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피플'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0.07.14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4)
  2. 2010.06.30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2)
  3. 2010.06.16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2)
  4. 2010.06.03 올디즈 벗 구디즈 (2)
  5. 2010.05.19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6. 2010.05.13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7. 2010.05.06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2)
  8. 2010.03.17 우리는 살아있기에
  9. 2010.03.10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10. 2010.03.03 다시, 문학을 생각하다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7 -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Dear Son」

사랑하는 아들아
네 안에 항상 힘세고 뭐든 잘 하는 아빠가 있게 해 주렴
나를 닮은 아들아
넌 멀리 보게 되고 넓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렴

*
Album form 이승환, 『Dreamizer』「Dear Son」 중  


나에게 들리는 따뜻한 노래

이승환의 『Dreamizer』에 수록된 「Dear Son」은 2007년 방영한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 중 ‘안녕 아빠’ 편을 보고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승환의 노래에는 ‘가족’이 종종 등장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발표한 3집 『My Story』(1994)의 마지막 트랙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 날 아시죠. 외롭고 약한 나를 세상물정 모른다 하시며 걱정하셨죠. 하지만 이제 아니죠. 내 어머니 당신께 약속드릴 게 있어요. 이제부터 당신의 강한 아들이 될 수 있다고” 1997년 발표한 5집 『Cycle』의 「가족」은 광고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며 많이 알려졌다.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안녕 아빠’에서의 ‘아빠’는 남매의 아빠보다는 부인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서의 아빠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았지만)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Dear Son」은 가사가 인상적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라면,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너와 먹고 자고 씻고 입고 울고 웃고... 가르쳐줄 게 좀 더 남았는데...”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라는 부제를 단 <윤미네 집>은 전몽각 선생이 1964년부터 1989년까지 장녀 윤미씨를 비롯해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1990년 약 1천부만 초판으로 출판되어 중고서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책이었다. 수집가들의 애도 꽤 많이 태웠다고 한다. 이 책이 2010년 빨간 옷을 입고 다시 세상의 빛을 봤다.  

책을 받아들고 집에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사진을 훌훌 넘겨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것이 아버지의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이 가족들의 모습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이에 대한 신뢰와 사진 속에 있는 이에 대한 사랑이 끈끈하게 묶여 있었다. 전몽각 선생은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은 것 같았다. 솔직히는 그렇게 따뜻한 시선 속에 자란 윤미씨가 부러웠다.  

누군가가 나를 그토록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혹자는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이라도 그 시선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가. 가족은 늘 아름답기만 한 이름이 아니다. 특히나 가족에서 태어나 가족으로 마감하는 우리네 가족들은 애증병존(愛憎竝存)의 장이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TV 속의 가족주의 신화를 들춰내지 않아도 좋다. 안에 있으면 벗어나고 싶고 밖에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감정은, 서른 해를 넘기고서도 계속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그들을 따뜻한 시선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머잖아 필자도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즈음엔 <윤미네 집>을 떠올리게 될 거다. 그리고 그들을 사진 속에 담으며 다시 한 번 <윤미네 집>을 떠올리게 될 거다. 아마도.

덧붙임.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읽었다. 여기에도 ‘심각한’ 가족문제가...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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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6 -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Alison」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 Album form Elvis Costello, 『My Aim Is True』「Alison」 중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책은 없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책은 사람과 같다.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책도 있고 만날 때마다 즐거운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관심은 있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책도 있고 말을 걸어보지만 대화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가장 힘든 책은 나름대로 말을 걸지만 소통할 수 없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여러 상황들이 있다. 꽉 막혀버린 내 문제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린 책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없는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책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할 이야기는 별 것 아니다. 읽는 책이든 만드는 책이든, 지난 몇 주 동안 전혀 소통할 수가 없었다는 것. 겨우겨우 읽어낸 책 두어 권과 페이지 넘기는 게 천근만근인 책 두어 권, 그리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롭게 작업했던 책들. 매달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특히 심난할 때가 있는데, 이번 달이 그랬다. 휴. 이런 필자를 구원(?)해준 건 만화책이었다. 

