니까 더러운 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여름에 시외로 나가면 시냇가나 연못가에서 뜻밖의 아름다운 관경을 보게 되지요. 작은 도랑이나 개울가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고마리꽃들을 볼 수 있거든요. 덩굴성 한해살이풀인데 습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요. [...] 더러운 물이 고마리가 있는 곳을 지나면 깨끗해진다고 해요. 흰 뿌리가 오염물질을 빨아들여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거지요. 중금속도 제거하고 오염돼 죽어가는 물에 산소를 넣어주기도 해요. 물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고마우리, 고마우리 하다가 ‘고마리’가 되었답니다.” (74-75쪽)
 


 

“애기똥풀은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개미를 이용해요. 꽃이 지고 난 후 길쭉한 열매 주머니가 생기는데 그 속에 있는 까만 씨는 하얀 기름주머니를 달고 있어요. 그 기름을 개미들이 좋아하는데 여간해서는 씨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개미들은 기름을 먹기 위해 씨까지 영차영차 집으로 가지고 간답니다. 집에 가서는 흰 기름주머니만 먹고 씨앗은 버려요. 힘들여 기름주머니를 만들고 부지런한 개미를 통해 멀리 씨앗을 퍼뜨리는 거지요. 도움을 주고받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영리한 풀이지요?” (175쪽)
 


애기똥풀꽃을 먹고 있는 호랑나비


이렇듯 길에서 사는 친구들에게 서로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도 하고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사실 사람도 혼자서는 살 수 없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남을 돕는 일은 식물들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걸까요?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서 적어도 ‘자연’스럽게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스스로가 더럽힌 물 때문에 고마리에게 더러운 꽃이라는 오명을 씌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서만 필요한 게 아닐 테니까요.

저는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만 소박하게 담고 있는 <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오늘과 움켜쥐고 나누려 하지 않았던 어제를 반성해요. 그리고 고마리처럼 지나간 자리가 아름다운, 애기똥풀처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내일의 나를 다짐해 봐요. 부디 스스로(自) 그러하(然)길.

그렇게 잠시 멈췄던 시간이 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해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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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아프리카> -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대륙

 

조세프 케셀, <소울 아프리카>, 서교출판사, 2009


영혼을 울리는 음악 ‘소울’, 태양과 가장 가까운 땅 ‘아프리카’. 프랑스 작가 조세프 케셀의 소설 <소울 아프리카>는 뜨거운 두 단어로 이뤄졌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쥔 것은 지난 여름. 하지만 겨울을 기다렸다. 책을 열면 뻗쳐 나오는 열기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이 숨겨뒀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열어야지. 책 속의 아프리카 대초원을 달리며 추위를 달래자. 그렇게 해서 2009년 가장 추운 날 다시 만난 <소울 아프리카>. 기대대로 충분히 뜨거웠다.

<소울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가 멀리 보이는 케냐의 ‘암보셀리 보호구역’이 배경이다. 세계 여행을 하다 이곳에 들른 ‘나’(화자)는 이른 새벽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원숭이 니콜라와 너무나 작아 오히려 생명의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영양 챔벌린을 만난다. 이제 막 눈 뜨는 새벽녘의 신비로운 기운과 이들과의 만남은 그를 알 수 없는 황홀경으로 밀어 넣는다. 대지의 부름에 이끌려 밖으로 나간 그는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고, 거기서 소녀 파트리샤를 만난다. 그리고 ‘이 새벽에 소녀가!’라고 놀라기도 전에 그는 소녀의 묘한 매력에 끌린다.

파트리샤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저녁, 보호구역 책임자 불리트의 집에서다. 초대를 받고 간 저녁식사에서 본 불리트의 가족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의 아내 시빌은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다가도 딸에게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 딸 파트리샤는 새벽에 봤던 모습과 달리 얼음장처럼 차갑다. ‘사자의 아이’라 불리는 소녀 파트리샤와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음 날 아침 떠날 예정이었던 그는 숙소로 돌아와 마음을 바꿔 더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치도 못했던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만난다.

