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2.24 <전쟁교본> - 결코 잊지 말아라
  2. 2010.08.12 <패배를 껴안고> - 패전이 가져온 일본의 현주소와 그 진실
  3. 2010.04.28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 (2)

<전쟁교본> - 결코 잊지 말아라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전쟁교본> | WORKROOM | 2011

 

겨울 브레히트 동상에서

모든 동상은 서 있거나
모든 무덤들은 누워 있지만
브레히트 동상만 앉아 있다.


나는 그가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 있어야 할 삶이었다.
살아 있어야 할 주검이었다.
그가 청동 의자에 주저앉아 있다니.


겨울나무가 허공을 분실하자
옆 가지가 허공을 부축해 준다.


땅은 눈 내리는 여백이다.
죽은 구두들의 추모회같이 회오리치는 윤무(輪舞).


나는 고인의 방명록 속에
뒤창만 남은 해와 흐린 날씨를 적어 넣었다.

-조정권, <고요로의 초대>, 민음사, 2011, 30쪽

 

서 있어야 할 삶, 살아 있어야 할 주검, 브레히트. 그가 남긴 <전쟁교본>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그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피해 타국을 떠돌며 만들어낸  ‘사진시Fotoepigramm’를 모아놓은 사진시집입니다. 사진시는 그가 망명 생활을 하면서 신문과 잡지 등 공식적인 언론에서 오려낸 사진에 4행시로 설명을 붙인 '텍스트-사진 몽타주 기법’의 작품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책의 이름처럼, <전쟁교본>에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남겨놓은 과거의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무지막지한 폭격, 도시 전체를 휘감으며 타오르는 연기, 전쟁에 동원된 젊은 병사들, 스러져간 목숨들, 폐허와 잔해, 남겨진 생명들 그리고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인간.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또 다른 야만의 시대가 ‘그때, 거기’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참혹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멈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사진이 담고 있는 ‘사실’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진실’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진실’에 당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진 이미지에 덧붙여진 4행시의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의 이미지에 달린 주석과 같은 4행시가 그 ‘진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는 이 시를 통해 사진의 표면 위에 정박해 있는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은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진을 오려내는 방식으로 시대를 증명하려 했던” 브레히트의 이유입니다.

“속임수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시대라면, 사색하는 자는 자신이 읽고 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거나 들은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따라서 얘기해 본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나타난 진실하지 못한 진술을 진실한 것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올바르게 읽고 듣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브레히트, ‘진실의 재구성’ 중, 1934

그러니 우리가 이제 읽어야 합니다.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진실을. 눈에 보이는 사진 이미지, 사진 속 텍스트, 그걸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사진을 설명하는 글, 그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모두를 읽고 진실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과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정한 의미의 미래를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 있어야 할 삶, 살아 있어야 할 주검’으로 오늘 브레히트를 불러들이는 또 다른 이유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고인의 방명록에 무엇을 적어 넣을 수 있을까요.
 

잊지 말아라, 너희와 같은 수많은 이들이 싸움에 나섰다는 것을
너희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그들이 아닌 너희가.
홀로 책에만 몰두하지 말아라, 투쟁에 동참하라
그리고 배움 자체를 배워라, 그것을 결코 잊지 말아라!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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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껴안고> - 패전이 가져온 일본의 현주소와 그 진실

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민음사, 2009 

 


많은 개인들이 전쟁,폭력,강간, 정신적 가해 등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심각한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의사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요인, 즉 트라우마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인간의 뇌구조로 인해 완전치유는 불가하더라도 효과적인 트라우마 희석으로 그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현실과의 조화를 통해 좀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비단 개인뿐 아니라 국가 내지는 민족적 형태로 확대되기도 한다. 우리 한민족에게 다름 아닌 일본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감정기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기간내내 민족 개개인에게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확대 재생산 되면서 민족 전체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발현시키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가까우면서도 멀기만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는 일본의 패망 이후 5년 8개월이라는 미군정기간 동안 일본과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고찰한 책이다. 우리에게 일본 특히 1945년전후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거의 1차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강력한 트라우마를 제공한 원인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일본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존 다우어는 이 시기의 일본과 일본인의 심리상태를 고찰하므로써 지금의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시금석을 제공하고 있다. 얼마전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권이 자리잡은 일본은 패전의 아픔(?)을 딛고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극우세력들의 망언과 전범을 위한 신사참배 및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통해서 주변 당사자국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일본과 일본인의 근저에 깔려 있는 심리상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에게는 상당한 숙제거리 중에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지금의 일본의 상태를 100%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군정의 점령 하에 놓인 일본의 상태와 일본인들의 심리상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가능 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보기엔 다소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시각으로 패망 이후 일본을 바라보고 있지만 학자다운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상 그대로를 기술하고 있어 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쇼와천황(히로이토)의 항복선언으로 일본, 적어도 일반대중은 한밤중에 난리를 맞은 격이었다. 극도로 통제된 사회에서도 몇몇 루트를 통한 불리한 전황의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동안 천황을 비롯한 군국주의자들과 초국가주의자들의 오래된 교육과 홍보에 의해 도저히 질 수 없는 전쟁에서 패망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미군의 점령이 현실화 되면서(이때 미군은 19세기 페리제독을 앞세워 강제로 개방을 할 당시 게양했던 성조기를 다시 달고서 또 다시 일본땅에 발을 딛게 된다) 일본인의 삶은 표현 그대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망이나 허탈의 의미하는 '교다쓰'라는 말이 전후 일본 사회전체를 대변하는 신조어가 되어버렸다. 이전까지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야마토신민이라는 우월성을 입증(?)받은 민족이 하루 아침에 4류국민으로 전략함으로써 교다쓰의 강도는 실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능가했던 것이다. 육체적인 피로감보다 패망 이후 밀려오는 심리적 허탈과 절망은 일본사회구조를 송두리채 변신시키기도 남을 만큼 엄청난 것이였다. 이러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대해서 일본군국주의하에서 고통받은 민족이나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시되는 시각이지만 당시 일본인들은 분명 그랬다는 것이다.

