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해당되는 글 71건

  1. 2015.01.26 《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2. 2015.01.05 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3. 2014.01.20 [Manic Street Preachers: Rewind The Film] - 관조와 성찰의 로큰롤
  4. 2014.01.17 [들리는 블로그] Steve Miller * Serenade
  5. 2014.01.07 《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6. 2013.05.27 [가을방학: 선명 [2집]] - 선명한 기쁨, 선명한 슬픔
  7. 2012.10.04 [들리는 블로그] 조동익 * 엄마와 성당에
  8. 2012.07.19 [들리는 블로그] 짙은 * Feel Alright
  9. 2012.04.3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10. 2012.03.19 [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The Diva, A Trivute to Whitney Houston

《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남무성 | 《Paint It Rock》 | 북폴리오 | 2014


한국 어른들은 만화책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면서 만화책은 그저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유치한 것’으로 꾸짖기 일쑤다. 정치적으로 유독 피곤한 시대를 살아 그런지 우리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했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사고가 경직된 탓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모 세대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만화를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지의 슬픈 대물림이다. 8년 전, 붐비기로 악명 높은 도쿄 지하철 안에서 전과 크기만 한 소년챔프를 정독하는 정장 차림의 일본인 회사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화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한국 어른들은 나를 더 한심하게 만든다. 그 어렵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칸트의 《비판》 시리즈, 《논어》와 《맹자》를 만화로 풀어내면 얼마나 이해하기가 쉬워지는지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천시하고 무시하는 건 알량한 지적 허영이자, 경험하지 않고 단정 짓는 편견과 선입견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북 치고 장구 치다

남무성의 《Paint It Rock》도 한국 ‘어른들’은 그저 코흘리개들이 좋아하고 환호하는 일개 만화책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척 베리(Chuck Berry)부터 콜드플레이(Coldplay)까지 록의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의 첫 권을 읽었거나 작가의 지난 작품 《Jazz It Up》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 비웃음들이 얼마만큼 어설프고 쓸데없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만화여서 쉽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이고 읽는 사람들에게 축복인지 저들은 아직 잘 모른다. 단지 그 만화를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Paint It Rock》이 좋은 건 글과 그림을 모두 음악평론가인 작가가 직접 쓰고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가벼운 우연처럼 보여도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한 장르의 통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개인 사유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집필을 위한 자료 찾기와 정리는 누군가 도와줄 수 있겠지만, 생각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고 능력이므로 남이 해줄 수 없다. 생각한 이가 스스로 표현했을 때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띠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런 면에서 남무성은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글과 그림이라는 두 재능을 모두 가졌고, 록 역사에 그것을 아주 잘 발휘해 내었다.

웃기니까 만화다?

이 책은 일단 웃기다. 무릇 역사란 어느 장르건 진지한 법인데 이 책은 진지함을 유머로 부드럽게 만든다. 다루는 내용은 의도한 과장과 개그 코드를 빼면 모두 사실(Fact)이어서 웃으면서 록의 지식을 하나하나 자신의 머릿속에 쟁여나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만화책의 힘이 있는 것이다. 물론 《Paint It Rock》은 어쩌면 만화책을 가장한 ‘진짜’ 록 역사책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충분히 의식한 듯 “만화책에 글이 왜 이렇게 많으냐”며 “해골 아픈 이야기들”을 원망하는 독자들을 가정한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책은 만화책이라고 쉽게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만큼 ‘글’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수많은 밴드와 뮤지션들이 얽힌 관계, 각종 상황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야 하니 어찌 그림으로만 가능했겠는가. 쥘 베른의 책에서 독자의 숨돌림을 도운 게 삽화라면, 남무성의 책에선 글이 그 역할을 했다.

듣기의 미덕

그림도 많고 글도 많아서 이 3부작을 읽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독자의 시간을 위협할 요소가 바로 음악이다. 작가도 책 속에 언급해두었듯 이 책은 록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음악이 먼저고, 이야기는 그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유일한 약점이랄까. 그것은 “자우지장, 두다다다”의 의성어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와도 직결된다. 책이 다룬 뮤지션들의 대표곡이 담긴 컴필레이션 CD를 한 장씩 부록으로 붙여도 될 법했건만, 역시나 저작권 문제라는 큰 장벽 때문에 포기해야 했으리라. 이 난관은 독자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방법은 하나, 책에서 언급한 앨범과 곡들을 직접 찾아 듣는 것이다. 요즘 같이 좋은 세상은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CD를 구하기 힘들면 음원 사이트로 가면 되고 거기에도 없으면 유튜브라는 괴물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필자도 해봤는데 웬만한 앨범과 곡은 다 찾아 들을 수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취지도 좋은 록 음악들을 함께 듣자는 데 있는 만큼 듣기는 《Paint It Rock》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한, 어쩌면 읽기보다 더 본질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입문자용이 아니다