소설의 통해 생명의 신비 가득한 자연과 태양보다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를 여러 번 만났다. 이른 새벽 생명의 신비로움을 체험케 한 니콜라, 챔벌린과의 만남, 파트리샤가 그녀가 어릴 적부터 키운 사자 킹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또 블리트와 차를 타고 아프리카 초원을 질주할 때는 길의 경계는 무의미하며, 아찔한 경사로를 타고 올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마주한다. 그리고 불리트, 파트리샤, 킹이 펼치는 가슴 벅찬 달리기까지….

그때 나는 초원 저 멀리서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하나의 점, 하나의 덩어리, 한 마리 맹수를 발견했다.
“킹! 오! 아빠, 정말 킹이야.”
(…)
“아빠, 킹을 좀 더 달리게 해줘요.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달려보게 해요. 킹, 너무 멋지게 생겼죠? 아빠 어서 달려요!”
불리트가 거칠게 운전대를 돌려 이제 사자와 정면이 아닌 옆으로 볼 수 있게끔 180도로 돌아섰다. 그는 킹과의 거리가 많이 벌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킹이 있는 힘을 다해, 숨이 가쁠 정도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이렇게 해서 킹은 전속으로 달려 우리를 따라왔다. (…) 킹을 달려오면서 계속 포효했다. (209~211쪽)

그렇다고 대지가 누군가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 펼쳐졌던 광경은 보호구역을 찾았던 대부분의 사람이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대자연의 기운을 받기보다 자랑거리 하나 추가하려고 했던 이들은 그들이 기대한 만큼만 얻고 떠났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나’는 다음 여행지를 포기하고 남았기 때문에, 파트리샤와 불리트, 그리고 대자연에 몸을 맡겼기 때문에 체험할 수 있는 감동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서야, 가슴 전체를 뒤덮을 거대한 감동을 온전히 끌어 않을 수 없다.

책에 등장하는 마사이족 이야기는 선택의 대가와 결과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자유롭다. 쇠똥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여행 같은 삶을 산다. 그들은 용맹하다. 창과 방패를 손에 쥔 그들은 사자를 향해 달려가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자와 싸움을 벌일 때 솟구치는 그 뜨거운 피. 이것은 그의 사지가 잘려 나갈 때만 가능하다. 여행 중에 만난 마사이족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그대 가진 것만 욕망하고, 두려움 뒤에 숨는다면 그대는 자유로울 수도, 용맹스러울 수도 없다.” 하나를 버려야만 열리는 새로운 세상 <소울 아프리카>, 살을 베는 아픔이 있기에 더 뜨겁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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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문학동네, 2009


바다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바다가 떠오르는 사람이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늘 그리움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바다의 이미지가 있고, 코끝에 스치는 바다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더욱 이 작가의 책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 글에서 바다 냄새가 날까 궁금했다.

책 표지에서부터 바다를 선사해 준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깊숙한 산 속이었지만 오가는 길에 바다에 들른다 했다. ‘바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챙겨 들었다.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니고 가족 여행인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지만 왠지 함께 가고 싶었다.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다.(결국 여행지에서 책은 몇 장 읽지 못했다.) 그 여행길에서 두 군데의 바다에 들렀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오합지졸로 밀려오는 파도와 저 멀리 떠있는 섬을 보며 이 책의 표지를 떠올렸고, 이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여덟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한 편 한 편, 모든 글이 거센 해일이 되어 내 마음을 덮쳤다. 표제작인 ‘나는 여기가 좋다’의 첫 장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여, 몇 장 읽어나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이 ‘한창훈’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한 평생 섬 사나이로 살아온 남자와 이제는 그 섬을 떠나려 하는 아내의 갈등을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그려낸 ‘나는 여기가 좋다’, 식당집 여인네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밤눈’, 사랑이 까딱하면 성매매가 될 뻔한 섬마을 다방 아가씨와 섬 총각의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제사에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찾아온 노인의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 털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가장 가벼운 생’, 자살을 하러 바다에 찾아온 여인과 그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 섬 사나이의 ‘섬에서 자전거 타기’,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재미도 많았던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아들을 뭍으로 내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기어이 꾸역꾸역 섬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에 가득한 사투리도 일품이다. 책을 읽고 나서 ‘후유증’이 하나 생겼다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학창 시절에 10년 가까이 시골에 살면서도 사투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나인데, 어째 이 책 한 권으로 그렇게 빨리 사투리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마누라가 이삐믄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도 절을 한다 해싸트만, 책이 좋응께 사투리도 기양 지절로 익혀져뿌리네!(?)