맥아더를 수장으로 하는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일본은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연합국의 좌장인 미국의 점령으로 일본은 수술대에 오르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군정의 정책에 따라 사회구조를 재편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미군와 함께 온 민주주의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일반 대중 속으로 깊고 넓게 퍼지면서 동시에 왜곡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겪어던 비뚤어진 민주주의 산출물들을 고스란히 일본대중들도 겪었던 것이다. 식민지로부터의 물량공급이 차단되면서 일본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자체였고 일반대중은 그저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익히 겪었던 바 있던 이데올로기의 혼란은 패망이라는 좌절과 함께 이들을 강타했고 나라의 근간이라고 하는 헌법의 제정 마저도 그들의 손이 아닌 미군정 하급관리들의 손에 의해 명시되는 치욕을 겪게 된다. 물론 연합국측에서 보면 당연시 되는 방법이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오히려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행착오였고 이러한 시행착오가 불씨를 남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군정은 한반도의 남쪽에서와 같이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역활을 수행하지 못했다. 일본에 대한 전문가 없이 일본을 통치했던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정작 도쿄전범재판은 피해당사자인 조선이나 인도네시아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를 배제한 서구일색으로 처리하여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한 꼴이 되어버렸다. 또한 맥아더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천황제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역사적 단절이 아닌 재연장시키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의 재등장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근원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시기 미군정과 일본 극우세력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민의식의 정점에 서있던 천황을 존속시키면서 왜곡된 민주주의의 도입자체가 그 태생적 한계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전범재판을 통해서 면죄부를 획득한 구군국주의자들의 정계 복귀(미군정의 암묵적 동의하에)와 히로히토의 건제는 패망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스틱스의 강속으로 밀어버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부적인 요인과 일본인들이 말하는 신의 선물인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행운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군정은 일본경제에 대해서 관심 자체가 없는 그저 뿌린대로 거둔다는 방관자적 입장을 견지했으나 한국전쟁은 이런 방침을 일거에 바꿔 버린 결과가 돼버렸다. 미군정은 그동안의 점령을 통해서 파악한 일본의 최대강점인 집중과 관료주의에 의한 경영방식을 통해 한국전쟁을 지원하게 되면서 일본은 하루 아침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전범재판을 통해 도조 히데키등의 A급전범을 비롯한 몇몇 군국주의자 및 초국가주의자들을 처리하므로써 더 이상 국민전부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면죄부를 받은 상태에서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으로 일본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물론 일본인 전체가 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진정으로 전쟁에 대한 책임과 황군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해외에서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를 통해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제도의 근본적인 변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심리는 단지 신에서 인간으로 옷만 갈아입은 천황을 위주로 정말 새로운 일본을 향해 질주했던 것이다. 패망으로 받은 교다쓰의 상태는 너무나 쉽게 마치 어느날 갑자기 피었다고 져버리는 벚꽃처럼 정말 허망하게 잊혀져 갔던 것이다.

대동아공영을 내세워 조선,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편입하면서 시작된 군국주의의 망령은 지금도 그 피해 당사국들에겐 너무나 큰 결코 완치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일본 역시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임에는 틀림없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고 해외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인명들을 생각하면 가해자나 피해자를 떠나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고 상고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그 첨경인 것이다. 이런면에서 보는 패망 이후 일본 점령정책과 사회변화상은 아주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과 패전은 일본인이 '인간성,인격,개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며,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군국주의나 초국가주의의 도래를 막지 못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쟁 책임은 일본인 전체가 져야 하며 국민은 세계를 향해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의 이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큰 것이다.