순정만화, 그 순정한 시절을 지켜봐준 친구들

중학교 무렵, 필자의 꿈은 만화잡지 기자였다. 만화 그릴만한 센스는 없으니 만화잡지에라도 취직해서 마음껏 만화를 보며 살고 싶었다. 또 당시 출간되던 댕기나 윙크의 편집후기는 만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만화보다는 일본 만화들이 더 많이 읽히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의 침체가 빈번히 거론됐다. 필자 역시 더 이상 ‘순정’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만화는 뜸하게 소식을 접하는 친구가 됐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지만 다음에 연락하지는 않게 되는 그런.

최근에 다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덩달아 만화까지 챙겨보게 됐다. 기왕 친구 얘기가 나와서 비교해보자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우연히 친해진 사람이 알고 보니 예전 친구의 베스트였다던가, 하는 류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냥저냥 친했는데 볼 때마다 새로워서 더 친해지게 되는 친구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그런 만화로 <노다메 칸타빌레>와 <호타루의 빛>을 꼽고 있다. 한참동안 <노다메 칸타빌레>에 빠져있었지만 최근의 ‘훼이버릿’은 단연 <호타루의 빛>이다. 어쨌거나, 필자는 천재도 아니고, 세계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맥주나 탐하는(?) OL이 되었으니 말이다. 

‘건어물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호타루가 27살부터 34살(혹은 그 이후까지) 겪게 되는 일과 사랑, 연애에 대한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그것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가정은 틀에 맞춰 만드는 게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돌아오는 장소가 어느새 기분 좋은 두 사람의 집이 되는 것이지” (14권)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은 아무리 좌절할 일이 있어도 그걸로 이 세상이 끝났다거나 자신의 포인트가 완전히 제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작은 힘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샌가 예전의 자신을 넘어선 것도 실감할 수 있다.” (15권) 아, 물론 그런 연애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내 소원은 진심이야

번외편인 카나메-유우코 커플을 연결해주는 곡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다. 혹자는 설정이 유치하다든가 「Alison」이 웬 말인가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선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나 비틀즈의 「Yesterday」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화 <노팅 힐>의 「She」로 너무(?) 많이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는 팝 보다는 락/ 펑크/ 컨트리 등 전방위 가수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즈 쪽에 엘비스 코스텔로가 알려진 것은 2003년 보컬리스트 다이애나 크롤과 결혼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다이애나 크롤이 발표한 『The Girl In The Other Room』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곡을 노래하고, 또 그와 함께 작곡하며 매혹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쌍둥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들 역시 서로의 ‘작은 빛’을 만난 셈이다. 

p.s _ 비를 가득 머금은 날씨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도, 「She」도, 그리고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이나 「Almost Blue」도 좋은 선곡일 듯하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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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5 -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넌 할 수 있을 거야
뒤를 돌아봐
웃어 이만큼 온 거잖아

언젠가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날
조금 멋쩍을지 몰라
너도 몰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너일 테니

* Album form Verandah Project, 『Day Off』「괜찮아」 중

어쩐지, 기필코, 괜찮아

김동률과 이상순이 베란다 프로젝트(Verandah Project)로 『Day Off』를 발표했다. 온라인 음반 매장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았다. 솔직히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만 있지 않은가. 김동률과 이상순이 만나 어쿠스틱한 음악을 한다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필자는 순전히 청개구리 심산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ay Off』는 최근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 됐다. 첫 곡 「Bike Riding」은 연애로 달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예쁜 곡이었고, 연애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어쩐지」는 듣기만 해도 간질간질해지는 곡, ‘이대로 그냥 멈출 순 없잖아 절대 아무렇게나는 안 돼(그럴 순 없어) 제대로 내가 맘에 들 때까지 내일의 내가 부끄럽지 않게’라고 노래하는 「기필코」는 불끈불끈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롤코의 담백함과 전람회의 풋풋함, 그리고 카니발의 세련됨을 적당히 뽑아내 한 장의 앨범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Day Off』를 듣기 전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책은 <씨네 21>의 인터뷰어 김혜리가 펴낸 인터뷰 모음집 <진실의 탐닉>이었다. 인터뷰 집은 화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만큼 직접적인 울림이 있기는 하지만 독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게다가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인터뷰어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이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왜 그렇게 ‘잘난’ 이들이 많은 건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유명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려는 얄팍한 속셈이 먼저였다. 그나저나, 『Day Off』는 꼭 소개하고 싶고, <진심의 탐닉>은 글을 쓰기 위해 구입까지 해 놓았고, 그런데 이를 어떻게 연결시킨담?!