유난히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이 대사를 마음에 담았을 듯!) 바로 이 한 마디.

“올 라인 네코!”


나를 얽어매는 모든 구속을 풀어주는 듯한 이 주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인자 배를 출발할 것잉께 줄을 다 걷어내라’. 이제 나라는 배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출발할 것이니까 나를 묶고 있는 줄을 다 걷어내자! 올 라인 네코! (주의 : 애인 앞에서 사용하면 순식간에 므흣한 단어로 변하는 수가 있음)

여하튼 결론은,
나는 이 책이 좋다!!

 “난 전생에 뭔가 큰 죄를 졌어라우.”
그녀는 깊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무슨 말인가.”
“섬에서 태어났응께.”
...

“내 평생 생각한 것이, 내가 왜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해답이 안 나왔소.”
“그러면 여기서 죄갚음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어.”
“그 죄가 기억이 나믄 좋겄소. 기억에 없으니 억울하요.”

(‘나는 여기가 좋다’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원주님’은?
책이 좋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다가 번역의 길에 들어선 병아리 번역가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제 손으로 번역한 중국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게 꿈입니다.

[<나는 여기가 좋다>는 굼실이님이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굼실이님 나감책 보기(클릭!)]
[<나는 여기가 좋다>는 원주님이 또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원주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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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문학동네, 2008


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어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어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스런 결과물인 아이가 어느 날 실종된다. 이 일은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 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딸의 흔적을 기다리는 뱅상.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르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뱅상 앞으로 주느비에브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과거를 지우고, 그녀도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그녀와 그의 과거가 밝혀진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두 남녀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읽은 후에는 잔영이 남아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개의 키워드. 과거, 글, 사랑.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과거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으로만 남아있는 뱅상은 기억과 화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과거는 끈덕지게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어지는 주느비에브와의 만남. 이를 통해 뱅상은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도 고이 받아들인다.

글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주느비에브가 힘든 시기를 이겨낸 방법 또한 글쓰기다. 매일 밤 그녀는 글을 쓴다. 그녀는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함께 살아가진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은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왜?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고통보다 큰 기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와의 짧은 재회에서야 뱅상은 깨닫는다. 사랑,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란 사실을.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 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된다. 죽음, 이별 같은 일에 깨질 만큼 약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서 다시 되찾을 용기를 낼 만큼 강하기도 하다.

뱅상은 바뀐다. 모든 일을 체념했던 그가 새로운 기운으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과거를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준 주느비에브가 보여준 사랑의 강함에 놀랐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영원한 것은 있을지도’ 라며 희망을 가져 봐도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어쩌다 보니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북홀릭 청춘. 책 속에서 사랑도, 지혜도 찾고픈 그런 사람.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굼실이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굼실이님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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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 슈퍼!>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를렌 루, <나이브? 슈퍼!>, 문학동네, 2009


당신은 누구인가요? 무엇을 위해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행복한가요?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언제 화가 나나요? 화가 나면 어떻게 푸시나요? 아무 걱정 없이 웃어본 적은 언제인가요?