에필로그에서 남무성은 이 책이 “어린 음악 팬들에게는 정보를 주고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년들에게는 향수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책이 입문자용이면서 입문자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꾸준히 록 음악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좀 가벼울 수 있는 반면, 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버거운 내용일 수도 있겠다. 우선 등장하는 뮤지션들 수가 엄청나고 그에 따른 앨범과 곡 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 겨냥했던 독자층(=록 입문자)이 이 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록에 관해 좀 더 아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뮤지션 이름도 외워야 하고 그들의 관계도 파악해야 하고 앨범도 찾아야 하고 곡도 찾아야 한다. 찾으면 또 들어야 한다. 그나마 얼터너티브 록은 짧고 명쾌하지만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 쪽으로 가면 듣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브릿팝은 감미롭지만 헤비메탈이 만만치 않은 것 역시 기나긴 아트록 러닝타임의 압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단순한 입문자용이 아니다. 록에 관심이 있고 록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만큼 섭취하고 즐길 수 있는, 굳이 따지자면 ‘중급’ 정도 수준의 서양 록 통사라면 맞겠다. 뉴메탈이 빠진 것에 일부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끼는데, 저자의 주관이다. 주관이 배제된 저작은 있을 수 없다. 매체가 가진 오래된 특징, 관행을 본다면 그리 큰 오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콘과 시스템 오브 어 다운까지 나왔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그에 비길 만한 재미와 감동이 《Paint It Rock》에 있으므로 더 이상 트집거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요코야마는 따분한 이문열의 《삼국지》를 내 기억에서 밀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남무성도 마찬가지다. 록에 취하고 싶은 자들은 이 책을 집어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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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David Guetta | 《Listen》 | Warner | 2014

 

언젠가부터 EDM이라는 말이 하나의 장르 용어처럼 굳어진 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음악 관련 미디어/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EDM이라는 용어는 Electronic Dance Music, 즉 ‘전자댄스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즉, 전자음악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춤추기 좋은(danceable) 음악’ 혹은 ‘클럽 지향적인(club-oriented)’ 음악만을 따로 지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EDM이 포함하는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하우스(House)부터 트랜스(Trance), 덥스텝(Dubstep) 등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리킨다. 아예 전자음악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처럼 쓰이는 경우도 가끔 보인다. 마치 특정한 음악적/산업적 스타일에 바탕을 둔 음악만을 지칭하던 용어인 케이팝(K-pop)이 최근 들어서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말하는데, 쓰인 것처럼 말이다.

 

장르의 특성상 EDM 음악은 프로듀서/DJ의 이름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데, 수많은 인기 DJ/프로듀서 중에서도 전자음악 장르 바깥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데이빗 게타(David Guett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게타는 2000년대 초중반 이미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던 유명 DJ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앨범 [One Love](2009)을 통해 그는 좀 더 넓은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힙합 음악에서 전자댄스음악으로 전향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성공작 [The E.N.D.](2009)의 히트곡 ‘I Gotta Feeling’의 작곡자로 참여한 그는 미국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데 성공했다. 전통적으로 전자댄스음악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수용자들이 전자음악에 빠지게 된 것이 블랙 아이드 피스의 성공 이후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성공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게타가 끼친 영향력은 굉장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리한나(Rihanna), 핏불(Pitbull),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여전한 감각을 과시한 그는 3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 [Listen]을 발매했다. 이미 ‘Lovers on the Sun’, ‘Dangerous’와 같은 싱글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상업적으로는 괜찮은 반응이 예상되고 있지만, 전자음악의 팬들 및 몇몇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이건 EDM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게타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요즘의 EDM에 뭔가 ‘소울’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EDM 음악들은 너무 프로듀싱 잔재주에 의존하여 소리를 크게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케스트라나, 록밴드, 혹은 펑크 밴드까지도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이 앨범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을 들어본바, 확실히 게타는 자신의 음악에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존 레전드(John Legend), 에밀리 산데(Emily Sande), 스크립트(The Script), 라이언 테더(Ryan Tedder), 버디(Birdy),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시아(Sia) 등 현존하는 최고 인기 DJ의 정규 앨범답게 본작에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에 걸친 유명 뮤지션들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음악적 성격은 참여한 곡 속 곳곳에 녹아 앨범을 굉장히 풍성하게 만든다.

 

장르적 풍성함 및 스타일의 다양성 속에서도 게타는 앨범의 분위기가 두서없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하나의 일관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도록 잘 조절하고 있다. 거기다가 그의 정규 앨범을 언제나 관통하고 있던 대중성 가득한 접근법은 이 앨범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었다. 단순한 싱글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에 신경을 쓰고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싱글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듣기에 상당히 좋다. 건너뛰고 싶은 ‘단순 앨범 채우기용’ 곡이 없다.