베란다 프로젝트, 사랑 한 편 

『Day Off』에서「Bike Riding」이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지만 어쩐지 필자가 마음을 빼앗긴 곡은 「어쩐지」였다. 이 곡을 듣는 순간 떠오른 곡은 김동률과 이적이 결성했던 카니발의 1집 『그땐 그랬지』에 수록된 「그녀를 잡아요」였다. 전람회(김동률, 서동욱)와 패닉(이적, 김진표)의 멤버가 모두 참여해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에게 그녀를 붙잡으라며 충고와 위로를 해주는 곡이다. ‘지난 노래 가사처럼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백하면 어때요?’(모두들 알다시피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일컫는 가사다) ‘이 여자다 싶을 때가 또 오는 게 아니죠.’ ‘두고 두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그때 가서 우리 책임 없어요.’ 같은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대의 정서를 닮았다. 그때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연애문제로 힘들어했고,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고, 그러다가 학교도 과감하게(!) 빠질 수 있었다. 연애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청춘의 6할쯤을 사로잡은 건 ‘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 참여한 「어쩐지」는 ‘다시 연애 같은 건 못할 것만 같다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어대던 너 우리 몰래 풍덩 사랑에 빠져서 몰라볼 것 같아 다른 사람 같아 어색해’ ‘Bye Bye 기쁘게 보내줄게 가끔은 우리도 잊지는 말아줘 축하한다 정말 참 부러워 근데 왜 이리 맘 한구석이 휑한걸까’라고 노래한다(이 곡에서 이적이 참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설마 아기 아빠라 빼놓은 건 아니겠죠?!).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연애 얘기에 수줍어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고, ‘불꽃’ 사랑보다 ‘군불’ 애정을 선호하게 된 30대의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를 노래하는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젊음과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진심의 탐닉, 인생 한 편

그런가하면 <진심의 탐닉>에서는 스물두 명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표현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들이 창조적인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진지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찍었던 청춘이라는 영화는 좌충우돌(좀 멋지게 좌충우돌이긴 했지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찍고 있는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고 우직하며, 자아성찰적이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그가 생각하는 실패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가짜로 산 인생이요. 가면의 생. 특히 이른바 성공한 사람 중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경험이 없고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 (27쪽)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잡지 <키노>를 이끌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이 와 닿을 것이다. “시네필 중에는 쓰거나 하지 않고 계속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바보예요. 중의적 의미의 바보죠. 반면 어떤 학생은 줄창 책만 읽어서 모르는 이론가가 없어요. 하지만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대화해보면 머리가 뒤죽박죽이에요. 결국 저는 보기, 읽기, 쓰기의 삼위일체가 계속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만들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가야 하고요. 쓰는 것을 멈추는 순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서랍처럼 느껴져요.” (120쪽)

읽는 내내 ‘질투크리’가 ‘작렬’한다.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어쩜 이렇게 생각이 깊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멀었다는 투다. 그 겸손이 ‘척’이 아니라 ‘진심’인 걸 알기에 그들의 인생 한편 한편이 매력적인 영화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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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디즈 벗 구디즈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4 - 올디즈 벗 구디즈

「오빠는 풍각쟁이」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 Album form 최은진, 『풍각쟁이 은진』「오빠는 풍각쟁이」 중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

얼마 전 신문에 신간 <근대서지>가 소개되었다. 2009년 7월 창립한 근대서지학회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묶어 낸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근대(近代)와 관련된 서지(書誌)를 다루는 반년간지다. 창간축사에서 ‘동호인들의 도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썼듯 기존 학회지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과 글감을 택하고 있다. 책의 문을 여는 ‘문원’에서는 ‘카피가 되어버린 안도현의 시 한 편, 그 독법의 에고이즘’(박성모), ‘울랑브르트의 헌책방’(박태일) 등 책과 관련된 수필이 소개되고 있다. 근대 문헌들이, 한자도 많고 한글 표기/표현이 달라 어려운데 비해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그럼에도 한자가 나오면 적당히 포기(?)하며 읽었다) <교수신문>에 소개된 서평에 의하면 “식민지기 일본에서 간행된 한국어출판물처럼 기존 서지자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 뿐 아니라, 출판미술 목판화나 근대 초기 잡지 영인현황 등 그동안 소홀히 지나쳤던 분야의 서지와 정확한 서지 파악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소개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평을 연결한다. 