가끔 질문이 끝도 없이 쏟아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질문인 건 분명한데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막상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치 시간의 일부를 날카로운 가위로 싹둑 잘라낸 것처럼 지나온 삶이 가물거린다.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다.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 혼란스럽다. 내가, 이 사회가, 온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때. 누군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또 누군가는 홀로 칩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삶이란 그저 그렇게 하룻밤 고민하고 끝낼 문제가 아닌데 이것만큼 깊숙이 파고들어가기 힘든 것도 없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늘 정면승부를 피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는 대로, 살아왔던 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므로.

<나이브? 슈퍼!>는 평범한 청년의 자아(본질) 찾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스물다섯 생일날 아침, 문득 그동안 썩 잘 살아오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엉망인 듯 혼란스럽다. 뭔가 달라져야 할 시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마침 출장을 떠난 형의 집에 한 달 동안 틀어박힌 채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해 나갈 생각이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소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도 좋은 친구 킴, 나쁜 친구 켄트, 그리 착하지 않은 형, 이웃집 꼬마 뵈레, 어쩌다 생긴 여자 친구 리세 정도다. 부모와 조부모도 잠깐 등장한다. 주인공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된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무심히 방치해 두었던(어쩌면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톡톡 건드려 주기 때문이다. 진지한 가운데 가끔 엉뚱한 재치를 선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의 웃음 세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관심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특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고맙게도 이 책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나’의 목록 만들기

‘나’는 지나온 인생을 정리해 보기 위해 목록을 만들어 나간다. 갖고 있는 것들,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시작으로 자신과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수많은 목록을 작성한다. 기분 전환과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도 마련한다. 공과 망치 놀이 판자가 그것이다. 종종 자전거를 탄다. 가끔은 고층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탄다. 오르고 내리기를 쉼 없이 반복하며 사람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질문을 건네기도 한다. 마침내, 모든 일은, 제자리를 찾아,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틈새시장을 노린 사업도 구상해 놓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떠나기 전과 같을 수도 있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된다. 마음이 상황까지 바꾸어 놓는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과 숙제를 품고 살아가겠지만 받아들이는 마음과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분명 차이가 생겨난다.

이 책의 주인공 ‘나’처럼 언제 갑자기 인생이 무의미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들, 중장년층, 노인이 되어서도 ‘인생’은 언제나 의문투성이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나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한 번쯤은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중 어떤 것에 반응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게 되면 삶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다. 많이 웃었고, 진지하게 생각도 해봤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자잘한 일상의 풍경들. 그 일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소홀히 보아 넘길 것이 없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이유는 없다. 그저 무심하게 대했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 볼 것. 그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이 충분하게 차오르는 느낌이다.

주인공처럼 나도 목록 만들기를 시작해봐야겠다. 그 중에서도 매일 빼먹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은 ‘오늘 본 광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매일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같다면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아가야할 방향과 통찰력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니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lnote’님은?
다독보다는 정독의 묘미를 즐기는 슬로 리더(slow reader). '소울노트'라는 닉네임처럼 영혼의 진실한 언어로 인생의 페이지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나이브? 슈퍼!>는 soulnote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soulnote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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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대공원> - 공룡 타고 떠나는 상상 여행!


윌리엄 린제이, <공룡대공원>, 루덴스, 2009


반디 유치원의 안씨 윤씨 최씨, 임씨 오씨 백씨 어린이 모두 공룡을 좋아합니다. 6,400만 년 전 지구에서 사라진 공룡이 지금도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공룡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큰 동물이 고작(?) 코끼리인데, 코끼리보다 몇 배 큰 공룡을 상상하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또 정의로운 공룡 편에 서서 나쁜 무리들을 물리치는 상상을 하면, 온몸이 짜릿짜릿합니다.