 

‘전자댄스음악의 미래’, 혹은 좀 더 강렬하고 본격적인 전자음악을 기대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게타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49세가 되는 장년 아저씨다. 언제까지 그가 유행의 최전선에 설 수는 없지 않을까? 2000년대 후반 이후의 게타는 ‘최신’보다 ‘대중적인 전자댄스음악 프로듀서’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번 앨범은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대중성을 잔뜩 갖추고 있되 여전히 세련된, 괜찮은 앨범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규탁'님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스스로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믿고 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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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c Street Preachers: Rewind The Film] - 관조와 성찰의 로큰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 [Rewind The Film] | Columbia | 2013

 

예정된 더블앨범 중 한 장이 지난 가을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겨울에 알았다.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이하 '매닉스')의 2013년 신보는 국내 라이센스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하마터면 이 멋진 음악을 지나친 채 해를 넘길 뻔 했다. 12월 31일. 영국 브릿팝 신에서 가장 사랑하는 팀의 신보를 해의 끝에서 만났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했든 이 앨범은 『Generation Terrorists』나 『The Holy Bible』관 거리가 멀다. 신보는 촘스키(Avram Noam Chomsky)와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장전한 펑크록보단 티에스 엘리엇(T.S. Eliot)을 대동한 '어쿠스틱' 브릿팝, 좀 더 구체적으론 평화롭고 쓸쓸한 웨일스의 풍광을 벗삼아 풀어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포크(Folk) 뮤직이라면 맞겠다. 현지 평단은 그것을  "『Everything Must Go』 이후 처음으로 되찾은 날것의 감정"이라 풀어썼고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까지 언급되도록 부추긴 첫 곡 「This Sullen Welsh Heart」는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물이다.

 

영국 여가수 루시 로즈(Lucy Rose)가 살을 더한 이 곡은 매닉스와 같은 웨일스 출신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르 본(Cate Le Bon)이 리드한 「4 Lonely Roads」와 함께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같은 맛을 전하는데 이는 다시 「Manorbier」에서 정점을 찍을 IDM의 까끌한 질감과 브릿팝의 넉넉한 정취로 이어져 누군가로 하여금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와 『Lifeblood』 사이 어딘가"를 지목하도록 만든다. 그 중심에 바로 '도쿄 찬가' 「(I Miss the) Tokyo Skyline」이 있고 곡은 실제로 시부야의 야경과 모노레일의 밤 풍경을 닮은 듯 쏜살같은 은근함으로 바스러진다. 

 

첫 싱글은 「As Holy as the Soil (That Buries Your Skin)」처럼 아틀란틱 소울(Atlantic Soul) 문양을 새긴 「Show Me the Wonder」. 앨범에서 유일하게 업비트로 무장한 이 곡은 두 번째 싱글로 유력한 「Anthem for a Lost Cause」와 더불어 가장 매닉스다운 운치를 들려주고 있는데, 두 곡은 혹자가 굳이 알이엠(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과 이 앨범을 결부시키려 했던 이유도 같이 품고 있어 흥미롭다.

 

"Now is just one last chance (...) Now ashes, bone and splinter" - 「Anthem For A Lost Cause」 가사 중

 

그리고 이 철학적 대구는 급기야 「Rewind the Film」이라는 관조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영화 <켈리+빅터(Kelly+Victor)>의 감독 키어런 에반스(Kieran Evans)가 연출한 그 '노인들의 회한'은 결국 그리운 추억으로, 침묵의 연대로 나란히 서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끝. 매닉스는 음악을 통해 그 가상 체험을 주선해주었다. 

 

물론 소리가 부드럽고 서정적이라 해서 명색이 클래쉬(The Clash)를 추종하는 그들의 가사가 마냥 말랑할 리 없다. "존 레논(John Lennon)의 노래 같은 피곤함을 느"껴 "절망을 만나는 3가지 방법"을 찾던 그들은 마지막곡 「30-Year War」라는 곡에서 삭였던 울분을 토해낸다. 거기엔 얼마 전 끝난 철도 파업과 닮은 영국 광산 노동조합 파업, 이른바 '오그리브 전투'와 96명의 생명을 앗아간 리버풀의 악몽 '힐스버러 참사'가 똑같이 있다. 그것들은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로 유명한 화가 로렌스 S. 라우리(L. S. Lowry)의 이미지에 대입되고 화살은 다시 비극을 왜곡하는 BBC를 겨냥, 그 옛날 「Kevin Carter」식 미디어 조롱으로 번진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한 장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던 라우리의 말. 같은 맥락에서 한 없이 고독했을 니키 와이어(Nicky Wire)와 제임스(James Dean Bradfield)의 살벌한 무표정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순간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브라스와 키보드의 부대낌으로 풍성했던 '1부'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2014년에 선보일 '2부' 『Futurology』는 1부와는 전혀 다른 "일렉트릭 사운드"로 여러분을 찾을 것이다. 제임스에 따르면 그것은 "「Rocks Off」의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와 라스베가스 시절(Vegas-era)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같을 거라 하니 사실 팬 입장에선 여간 기대되는 게 아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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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Steve Miller * Serenade

 

 

 

Steve Miller 「Serenade」

 

시간 참 빠릅니다. 벌써 1월도 반이 지났습니다. 2월은 짧고, 더군다나 3월은 정신없이 갈 테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몇 번 겪으면 이러다 2014년도 저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결심한 게 있다면, 한 번 더 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작심삼일로 끝나진 않았나, 지금까진 잘했나 말이죠.

 

Steve miller는 「Serenade」에서 계속 "Wake up"을 외칩니다. 주저하지 맙시다. 하겠다고 했으면 얼른 실천합시다. '시간은 우리의 것(the time is our own)', '지구는 당신의 것(the earth is your own)'입니다.
Wake up! 