필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근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재즈 때문이다. 1920~30년대 한국에 재즈가 소개되었다는 문헌들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듣는 재즈와는 달리(당시 재즈는 미국에서 춤추며 즐기는 대중음악이었다) 도시적 감성이나 분위기에 치중하고 있지만 말이다. 장유정이 쓴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는 첫 문을 <삼천리>에서 인용한다. “술과 계집, 그리고 엽기가 잠재하여 있는 곳이다. 붉은 등불, 파란 등불, 밝지 못한 상데리아 아래에 발자취 소리와 옷자락이 비비어지는 소리, 담배 연기, 술의 냄새, 요란하게 흐르는 재즈에 맞춰서 춤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 파득파득 떠는 웃음소리와 흥분된 얼굴, 그들은 인생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모조리 잊어버린 듯이 즐겁게 뛰논다.” (현대어로 옮겨지긴 했지만) 이 글이 발표된 건 1932년이다. 또한 1930년대 기록에 의하면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은 현대인보다 더 멋진 도시남자였다. 허연 기자는 그를 “그는 코피를 쏟아가며 글을 쓰면서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운다. 원두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10리길을 걸어 다방에 가고, 재직하던 학교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베토벤에 심취했다. 밤이면 위스키를 마시며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날에는 눈물을 흘리는 감성어린 모던보이였다.”고 썼다. 1930년대 커피, 베토벤, 스키를 상상할 수 없는 게 필자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래서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보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더 신기했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근대의 음악이라고 하면 사실상 재즈나 클래식보다는 만요(漫謠)가 더 떠오른다. 1930년대 불리던 만요는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흔히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만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억압된 식민지 사회에서 만요가 뒤틀림과 풍자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빠는 풍각쟁이라고 타박하는 이 노래 역시 “식민지 시대의 식생활 문화와 가족애, 삶의 풍속이 코믹하고도 흥미롭게 반영된” 곡이라고. 2008년 <천변풍경 1930-이태리의 정원>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던 연극배우 최은진이 <풍각쟁이 은진>을 발표했다. 근대가요 13곡이 칼칼하고 구성진 목소리에 실렸다. 근대의 매력을 알고 다시 듣는 ‘오빠는 풍각쟁이’는 근사한 멋이 있다.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1920년 혹은 30년 서울로 가보고 싶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 이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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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3 -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중략)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보면 걸어가다보면 걸어가다보면 

* Album form 강산에, 『Vol. 3 - 연어』「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중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춰봤다. 마음에 꼭꼭 담아두려고 몇 번이나 이 책을 읽던 시절에는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스스로 ‘먼 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사춘기가 훌쩍 지났다. 어른이 되어 달라진 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희망을 잃었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잃은 건 단지 어렸을 때 꿈꿨던 혹은 꿈꿨다고 믿는 희망들이다. 어릴 적 꿈이 순수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지금의 꿈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는 건, 기억의 미화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모천회귀(母川回歸)성 존재가 아닌 인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는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연어 이야기>가 나왔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의 속편이라면 그 부담감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된다. <연어 이야기>는 3인칭과 1인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학교를 통해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끈’이나 ‘스며듦’으로 치환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연어>에 비해 직접적이다.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는 태어난 강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생이 시작된다. ‘나’는 알이었다. 그것도 다른 연어들보다 한 달이나 늦은 알이다. ‘나’는 말한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건,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나’가 ‘너’를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언제부터 연결되어 있었는지 모를 끈으로 연결되어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스며든다. “물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81쪽) 그리하여 ‘나’는 “너를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아야 했지만, 그러나 끝내 붙잡지 않”고 울지도 않는 연어가 되었다. 그리고 예견된 죽음을 향해가는 ‘너’에게 “너는 자유야!”라고 외쳐줄 수 있는 주체적 자아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삶을 배우고 성장한다. 