<공룡대공원 - DK 아틀라스 시리즈 2>는 공룡을 사랑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입니다. 표지부터 흥미롭습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힙실로포돈, 스테고사우르스, 알로사우르스 등 공룡들은 “나랑 놀래?”라며 유혹합니다. 책은 공룡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등 공룡이 호령하던 시대, 각 대륙별로 살았던 공룡의 종류, 뿔 달린 공룡, 예쁜 턱 공룡, 바다의 제왕 어룡 등 수십 종에 달하는 공룡들의 특성, 각 공룡들의 크기 비교까지. 여기에 크고 실감나는 그림은 재미를 더합니다.
 


<공룡대공원>


공룡 친구들은 아주 먼 과거와 전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공룡이 처음 나타난 2억 2,000만 년 전 지구의 모습은 어땠는지, 30m 이상의 초식공룡들이 느릿느릿 걸으며 풀을 뜯던 쥐라기는 어떤 모습인지, 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맹렬히 싸우던 티라노사우르스에게 무슨 일이 생겨 갑자기 지구에서 자취를 감췄는지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또 디플로도쿠스는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메갈로사우르스는 유럽으로, 마소스폰딜루스는 아프리카로 발길을 끕니다.

과거와 세계로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의 상상은 저 멀리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갑니다. 과거로, 세계로 부유하다 보면 ‘지금’, ‘여기’의 경계는 어느덧 사라집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각 공룡들에 이야기 하나씩 만들어주기라도 하면, 그 재미는 더욱 커집니다. 이런 상상의 재미를 작은 게임기나 컴퓨터 모니터에 만나는 제한된 상상의 세계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공룡 친구들과 함께인데 말이에요.
 


-동물들의 가족사진(<세계의 동물> 표지 이미지)


DK 아틀라스 시리즈는 ‘그림백과사전계의 고수’ 영국의 돌링 킨더슬리(DK)가 만든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우리의 몸> <우주대여행> <세계고대문명> 등을 포함 총 10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림백과사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은 가로 52.4㎝, 세로 35㎝의 큰 판형에 올 컬러로 제작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주대여행> <세계의 바다> <우리의 지구>는 한국과학창의재단 2009 하반기 우수과학도서(시리즈 부문)로 선정됐습니다.)

<공룡대공원>에서 과거,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면, <세계대여행>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세계 여행을 펼치고, <우주대여행>에서는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합니다. 또 <세계고대문명>과 <세계대탐험>에서는 인류의 고대 문명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인간들의 노력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의 바다> <우리의 지구> <세계의 동물> <세계의 새>를 통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생명 친구들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책과 더불어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이 더해진다면 아이들에게 더 큰 선물은 없겠다, 싶습니다. ^-^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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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자주 열어보고픈 소중한 책

 

원재훈,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예담, 2009


이름만으로도 한국 문학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 그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설렘을 준다. 박범신이 만난 젊은 작가들에 비해 원재훈이 만난 작가들은 가장 적은 나이가 마흔인 중년을 훨씬 넘어선 작가들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는 작가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싶다. 21명의 작가 중 정현종 시인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다소 흥분된 책읽기를 시작하였고 끝까지 그 기분은 계속되었다. 책은 1~2년 전 원재훈이 직접 작가들을 인터뷰한 글들을 엮어 놓았다. 인터뷰한 장소는 주로 서울이나 일산이 많았고 도종환과 김용택은 작가의 집으로 저자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한 잔의 차나 술잔을 마주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문학과 사랑, 삶,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명인이나 다름없기에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실도 많았지만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이 고교 동창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나 책을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나와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때문인지 은희경이 쉰을 넘겼고 정호승 시인이 예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언제가 책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법. 많은 책들이 언급되었고, 정현종이 언급한 <카프카와의 대화>를 꼭 만나봐야겠다 생각했고, 정호승의 만나지 못한 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세련된 외모의 은희경이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안 좋아서 야반도주의 경험을 <비밀과 거짓말>로 썼다니 그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소설가로 사는 게 좋아요. 이것만 잘하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산문을 쓰기로 했어요. 이제 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법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전 이제 문학소녀가 아니라, 일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소화해내는 것도 능력이죠.”(86쪽) 이제 그녀의 산문을 읽을 준비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삶을, 오늘을 노래하다