 

Did you see the lights
As they fell all around you
Did you hear the music
Serenade from the stars

 

당신 주위로 떨어진 빛을 보았나요

별에서 온 세레나데를 들었나요 


Wake up, wake up
Wake up and look around you
We're lost in space
And the time is our own

 

일어나요, 일어나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봐요

우리는 길을 잃었고 

시간은 우리의 것이에요

Whoa, whoa
Iiiiiiiiii

Did you feel the wind
As it blew all around you
Did you feel the love
That was in the air

 

당신 주위에 부는 바람을 느꼈나요

공기 속에 있던 사랑을 느꼈나요

 
Wake up, wake up
Wake up and look around you
We're lost in space
And the time is our own 

 

일어나요, 일어나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봐요

우리는 길을 잃었고

시간은 우리의 것이에요

 

Whoa, whoa
Iiiiiiiiii

The sun comes up
And it shines all around you
You're lost in space
And the earth is your own

 


태양은 떠오르고

당신 주위를 밝힐 거예요

당신은 길을 잃었고

지구는 당신의 것이에요 


Whoa, whoa
Whoa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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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타인과 사이에 늘 말을 두었다. 이해하길 바랐고 이해되길 바랐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계엔 점차로 말이 늘어갔다. 침묵은 허용되지 않았다. 말 없는 침묵이 이해보다 오해에 더 가까워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말에 근거를 둔 이해를 구했기에 그렇다. 심지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이를 테면 눈짓, 표정, 움직임, 촉감, 말이 아닌  소리들까지 때마다 말로서 붙잡고 설명해 어떤 의미로 남기느라 애를 써댔다.

 

이로써 모든 건 이전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다른 게 돼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기어이 어떤 말을 찾아내려는 방황을 계속해갔다. 내 안의 무엇을 꺼내려 입 밖에 내뱉은 그 말이, 말이 된 순간 그것과 무관해지는 절망적인 체험을 거듭하면서도, 침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덧칠해놓은 말들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뒤틀리고 망가져 나로부터 타인을 멀어지게 했는지 재차 확인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말은 놓지 못했다. 침묵이 오해된 이후로(이유로) 언어는 이렇듯 오용되기만 해왔다.  

 

   우리는 묵상에 잠기지 못하고, 서로의 품안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사랑 속으로ㅡ말없는, 마법에 걸린, 향내 나는, 가식 없는, 아연하게 만드는, 우리의 포옹들이 반쯤 열어놓은, 직접적인 의사 소통 속으로ㅡ잠겨들어가지 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말을 했을 뿐이다.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어둠 속에서,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난로의 붉은빛에 잠겨,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에 값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관심, 진정한 비참함, 가련한 몸짓이었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입 밖에 낸 말이나 판단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집착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자기 이야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끌어내는 데 열중했는데, 그런 짓은 뒤틀린 것이었다. (80쪽)

 

나는 아마 닿지 못할 것이다. 눈치 채지 못했으나 줄곧 기다려온 《은밀한 생》에.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통해선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침묵과 그 안에서 가능해진 이해 그리고 소통,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바쳐진 《은밀한 생》에 대한 이 매혹을, 어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매혹된 채로, 드러나고 숨겨지고 소리 내고 침묵하고 나아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단 한 곳으로 철저히 향하고 있는 탐색의 길에, 흩뿌려진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매복되어 있는 치밀한 사유, 다만 퍼즐처럼 주어진 삶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집요하게 주워 끝내는 그것을 통째로 만져보기 위한 무도한 헤맴을, 고통스럽게 즐거운 이 독서를 언제까지고 놓지는 못할 것 같다.  

 

… 사랑이 마치 열쇠처럼 갑자기 소통 불가능한 것을 열어젖히곤 했다. 마찬가지로 책들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들일 경우 영혼의 방어물은 물론 갑자기 허를 찔린 생각의 성벽들을 모두 허물어뜨린다.
   마찬가지로 벽에 고정된 유명한 그림들도, 그것이 찬탄할 만한 것들일 경우 문이나 창문, 유리 창구, 성벽의 총안 등등보다 더 벽을 열리게 한다.
   음악이 자신을 넘어서 심장을, 호흡을, 최초의 분리를, 그에 수반된 근본적인 괴로움을, 그리고 일생 동안 그 분리에서 생긴 기다림을 뒤흔들어 스스로의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49쪽)

 

… 나는 하찮은 문장의 반복, 실패한 농담의 되풀이, 끝마칠 수 없는 바보 같은 말의 재탕의 재탕의 재탕이 드러내는 내면의 우스꽝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내가 생각해낸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말을 삼가는 것이었다. (7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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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방학: 선명 [2집]] - 선명한 기쁨, 선명한 슬픔

 

 

가을방학 | [가을방학: 선명 [2집]] | LUOVA FACTORY | 2013

 

모순,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격정, "잘 있지 말아요"
대구, "끊어져 닻을 잃고 찢어져 돛을 잃고"
메타포, "만남이라는 사치를 누리다 헤어짐이라는 오만을 부린 우리"
유희, "우린 서로 편애해서 서로의 편에 서 온 사이잖아요..."