희망을 찾는 것도, 희망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많은 벽에 부딪히고 많은 것들을 잃지만 살아나가는 삶이 곧 희망이다. 신문이나 주변에서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지금 이 삶을 살아가는 당신이, 바다로 나아가려는 당신이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2010/05/19 - [블로거, 책을 말하다] - <시간의 혼> - 찰나에게 영원까지,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다!
2010/05/18 - [블로거, 책을 말하다] -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 영혼을 깨우는 저항의 교육학
2010/05/17 - [반디 음악 광장]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 31, 21번> -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
2010/05/14 - [책, check, 책] - <거꾸로 생각해 봐> - 거꾸로를 다시 거꾸로, 그래야 '바로'
2010/05/13 - [민용 in 재즈피플] -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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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2 -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사계」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Album form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사계」 중

날 붙잡은 노래

‘노래’를 통해 어떤 것들, 특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일부분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1992년 보았던 KBS 드라마 <희망>(양귀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에서 울부짖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운동’을 인식하게 했고, 어디선가 듣고 경쾌한 리듬이 좋아 흥얼거렸던 ‘사계’는 ‘노동’을 인식하게 했다. 물론 이 곡을 듣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라는 건 없다. 컬러 TV와 컴퓨터의 호혜 속에 자라난 필자는 지금도 운동이나 노동에 대해 ‘인식’만 하고 있는 정도다. 다른 민중가요는 거의 모르거니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MC 스나이퍼 버전으로, ‘사계’도 거북이 버전으로 더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노래들은 몇몇 책들을 읽으며 빨간꽃 노란꽃처럼 내게로 와서 ‘생각’이 되었다.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

망제작소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를 내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우리들의 구로동 연가 -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를 발견했다. 이 총서의 열여섯 번째 책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필자는 노동에 대해 글을 쓸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노동자로 살고 있으면서 노동에 대해 모른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노동을 ‘자연상태의 물질을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아직도 투쟁이나 피로 같은 것을 머금고 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그 단어의 기억을 구성한 요소 중 하나다. 

“구로공단의 공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법안이 제정되면서, 1967년에 1단지, 1972년에 2단지, 1976년에 3단지가 만들어졌다. … 도시 외곽에 버려진 철거민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떠받친 여성 노동자들의 구로동의 주인이었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서울이라는 환상을 좇거나 남자 형제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봉제공장, 먹고 자고 하던 벌방은 구로동의 상징이었다.”
(17쪽) 

뉴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들썩거리던 2000년, 구로공단 역은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디지털’이라는 상징적인 이름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구로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의 구로는 전혀 다른 도시다. 하지만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문재훈씨는 “구로동의 변화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대떡 신사의 변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빈대떡 신사의 변화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 노래 있잖아요. 옛날 노래.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돈이 없어서 맞는 건데, 외양은 양복이지만.” (114쪽) 구로의 실제적인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구로의 상징적인 기억은 여전하다. 지금 노동자들이 ‘빈대떡 신사’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노동조합을 거부하는 대기업들에 열광하고 기륭전자와 이랜드 파업, 88만원 세대와 대학거부 선언을 남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지도 모른다.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 가드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 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리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아니, 어쩌면 더 서글프게도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고 타박하는 요릿집 종업원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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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1 -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Seduce」


한번더 조금더 너의 입술을 내게 가져와
아직은 놓지마 내게 미친듯 너를 홀려와
여기든 어디든 네가 누구든 난 상관없어
지금이 아니면 넌 날 다시는 볼 수 없어
네 기회는 한번뿐야