책의 제목은 윤대녕의 말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조부를 문학의 아버지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의 소설을 오늘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삶을 이야기하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입니다. 나는 이 오늘을 씁니다.”(113쪽) 그가 쓰는 오늘은 작가이며 독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 윤대녕의 단편 <못구멍>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딸과 함께 다녀온 인도 여행을 풀어 놓는 전경린의 글 속에서는 왠지 평온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집> 이후로 그녀의 글에서는 불안보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을까. “글쓰기의 한가운데에서 글쓰기의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반문을 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426쪽) 혼자서 써야 하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한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아직 소설이나 시로 만나지 못한 작가도 있다. 윤후명의 작품은 몇 번 만났지만 읽다가 손을 놓았던 기억이 있고, 김선우의 산문집도 그러하다. 김선우가 쓰는 동안 쓰고 싶은 소설이 세 권이나 몸으로 들어왔다는 <나는 춤이다>가 궁금해진다. 읽는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원재훈의 글에도 있다. 시인이라 그런지 무척 감각적이고 섬세했으며 같은 공간을 묘사한 부분도 작가마다 그 느낌에 따라 달랐고 독자가 작가들 더 사랑하도록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인터뷰 하는 내내 작가들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친구이자 선후배를 만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열심히 자신이 쓴 작품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소중하므로. 내게도 자주 자주 열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소중한 책으로 남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저는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는 사람이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는 자목련님이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자목련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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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김형경, <좋은 이별>, 푸른숲, 2009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은, 즐겁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한다. 행복하다. 이별은  혼자서 견뎌내며, 힘들어한다. 행복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아파하고 힘겨운 시간도 오래간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은 서점에서 흔하다.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별 후의 시간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찾기 어렵다. 이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다. 종기가 생겼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큰 병으로 커진다. 이별 후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몸에 대한 치료는 쉽게 묻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을 가는 일은 다른 이에게 묻거나 알리기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사람풍경>과 <천개의 공감>이라는 심리치유 에세이 두 권을 출간했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대하는 일반인이 가진 편견의 벽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한 책들이다. 돌아온 작가는 상실 이후, 애도에 주목한다.

# 참 좋은 사람,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이라는 말이 처음엔 어색했다. 이별은 아픈 건데, 좋은 이별이 가능할까? 좋은 이별은 서로 원만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끝내는 쿨한 이별이 아니라, 그와 이별한 후에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 감정들을 애도작업을 통해 치유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별 직후, 생기게 되는 마비, 부정, 분노, 그리움, 환상, 미화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나쁘지 않다 이야기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등의 이별 후의 감정을 잘 포착한 가려 뽑은 시구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별을 만날 때의 감정들이 가슴에 전해진다. 저자는 감정에 빠진 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인정하고, 밝은 쪽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recipe’라는 글에 담겨있다. 글의 처음은 저자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솔직한 글을 읽다보면, 힘든 이별의 순간이, 나만 겪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갈 곳이 없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이 주는 부정과 그리움, 환상 등의 감정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기애와 조증, 떠돌기, 대체대상 사랑하기 등 어찌할지 모르는 시간과 감정들은 혼란스럽다. 저자는 상실을 극복하는 애도의 시기를 지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몸의 증상,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에 공감했다. 어떤 이는 “그가 떠나갔는데 밥이 넘어가느냐”며 거식증에 걸리고, 다른 이는 꾸역꾸역 먹다가 폭식증에 빠진다는 글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학과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유아기 때 겪은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몸의 반응으로 표출한다. 기억하기 어려운 유년기부터 쌓였던 경험들은, 의식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면의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확인 하였다.