 

가을방학이 돌아왔다. 2년 반 만이다. “작품(works)을 작업(works)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라는 뒤샹의 100년 전 자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양 정바비는 이 앨범을 내놓기 4일 전에 『영원의 단면』 재발매 기념으로 「체리 블라썸」이라는 줄리아하트의 신곡도 내놓았었다. 물리적으론 언제나 바빠 보이는 그지만 가을방학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는 순둥이가 된다. 그것도 아주 여유롭고 문학적인 순둥이.

 

살며시 안아주는 커버 그림은 부클릿 속 같은 소묘에 색을 입힌 것이다. 이로써 그림은 ‘선명’해진다. 이 시각적 회화는 CD를 거슬러 금새 청각적 음악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음악은 다시 감성적 문학으로, 그 안에서 정바비는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바로 예술의 원점이자 본질이다.

 

가사는 시작과 같다. 모순, 격정, 대구, 메타포, 그리고 언어유희. 여기에 슬픈 멜로디를 가진 「언젠가 너로 인해」의 모호하게 슬픈 사연과 「삼아일산三兒一傘」의 단편 스토리까지 더해져 시時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집이 된다. 음악과 시가 따로 노는 듯 조화되는 이 수채화 같은 공간에서 듣는 당신은 울거나 웃거나, 아니면 울고 웃게 될 것이다.

 

유행이란 것의 운명이 과잉 속에서 질식 당하는 희소성이듯, 국내 인디신에서 포크(록)의 범람은 종사자들에게 예기치도 않았고 의도하지는 더욱 않았을 개성 상실이라는 부담을 지웠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천편일률이라는 오해는 어디까지나 오해일 뿐이라고 증명해 내는 몇몇 능력자는 어느 예술 장르에서든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오소영과 시와가 그랬고 드린지 오나 가을방학의 정바비도 거기에 엮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장르나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의 문제고 감성의 문제다. 악기의 선택과 배치, 음과 리듬의 덧셈 혹은 뺄셈, 가사와 멜로디의 조응, 비우고 채우는 것에 대한 고민. 이것들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바로 재능이고 재주다. 가을방학 2집에서 정바비는 그걸 잘 해냈고 그래서 2집은 ‘명반’이라고까지 추켜세울 만한 요소들로 가득할 수 있었다.

 

브로콜리너마저에서 인상적이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듣는 사람을 잠기게 했던 계피 역시 능력자가 선택한 능력자. 개인적으로 좋은 보컬이란 기교보다 표현력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계피는 그런 필자의 잣대에 거의 부합하는 보컬이다. 가령 「더운 피」 같은 곡에서 토해내야 하는 실연의 먹먹함은 계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밝고 수수하다가도 한 번에 어둡고 깊게 꺼져버릴 수도 있는 보컬. 그것이 바로 계피다.

 

「진주」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좋았던 것들만 기억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값비싼 경험을 팔아 값싼 감상을 사는 건 또 얼마나 쉬운가”

 

가을방학의 값비싼 경험이 부디 값싼 감상에 머물지 않기를, 나는 조용히 빌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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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조동익 * 엄마와 성당에

 

 

엄마와 성당에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저 종소리
그리운 그 시절로 나를 데려 가네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신 엄마의 치마
알 수 없는 설렘은 일어나 내 가슴 뛰게 했지

 

엄마와 성당에 그 따뜻한 손을 잡고
내 맘은 풍선처럼 부는 바람 속에 어쩔 줄 모르네
곱게 쓴 미사보 손때 묻은 묵주 야윈 두 손을 모아
엄만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셨을까
종치는 아저씨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본 종탑 꼭대기 난 잊을 수가 없네
엄마와 성당에

 

성당을 나와 가파른 길 내려오면
언제나 그 자리엔 키 작은 걸인
엄마는 가만히 준비했던 것을 꺼내
그 걸인에게 건네주시며 그 하얀 미소
엄마와 성당에

 

긴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고향에는 잘 다녀오셨나요? 전라도로 내려가는 데에만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리더군요.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도 만만찮았고요. 서울이 아니라도 가족 간에 오가는 발걸음 다들 분주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요. 명절마다 반복되는 풍경인 걸요. 이처럼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고생할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엄마를 보러 갑니다. 왜일까요? 명절에 고향 방문을 생략하면 못난 놈 취급하는 분위기도 한 몫 하겠지만, 보러 가는 이유는 결국 보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엄마가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겠죠. 어느 쪽이든!) 그렇게 “엄마와”의 추억 하나씩 만드셨는지요. 미우나 고우나, 그것은 우리를 또 “엄마와” 만나게 할 것입니다. “엄마와 성당에” 가곤 했던 조동익의 이 노래처럼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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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짙은 * Feel Alright

 

Feel Alright

 

먼 거리를 걷다 지친 마음이
어둠속에 눈물을 감추고
어디선가 다친 상처들이
벌거벗은 채 세상을 만날 때

 

시린 겨울 메마른 입술엔
침묵은 갈라져 가고
머물러 주었던 그 손길들
하나 둘 떠나가는데

 

오, 어둠속에 오, 널 잃고 헤매던
많은 밤, 잠들 수 없었던, 두렵던 밤의 끝에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이 질문에 프랑스 문학가 에밀 시오랑은 “나 자신을 견딥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오늘은 태풍이 지나가고 있네요. 언제 또 먹구름이 낄지 모를 일이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언제 또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눈물이 나겠지요.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고요. 불면의 밤이 계속될 테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시 ‘하루’가 주어집니다. 그 시간에 기대어 스스로를 차츰 견디어 나갑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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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DG | 2010  

 

월척이다!