* Album form 이윤정, 『육감 (六感)』「Seduce」 중 


19세 미만은 알아서 눈 가리세요

“섹스가 억압된다면, 다시 말해서 금기가 되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침묵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면, 누군가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고의로 규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미셀 푸코(<성의 역사> 중)의 지적처럼 성(性)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악시되는 시기가 있었다. 성에 대한 통제가 사회적 산물로 인식되고 역사적·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를 쓴 조너선 개손 하디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에 관한 한 암흑시대 같았던 20세기 무렵에 사람들은 각종 카탈로그와 지침서 등을 통해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성에 관한 지식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일부에서는 ‘포르노’라고 비난했기 때문에 이 책들은 몰래 구입해서 읽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3억부나 팔려 나간 리틀 블루북 시리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성에 관한 정보에 항상 목말라 했다. 오늘날 각종 매체를 통해 이런 정보들이 지나치게 넘쳐 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렇게 급변하기까지는 한 세기가 채 걸리지 않았다.” (122쪽)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는 혹벌을 연구하던 동물학자였으나 1930년대 말 인디애나 대학에서 ‘결혼 강의’를 맡기 시작, 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의 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금기시되어 있던 성을 연구하면서 1만 명 이상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사람들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성행위를 분석했다. 그 결과물이 흔히 ‘킨제이 보고서’라고 불리는 <남성의 성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1948)와 <여성의 성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1953)이다.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는 이 두 권의 책이 킨제이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킨제이 보고서’라는 명칭을 싫어했다고 한다. 또 어떤 자료에는 위 두 책의 명칭이 언론에 적합하지 않아 ‘킨제이 보고서’로 쓰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당시 이 책들은 사회적 파장과 관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으며, 특히 <여성의 성 행동> 보고서는 발간 2주만에 6쇄(18만 5천부)에 돌입했다.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2005년 국내에 <킨제이 보고서>를 개봉하면서 내건 카피다. 포스터에 강렬하게 ‘SEX’를 써넣거나 마광수 교수와 함께 하는 시사회 등을 주최해 이야깃거리를 부풀리기도 했지만 개봉 전부터 영화에 대한 선정성이나 몇몇 장면의 노출 수위 등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덜 야했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국내에서는 ‘성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처럼 소개되었지만 영화의 원제는 <Kinsey>이며 인간의 성행동을 연구한 ‘킨제이’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내 포스터에는 ‘Let's Talk About Sex’라는 타이틀이 작게 쓰인 정도다. 아직 ‘킨제이 보고서’도 번역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킨제이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의 연구는 여전히 학계나 사회적 평가도 엇갈린다. 그런 면에서 빌 콘돈의 영화와 하디의 평전은 ‘인간 킨제이’에 초점을 맞춘다.  

 

<킨제이 보고서>를 감독한 빌 콘돈은 “킨제이는 미국인들이 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지만, 현재 그는 거의 잊혀진 상태”라고 이야기한다(네이버 영화 정보 중). “킨제이는 각각의 사람들은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관해 이야기 할 때에는 ‘보편적이다’ ‘드물다’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급진적인 개념입니다.” 영화를 통해 노출 수위를 따지기보다는 킨제이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기를 바란 언급이다. 

그리고 하디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킨제이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킨제이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들에게 쓴 4만~5만 통의 편지들 중 일부만 읽어보아도 그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주었는지 알 수 있다. 자위행위는 전혀 해롭지 않으며, 동성애는 흔한 것이고, 성욕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없는 것도 정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예전의 학자들과는 달리 킨제이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킨제이는 또한 헨리 밀러나 D.H.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성에 관한 이야기를 금기의 영역에서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480쪽)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한 선택에 앞서
진보의 재탄생
리얼진보
현대정치의 겉과 속
한명숙 부드러운 열정 세상을 품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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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있기에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4 - 우리는 살아있기에

「꿈이라는 건」

하지만 꿈이라는 건 끝없이 두드리고 말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내가 네게 말한 꿈이야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그게 바로 나의 꿈이야

* Album form 신성우, 『내일을 향해』「꿈이라는 건」 중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학생증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다. 이면지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위치를 설명해준 행정실 조교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도서관을 찾을 수 있었다. 낯선 도서관에서 여기저기 헤매다가 결국 눈에 잘 뜨는 곳에 위치한 필독도서 서가에서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어 들었다. 원제는 <인간의 의미 탐구(Man’s Search for Meaning)>이지만 2005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죽음의 수용에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나중에 검색해보니 안나 S.레드샌드가 지은 빅터 프랭크 평전(2008)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꽉 짜인 일상에 학교를 ‘간다’를 덧붙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빅터 프랭크는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날이 올 것”(161쪽)이라며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역설한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175쪽) 휴, 당분간은 그 말을 믿어 볼밖에.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가늠하다

일반론은 아니지만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우리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래도 나는 살만한 것’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역으로 ‘나는 이렇게도 살았으니 당신도 힘내서 살기를 바라’기도 한다(그렇지만 우리는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차이와 정도를 이해해야 한다. 10의 고통을 가진 사람과 1의 고통을 가진 사람을 단순 비교하며 1의 고통이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신경전신과의인 지은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적어 내려간 것이다. 단순한 체험만이 아닌 의사로서의 분석과 치료가 이 책이 지닌 힘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내재적 효용은 최악의 고통에서 살아남아 타인의 고통 수치를 줄여주는 것이다. 그는 삶의 의지를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120쪽)로 표현하며 니체의 말을 인용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137쪽)고 말한다.  