#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울증과 붕괴의 감정에 빠져있을 때, 극복과 치유가 시작된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감정이 다 사라져버린, 울음도 나오지 않는 절망의 지점이, 다시 희망을 안고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보다 남성은 울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마음에 담아두거나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픈 노래나,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을 달래주면, 감정에 빠져 무기력한 마음이 달라진다. 저자는 독서와 글쓰기, 노래 부르기,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기 등,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기형도 시인의 절창을 다시 만나 좋았다.

울지 못하는 마음에 병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며, 살아가려는 의욕이 사라진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상실한 이를 배려하는 관습과 우리 문화에 남아있는 굿과 삼우제, 49제, 3년상 등을 소개한다. 잘 이별하기 위한, 오랜 지혜의 결과인 이별의 의식들이 현대사회에서 빠져있다. 개인의 감당해야 할 우울의 깊이가 큰 이유를 이해했다. 애도의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문학작품을 만났다. <이방인>과 <수레바퀴 아래서> 등 다양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만났다. 흥미로웠다.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신화도 사라졌고, 과학에 대한 엄밀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21세기에 산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알고 싶어 하는 이에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이유를 알려주는 괜찮은 도구라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말한다. 애도작업을 보내고, 더 나은 자신이 된 시기 역시, 1-2년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자신을 관철하고, 분석하는 일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희망과 꿈을 파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쉽게 찾는 해답을 바라는 대중이 많은 시대에, 한계를 인정하는, 진솔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하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비전공자인 작가의 글이기에,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었다. 저자의 글로 만나는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었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전한 마음을 채웠던 충만한 느낌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났기에, 이별의 시간도 따르는 법이라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만들었던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한다. 떠나간 그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그를 잘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그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책이다. 좋은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소리 내 말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문학이 주는 삶의 감동의 숲과 인문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 과학이 주는 정확한 사실과 호기심의 바다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초보 독서인.

[<좋은 이별>은 비이님이 선정하신 나감책입니다. 비이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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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 치밀하고 완벽한 이야기

 

칼렙 카,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노블마인, 2008


이런 소설을 만나면 흥분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흘러나오는 완벽함. 첫인상은 내게 호의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범상치 않음을 예감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은 초반부터 흘러넘쳤고, 험난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과정을 겪게 될 거라는 짐작도 어렴풋이 생겨났다. 그 과정은 흥미로울 것이며 독자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 줄 거라는 추측까지 하게 되자, 이 책의 설명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해둔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책장을 속도감 있게 넘긴 다기 보다 지루할 틈이 없어 꼼꼼히 읽었다. 추리소설을 이렇게 읽어본 적도 없지만, 책에 빠져 있는 시간 동안은 어느 것에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그만큼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는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 사건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 때 이슈가 되었던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된 일이었다. 그 용의자로 인해 밝혀진 사실들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 속속들이 드러나는 사실 앞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패스의 형태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는 용의자 앞에 두려움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용의자와 이 책의 용의자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이핏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 존 비첨은 비슷한 조건의 사람만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당당함으로 피해자의 처참한 모습을 공개했다. 용의자의 어떠한 흔적도 없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었고, 피해자는 늘어가기만 했다.

지금처럼 첨단화된 수사가 이뤄지는 시기도 아닌 19세기말의 뉴욕 맨해튼에서 이 살인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시 뉴욕 경찰청장으로 있던 시어도르 루스벨트(미국의 26대 대통령)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팀을 비밀리에 구성한다. 대학시절의 친구인 뉴욕 타임스 기자 존 무어, 정신과의사 크라이즐러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당시의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 경찰청장부터 J.P. 모건, 조지프 퓰리처, 폴 켈리 등 잘 짜여진 구성에 부합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19세기 말 뉴욕의 모습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생기가 넘치거나 밝은 분위기보다 세상의 온갖 악이 밀집해 있는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의 비참한 삶과 빈민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뉴욕은 현재의 화려함을 떠올릴 수 없었다.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19세기의 뉴욕에 맞닿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남지 않은 증거, 더딘 수사