 

얼마 전,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루머가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그것이다. 그 발단은 폴리니의 조카로 추정되는 사람이 폴리니의 명복을 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음악가의 사망‘ 뉴스는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는 편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폴리니의 타계소식을 듣고 영면을 기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어지간히 지나도 이탈리아 언론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애호가와 기자들이 추적한 결과, 폴리니의 사망설은 사실 무근이었고, 그냥 ‘관심종자’가 일으킨 분란정도로 밝혀지며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만약 폴리니가 한국의 음악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한공연 한번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우리가 쉬 느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실제로 공연장에서 듣고, 그들과 같은 시대정신과 예술계의 흐름을 공유하며  음악을 즐기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과거세대의 음악가들이 남긴 유산을 곱씹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우리에겐 푸르트뱅글러 같은 지휘자가 없는 거지?’ ‘카라얀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 ‘글렌 굴드처럼 바흐의 평균율을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없을 거야’ 같은 한탄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억하고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세대의 거장들에게 충분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행여 조카를 사칭해서 애먼 사람을 저승길로 보내버리는 짓 따위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리드리히 굴다처럼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자기가 죽었다며 신문에 부고를 내놓고, 찾아온 문상객들 놀래키는 짓은…… 하긴, 암만 자기가 한 짓이지만 그것도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양식

 

폴리니의 오보가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음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폴리니는 2009년에 이미 평균율 1권의 녹음을 끝내 음반으로 출시한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청명한 울림에 반해 2권의 발매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레코딩을 할 때 주로 쇼팽, 슈만, 베토벤을 위주로 다루던 폴리니였지만 그의 바흐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시대의 명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리히테르, 굴드, 쉬프 등의 기존 명반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은 수준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바흐의 평균율은 '피아노문헌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짝지어져 ’구약성서‘라 일컬어져왔다. 전통음악에서 사용가능한 총 24개의 조성(장조 12개, 단조12개)별로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있는 이 작품은 화성, 대위, 악식 등 음악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바흐의 손길로 모범적이고도 담백하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웅대하게 구축되어 있어 숱한 음악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슈만은 바흐의 평균율을 평생 동안 깊이 연구했으며 후학들에게 ’일용할 양식처럼 늘 곁에 둘 것‘을 당부했다. 우리시대 바흐의 스페셜리스트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안스라스 쉬프는 “매일 아침 평균율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듯이.”라며 평균율이 지닌 음악성과 생명력을 찬양했다.

 

폴리니의 평균율은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성부 구분능력은 물론이며 유리알을 깎아낸 듯 섬세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프레이징으로 감상자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폴리니는 모던피아노로 바흐의 건반음악을 연주하면서도 페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울림의 길이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안드라스 쉬프나, 다소 투박한 듯 하면서도 모던피아노임을 숨기지 않고 직선적이고 두텁게 연주하는 리히테르의 중간층에 있다. 바흐시대의 건반악기보다 울림이 더 깊은 현대 피아노의 장점을 십분 이용하되 특유의 음색과 손가락 놀림으로 프레이징의 명확성과 성부의 논리적인 분리 그리고 악보의 탐구-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다- 끝에 얻어낸 단계적인 다이내믹의 상승감은 매우 만족스럽다.

 

이 평균율 음반은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폴리니가 정말로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에,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영감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해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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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The Diva, A Trivute to 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Sony Music | 2009 

 

쇼는 끝났다.

 

먼지 낀 목소리를 딛고 기적의 퍼포먼스로 부활, 그래미에 올라 “이 상을 주님에게, 그리고 나를 믿어준 여러분 모두에게 바칩니다” 라고 외칠 것만 같았던 한 순간은 결국 영원히 미뤄졌다. 그래미의 여왕이자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가수 중 한 명인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그녀는 그래미 전야에 세상을 뒤로 했다. 그렇게 자신의 스토리의 최종장을, 팝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열고 닫았다.

 

그리고 다시 또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 그저 평범한 음악팬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녀가 가는 길에 한 명의 글쓰는 사람으로서 보낼 수 있는 한마디를 더할 차례다. 나에게, 모두에게, 그리고 팝의 역사에 휘트니 휴스턴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대답을 위한 길지만 심각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표하는 경의의 헌사다.

 

시대를 규정하는, 퍼포먼스의 양식을 정의하는 여느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등장은 자못 심상치 않았다. 바야흐로 대중음악계에 새롭게 몰아닥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열풍. 그 낯설고 새로움에 매료되어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소리들을 저마다 방만하게 탐구하며 흥분에 취해있었던 시절이었다. 록 그룹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후계자로 너나 할 것 없이 일렉트로닉 댄스를 지목했고, 건조하고 기름 빠진 목소리가 소위 싱어-송라이터들의 풍성한 창법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사멸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던 디스코와 훵크 리듬의 명맥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뉴웨이브 사운드가 잇고 있던 바로 그 시절, 1980년대였다.