<패배를 껴안고>는 피해당사자국들이 보기엔 일종의 일본 껴안기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은 패망 이후 일본의 변화과정을 미군정과의 관계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는 일본 국내에 한정된 내용들이다. 패망을 받은 상처와 개인들의 산산조각난 꿈을 통해서 결국 인류가 껴안고 가야할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껴안기는 결코 일방적인 껴안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성숙된 일본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외 당사자국들의 진심어린 상호 껴안기를 통해서 좀더 성숙하고 발전된 미래가 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잡이'님은?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는 불혹의 뜻만큼 진실한 독서는 40부터라고 생각하기에 요즘 부쩍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는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없는 소통을 책과의 만남에서 찾고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저 책을 읽어나갈 뿐이다. 행복이 동사이길 바라듯이 독서 또한 타인과의 소통행위로 인식하면서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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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0 -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

「자유혼」

너는 이제 오지 않는가
여기 이 침잠의 포구에
꿈꾸던 자, 이젠 더 꿈을 꾸지 않는다 

* Album form 김두수, 『자유혼』 「기슭으로 가는 배」 중

2009년 노벨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

해마다 많은 문학상들이 수상작 또는 수상작가를 발표한다. 반디앤루니스 인터넷 서점에도 ‘문학상 수상작’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아쿠타가와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비롯해 32개나 된다. 물론 실제로는 더 많다. 그런데 문학상이라는 것이 곧 문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학상마다 의도나 성격이 달라서 그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하기도 하고(가령 같은 작품으로 여러 신춘문예 응모해도 당선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한다) 또 문학상이라는 의미 자체가 갖는 한정된 범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정된 범주는 다른 의미에서 ‘평균 이상’이라는 범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문학상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도 분명 문학적 ‘진리’는 아니다. 간혹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재인식과 인류애의 강조는 과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언론의 관심이나 출판사의 홍보 등으로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또 실제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2000년부터 수상자로는 가오싱젠(프랑스), V.S. 나이폴(영국), 임레 케르테스(헝가리), 존 맥스웰 쿳시(남아프리카 공화국), 엘프리네 옐리네크(오스트리아), 해럴드 핀터(영국), 오르한 파묵(터키), 도리스 레싱(영국), 르 클레지오(프랑스)이며 2009년 헤르타 뮐러가 수상했다. <숨그네>는 그녀의 최근작이다.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

헤르타 뮐러는 ‘끔찍하도록 가난하고 외진 마을’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가 마을을 떠날 때 바깥세상에는 언제나 재앙이 있었다. 조부는 일생에 단 한 번 그 마을을 떠났다. 일차대전에 징집된 것이다. 부친도 단 한 번 그 마을을 떠났다. 이차대전에 징집된 것이다. 부친은 나치 무장친위대였다. 어머니도 단 한 번 그곳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자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련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것이다. 누군가 마을을 떠날 때마다 바깥세상에는 언제나 재앙이 있었다. 세상의 재앙이 그들을 고향 밖으로 불러낸 것이다.” (<헤르타 뮐러에게 다가가기> 66쪽)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된다. 이들은 직접 해를 가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되고 어떻게 해도 피해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다.  

<숨그네>에서 2002년 노벨상 수상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의 단면을 발견했다. <운명>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15세 소년 죄르지의 이야기이며,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숨그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단지 히틀러의 동족인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련군에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노역한 17세 소년 레오의 이야기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살아있는 ‘죄르지와 레오’들에게 죄과를 치르게 했다. 같은 모습으로 대척점에 있는 이들에게, 강제수용소를 만든 주체가 소련이든 독일이든 큰 의미가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필자의 요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이 자행한 끔찍한 참상을 소련이 같은 방법으로 복수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헤르타 뮐러를 통해 전후 또 다른 강제수용소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소련의 강제수용소는 홀로코스트 같은 대참사를 빚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인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보복한다고 피해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잘못을 만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끝났으니 잊고 잘 살자 라는 식으로 응수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느냐고, 65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역사를 그 당시에 털어버릴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겠다 싶어 다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성을 앞세워 이야기하기에는 고통이 너무 큰 역사다. 

다 잃어도 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한편 <숨그네>가 <운명>을 떠올리게 한 이유 중 하나는 표현에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삶을 분노나 공포 등 직접적인 언어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세한 언어와 객관적인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헤르타 뮐러의 표현법은 직설적이면서도 우회적이고, 거칠면서도 우아했다(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독특한 조어법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했다). 문학의 유용성이 행동하는 것에 있다면 뮐러의 언어는 문학적 유용성을 잘 보여준다. <숨그네>를 읽는 동안 가려웠던 머리, 그리고 허기진 듯 글을 읽고 밥을 먹어야 했던 감정은 뮐러의 언어가 전해주는 감동의 다른 표현이었다. 

올해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5년이다. 65년이 지났지만 역사는 아직도 고통 속에 시름한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은 채 숨그네(죽음과 삶 사이를 드나들면서 가쁘게 흔들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뮐러의 조어)를 탄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하지만 그건 지워지는 게 아니라 가려지는 것이다. 그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질수록 우리는 더 허기진다. 허기진 이유를 잊어가며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늘 배고플 것이다.   

“배고픈 천사는 이제 뇌 속이 아닌 목덜미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배고픈 천사는 기억력이 좋았다. 아니 특별히 기억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수용소의 유행 역시 일종의 배고픔, 눈(目)의 허기였다. 배고픈 천사가 말했다. 그렇게 가진 돈을 모조리 써버리지마, 앞일은 모르는 거야. 올 것은, 이미 다 왔어. 나는 생각했다.”(<숨그네> 282쪽)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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