지금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사람)가 많다. 돈은 없고, 일자리는 찾을 수 없고, 앞날은 막막하고…. 순환론적인 이 고민이 개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세상을 탓하고, 나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빅터 프랭크는 자신의 존재를 찾을 것을 당부한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142쪽)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183쪽)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138쪽) 

우리는 살아있기에 열심히 태엽을 감을 수밖에 없다 

빅터 프랭크가 강조한 존재와 삶의 의미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열심히 태엽을 감으며 살 수밖에 없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기에 사는 삶 보다는 살아가고 싶은 삶이 더 우리를 의미 있게 만든다. 그게 바로 꿈이다. 지금은 연기자로 더 인식되는 신성우는 1992년 <내일을 향해>로 데뷔했다. 테리우스라는 별명답게 멋진 외모와 근사한 음색도 인기 요인이었지만 그의 노래에는 내일, 희망, 꿈같은 단어들이 존재했다. 그의 꿈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는 자신이 불렀던 노래처럼 꿈을 찾고 이루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메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반납일자와 함께 누군가가 예약대출한 내역이 도착했다. ‘필독도서’라서 읽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책이 그들에게 희망을 기억하게 하고 꿈을 찾아줄 수 있기를.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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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3 -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가을편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Album form 김민기, 『아침이슬』「가을편지」(고은 시) 중

뜬금없는 가을편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뜬금없는 가을편지. 지난 3월 6일 피나 바우쉬 다큐멘터리 <Coffee With Pina>를 봤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내한(3월 18일~21일)을 앞두고 지난해 타계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다큐멘터리는 이스라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Lee Yanor(리 야노르라고 읽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가 2002년 파리와 2005년 부퍼탈에서 피나 바우쉬의 작업과정을 찍은 영상으로, 그 중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Rough Cut(러프컷)’의 연습과 공연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렀다. 곧이어 나지막이 깔리는 음성, 김민기가 부른 「가을편지」였다. 스쳐가는 낯선 풍경 사이로 거울 앞에 홀로 연습하는 피나 바우쉬의 모습이 겹쳐졌고, 김민기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 노래했다. 눈물이 났다. 언젠가 글에서 썼듯 그녀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구체적인 감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삶(을 구성하는 총체적인)의 역동성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존 버거는 필자에게 ‘안개’ 같은 작가다. 얼마 전 반디 블로그를 통해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읽고 나서도 그에 대해 정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언젠가 류시화씨가 썼던 것처럼 ‘안개 속에서는 /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제7의 인간>을 통해 비로소 시간이 가면 /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 서로를 바라본다’(「안개 속에 숨다」 中)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 속의 ‘그’는 자신의 국가를 떠나 ‘기계’가 되고자 하는 이민노동자다. 존 버거의 지독한 표현을 들자면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 (73쪽)이다. 심지어 그는살기 위해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 수도 있다’ (90쪽)고 이야기한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不死)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 ―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65쪽)

이민노동자 ‘그’는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니다. 문자 자체로도 그는 이미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행간에서의 ‘그’는 그인 동시에 우리이고 우리인 동시에 세계다. “이민노동자의 경험의 윤곽을 그리고, 그것을 그 노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시켜 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다루어진 문제는 유럽에 관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지구 전체에 해당된다. 주제는 부자유(不自由)이다. 이 부자유는 객관적인 경제제도와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연관시킬 때에만 완전하게 인식될 수 있다. 진실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자유는 바로 그 양자의 관계인 것이다.” (5쪽)

그 남자. 한 이민노동자의 존재

무용가 정영두가 <제7의 인간>을 새로운 언어로 재현한다. 오는 3월 10일과 11일 LG 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 작품의 모태가 바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제7의 인간>이다. 정영두는 “이번 작품 <제7의 인간>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삶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고 이야기한다. “고향, 가족, 직장, 나라들로부터 떠나고 머물기를 강요받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떠나고 머무는 것을 통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개인적 현상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정신과 몸은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LG 아트센터와의 인터뷰 中)라고 덧붙인다.  