 

느닷없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예상치 못한 괴물이 나타나 팝의 양식과 산업의 판도를 뒤바꾸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보수화된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교묘히 맞물려 60년대 말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로 가장 심각한 불황을 맞닥뜨린 레코드 업계에 마이클 잭슨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MTV와 어덜트 라디오 스테이션을 한꺼번에 모두 아우르는 이 파격적인 문화상품에 대중들은 충격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와중에 영민한 레코드 모굴들은 이 성공가도의 면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새로운 ‘Next Big Thing’을 곧 만들어 낼 것이라 다짐하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영원한 멘토,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였다.

 

Clive Davis: 위대한 멘토

 

하버드 출신의 법률가이자 사업가, 기획자인 데이비스의 귀에 “이제껏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최고의 목청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어간 것은 1980년대 초의 어느 날이었다. 가스펠의 전설 씨씨 휴스턴의 딸이자 그가 이미 수퍼스타로 키워낸 알앤비의 거물 디온 워익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유명세는 파다했고, 훌륭한 레코딩 아티스트로 만들어질 충분한 자격조건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이 재능의 숨겨진 매력들을 새삼 관찰하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알앤비 스타? 그의 생각은 달랐고 결국 이전의 세대들을 수놓았던 소위 ‘소울 디바’들과는 성격이 다른, 전혀 새로운 포텐셜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확신하기에 이른다. 늘 그래왔듯 그의 판단은 너무도 정확했다.

 

산타나(Santana), 에어로 스미스(Aero Smith), 심지어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등과도 작업하며 변방의 장르 아티스트들을 모두 메인스트림 팝의 수퍼스타로 만들어내는 데에 독보적인 수완을 발휘해온 이 거장은 휘트니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도 비교적 정확히 그려내고 있었다. 가장 큰 전제는 엄마인 씨씨 휴스턴은 물론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전해준 그녀의 대모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부터 사사받은 가스펠 창법에 기반한 독보적인 발성과 바이브였다. 하지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 위에 팝의 관용성과 미려함을 덧입히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레코드 제국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역시 그 결정을 신뢰하고 지원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레사의 파워,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세련미,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의 센슈얼한 여성미가 조화롭게 겸비된, 한 약관의 파릇파릇한 디바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들의 열광적 환호는 마치 준비된 것인 양 당연했다. 그렇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보물을 자신의 이력에 추가했다.

 

The best producers of all time: 최고의 조력자들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뼛속까지 가스펠의 기운이 스민 휘트니의 목소리를 팝의 디바로 만드는 공정에는 지난한 시간이 인내되어야만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포텐셜 덩어리인 목소리가 품은 가스펠 기반의 팝 디바라는 포맷의 전무후무함 때문이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휘트니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프리칸-어메리칸 음악의 긴 역사에 팝 발라드 풍의 알앤비나 소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저 유명한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패티 라벨(Patti Labelle),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조차도 히트곡 레퍼토리에 틴 팬 앨리 스타일의 팝 발라드나 펑키한 댄스뮤직 하나쯤은 당연한 아이템처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크로스-오버 청취자 확보를 위한 당연한 마케팅 전략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인종 마켓을 넘어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흑인으로서는 유달리 우아한 톤과 매너를 가진 다이애나 로스가 보수적인 백인청취자들 사이에서도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는 하나 음악을 잘 아는 그 누구도 교회음악에 뿌리를 둔 흑인 여가수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bra Streisand)처럼 노래를 부르며 팝의 전면에 “디바”라는 포맷으로 승부를 걸어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생소한 건 음악 현장에 있는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류 팝의 대가들은 거의 대부분 휘트니와의 작업에 난색을 표했고, 퀸시 존스나 스티비 원더 같은 거장 소울 뮤지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이긴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목소리를 두고 정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팝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에 대해서 반신반의한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뜻밖에 휘트니의 메인 프로듀서로 자청한 인물은 백인 뮤지션인 마이클 매서(Michael Masser)였다. 팝 발라드의 파퓰러한 호소력에 완벽한 목소리를 찾았다고 믿은 그는 최상의 곡들을 아낌없이 선사하며 휘트니의 데뷔를 도왔다. 조지 벤슨의 원곡을 재편곡, 잊을 수 없는 디바들의 송가(anthem)로 만들어 낸 「The Greatest Love of All」을 필두로, 휘트니 커리어 자체를 규정하는 팝 발라드들, 「Saving All My Love For You」, 「All At Once」를 1집에서, 「Didn’t We Almost Have It All」를 2집에서 작업하며 모든 곡을 넘버 원 차트에 올려놓았다. 휴스턴의 전설은 분명 매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매서가 밸러디어(Balladeer)로서의 휴스턴의 잠재력을 깨워냈다면, 이를 극한의 레벨로 몰아붙인 이는 다름 아닌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였다. 1992년, 휘트니의 첫 영화 주연작이자 싱어로서의 최정점을 찍은 보디가드(The Bodyguard)의 사운드 트랙에서 포스터는 소위 발라드 3연타라 불릴 대작들,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Run To You」를 모두 프로듀스했다. 소스도 컨츄리, 팝, 알앤비로 다양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편곡적으로도 파격적인 전조와 아카펠라, 난해한 고음역대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던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 스타일뿐 아니라 80년대 스타일의 관습적인 발라드 형태를 한 단계 넘어서고자 했다. 소위 “파워 발라드”로 불릴만한 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슬로우 넘버들은 결과적으로 차트에서의 성공을 넘어 발라드라는 음악의 새로운 작법을 환기시켰고, 이후 모든 아마추어 컴피티션에서 디바를 꿈꾸는 여가수라면 넘어야 할 시험관문 같은 소스곡으로 남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이름을 알린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후 의심할 바 없는 성공가도를 이어나간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How Will I Know」와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흥겨운 비트를 비롯, 알앤비/소울을 넘어 파퓰러한 매력을 휘트니에게 덧입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은 이후 휘트니 이후 최고의 싱어라 불릴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3집 앨범의 전반을 도맡았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또 한 명의 알앤비 디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을 스타로 만들었고, 데이빗 포스터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을 발굴, 결과적으로는 휘트니를 잇는 월드 스타로 안착시키며 90년대 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 이끌어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랐거나 영감을 받았던 가수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 누구도 완전히 휘트니의 업적을 뛰어넘진 못했지만.