용의자는 매음굴에서 몸을 파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납치해 처참하게 죽였다. 피해자들의 비슷한 또래와 조건의 남자아이들이라는 것 밖에 증거가 없었고, 왜 죽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부탁해 사건을 의뢰했지만, 크라이즐러가 요구한 것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후에 루스벨트의 위치를 고려해 사건을 약간 은폐하긴 했지만), 전적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무어와 크라이즐러로는 인원이 부족했으므로 루스벨트를 통해 소개받은 과학수사팀의 아이잭슨 형사 형제, 뉴욕 최초의 여경이자 무어의 친구인 새러가 사건해결의 중심부에 선다.

그들의 수사는 더뎠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크라이즐러의 통찰력과 리더십은 사건에 조금씩 다가가게 했고, 아이잭슨 형사의 출현으로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용의자를 중심으로 다가간 다기 보다 미세한 발견으로부터 조금씩 좁혀가는 양상을 띠었기에 여전히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말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의 수사는 파격적이었고, 독특했다. 정신과 의사인 크라이즐러의 고견과 여경인 새러, 아이잭슨 형제, 범죄자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크라이즐러의 하인들은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은 루스벨트가 마련해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 하나의 또 다른 가상을 설계해 가면서 조금씩 전진해 갔다. 처음엔 그 방법이 무모해 보이고, 바위에 계란치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이제 막 싹을 틔운 범죄 심리를 이용한 수사관의 등장도 실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추리와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웠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많은 방법이 실험적이긴 했지만, 훌륭하게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사에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눈앞에서 용의자를 놓쳐 버리고, 다른 도시에 가서 정보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이 사건 해결을 원치 않는 갱단의 훼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크라이즐러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 버렸다. 그 상실감으로 수사에서 빠진 그를 대신해 수사를 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의자의 실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요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동료들 덕분에 용의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남겨놓은 시체는 용의자의 내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어서 정신세계를 추측해가고,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한 오라기의 실로 용의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해 간다.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괴물

한꺼번에 두세 개의 계단을 밟는 것이 아닌, 한 단계씩 밟고 올라서 정상에 오르는 것처럼 과정 속에 모든 것이 녹아있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용의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의 실체가 밝혀져도 덤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의자 존 비첨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그들처럼 독자인 나도 낱낱이 알게 되었고, 그의 성장과정과 내면세계에 깊은 동정을 느꼈다.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말을 처절하게 드러낸 인물이 존 비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은 멈춰져야 했다. 더 이상 무고한 아이들이 죽어 나가지 않게 해야 했고, 내면이 뒤틀릴 대로 뒤틀려버린 살인자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수사의 꼭대기 단계에서 존 비첨은 모습을 드러냈고, 크라이즐러는 다시 돌아와 그 현장에서 살인자를 지켜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마음(그가 모습을 드러내도 덤덤할 거라는)은 정확했고, 그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면을 지닌 괴물이었다. 그의 최후가 허무하고 씁쓸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냐는 분노보다 인간이기에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만들었다. 존 비첨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크라이즐러와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인간의 내면은 어떠한 환경에 처했나에 따라 ‘성격을 형성하고 강화시켜 행동으로 발현된다는 심리학적 결정론’을 뚜렷이 보여준 예였다.

그러므로 존 비첨이 특별하게 뒤틀려버린 인간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모습을 보여 준 셈이다. 심리를 통한 수사가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를 찔러댔다는 것으로 겁에 질려 있었고, 충분한 고통을 맛보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있는 깊은 아픔들이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고통이 뒤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태극취호’님은?

도능독(徒能讀)을 일삼는 자. 책 읽기도 습관이라 생각하며, 책이라면 환장하며 달려드는 서른을 눈앞에 둔 철딱서니. 언제나 머릿속에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살까 꿈만 꾸는 몽상가.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는 태극취호님께서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태극취호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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