무용에 문외한인 필자는 정영두를 잘 모른다. 그를 통해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제7의 인간>을 알게 되었고, <제7의 인간>을 통해 정영두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그’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2004년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일본과 프랑스 등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용평론가 김남수가 2004년 <문화예술>에 쓴 글 제목처럼 ‘사회적 여백과 감동의 독창적 직조술’을 이뤄내는 춤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만으로는 그의 춤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기사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당신의 작품을 보고 우는 관객이 많다고 하자 정영두는 ‘내 작업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이 말 없는 춤에서 그것을 발견할 때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몸으로 느낀 감동은 쉽게 찾아오진 않지만 오래 머문다.’고 했다.” (2월 8일 조선일보 中)

이른 봄에 받은 「가을편지」의 답장으로 <제7의 인간>이 표현할 음악을 보낸다.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지금 이 시간에도 지진 피해로 인해 아파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모두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칠레 대지진 구호 후원하러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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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학을 생각하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 22 - 다시, 문학을 생각하다

「Moai」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
나는 멍하니 이 산들바람 속에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어

* Album form Seotaiji, 『Seotaiji 8th Atomos Part Moai』「Moai」 중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세계에서 가장 권투를 잘하는 나라는?” 칠레는 한때 유행했던 말장난 속의 나라였다. 그 뒤로는 이후 서태지의 「Moai」라던가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 칠레 와인 회사)의 와인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접하던 나라가 칠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그린 <일 포스티노(Il Postino)>도 칠레가 아닌 이탈리아의 감성으로 연결됐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을 읽게 된 것도, 칠레 작가라는 이유는 거의 없었다. 신문 북 섹션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필자에게는) 낯선 작가임에도 꽤 크게 기사화된 것이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냈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이라는 점과 다소 유약해 보이는 볼라뇨의 사진이 관심을 끌었다. 그것 외에는 칠레, 그것도 문학? 이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필자의 무지를 이해하시기를.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152쪽)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의 입을 빌어 볼라뇨는 이렇게 빈정거린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앞서 조국인 칠레에 대해 “신의 손길에서 버림받은 이 나라에서는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교양이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129쪽)고 자조한 바 있다. 

국가의 위선이 문학적 위선을 야기한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위선적인 국가에서 문학만큼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을 인용해보면 볼라뇨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 연설에서 볼라뇨는) <오직 품격만을 생각하는 창작 행위는 아찔한 낭떠러지 위 계곡 길을 걷는 것처럼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적 순수성과 그 치열함을 지키려면 문단의 우상, 유혹, 관행 등과 위험한 대결을 벌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167쪽) 

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이바카체(라크루아의 필명)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의 삶을 회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문장은 딱 둘이다. 두 번째 문장은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고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한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문장 어디쯤을 뒤집어서 이해해야 할 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혹자는 볼라뇨를 두고 “우디 앨런과 로트레아몽, 타란티노와 보르헤스를 섞어놓은 듯한 비범한 작가”라고 표현하지만 필 자의 이해 수준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와 움베르토 에코를 떠올리며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지를 반복해야 했다. 이바카체의 말처럼 “행간에 숨은 의미가 있는 진지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곤두섰다. 은폐된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우스꽝스러운 편지의 행간에 은폐된 내용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89쪽)였던 셈이다. 

결국 이 낯선 나라의 낯선 작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옮긴이의 말’과 ‘인터넷 검색’ 등의 편법(?)을 이용해야 했다.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글로 볼라뇨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아직 볼라뇨는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톺아볼수록 글이 살아난다. 어쩌면 옮긴이 우석균씨의 다음 말이 의미하듯 볼라뇨는 <칠레의 밤>만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열린책들에서는 <야만스러운 탐정들> <2666> 등 11권의 작품을 더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볼라뇨에 대한 필자의 판단은 그때까지 미뤄둘 예정이다. “볼라뇨의 이러한 몸부림이 <파괴를 위한 파괴>인지, 아니면 <위대한 창조를 위한 파괴>인지는 앞으로 열린책들에서 계속 번역, 출간될 그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옮긴이의 말, 168쪽)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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