 

The Diva, and the Voice

 

휘트니의 독보적인 아성은 바로 그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한 명의 팝 아티스트가 건드릴 수 있는 사실상 모든 결의 보컬 테크닉과 감수성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음역대나 성량으로만 순위가 가려지는 단순한 가창력의 잣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통제하고 구사하는 기술, 가사 전달 능력, 그에 더한 감성과 퍼스낼리티에 있어서도 어느 순간에건 할 것 없이 한결같은 수준을 뽐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와 매너로 청자들이 가진 보다 보편적인 감수성의 영역을 건드리면서 새로운 보컬리스트의 이미지를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You Give Good Love」나 「Saving All My Love For You」에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세한 톤의 변화들은 쉬운 예가 될 것이다. 우아함과 파워풀함에 섬세한 전달능력을 아우른 휴스턴의 목소리는 테크니컬한 면에 치중하는 경향을 띠던 관습적인 소울 보컬들이나 지나치게 프로듀싱 테크닉 위주로 재편되어 힘이 빠져버린 당대 대부분의 팝 보컬리스트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운 흐름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 비범한 재능은 업 템포의 비트 위에서도 예외 없이 그 자유로움을 뽐냈다. 블랙 바비인형 같은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굵은 선의 음들을 막힘 없이 훑어내리는 「How Will I Know」의 캐취한 매력은 물론이요, 선배 훵키소울 가수들의 유산을 잇는 트랙들, 이를테면 「I'm Your Baby Tonight」, 「Queen of the Night」,  「I'm Every Woman」의 두텁고 강렬한 내지름은 위대한 선배들인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샤카 칸의 아성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휘트니는 자신의 음악적 고향인 가스펠에서 가져온 호소력과 긍정성이 담긴 특유의 울림을 팝 안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좋은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전달하는 최고 악기로서의 보컬리스트의 위상을 제고시켰다. 팝적인 편곡으로 슈거코팅되긴 했지만 자못 Spiritual한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는 「The Greatest Love of All」의 호소력 짙은 울림은 영락없는 가스펠의 현대적 변형이다. 조지 벤슨(George Benson)을 비롯, 이미 몇몇 가수에 의해 녹음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탐구되지 않은 멜로디의 파워와 호소력을 새삼 이끌어 낸 것도 전적으로 그녀의 탁월한 역량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기억이 새삼스러운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One Moment In Time」이나 애초에 가스펠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포 탑스The Four Tops의 원곡인 「I Believe in You and Me」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예쁜 멜로디를 아름답게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강하고 긍정적인 뉘앙스로 메시지 송이 품어야 하는 정신을 마치 영가를 부르듯 신실하게 뿜어내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경박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일면 거친 톤 마저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휘트니의 내공 앞에 팝에 경도되었다는 미디어의 손쉬운 비판은 일견 머쓱해져버리고 말았다.

 

자, 이제 이 시리즈의 극적인 완결판으로 각종 미디어들이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1991년 수퍼볼 미국 국가 Star Spanggled Banner 공연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점잖게 빼입고 나와 거룩한 표정으로 고음만을 자랑하는 데 급급했던 진부한 트렌드를 거부, 그 대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단에 올라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그네들의 애국심을 일깨웠다. 그 뒤로 수퍼볼 미국 국가 퍼포먼스의 보컬 편곡 방식이 휘트니 버전으로 일괄 통일되었음은 물론이다. 실력 있는 가수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또 하나의 검증 관문처럼 말이다. 저 위대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우드스탁의 미국국가 연주를 통해 반항적인 록 스피릿의 한 순간을 시연했다면, 휘트니야말로 팝의 화신으로서, 알앤비의 총아로서 자신의 위상의 절정을 맘껏 내지른 한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떠난 뒤에야 새삼스레 자명해지는 몇 가지 진실들이 있다. 생각해보자.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그의 오랜 독재체제 하에서 발견해 낸 반짝이는 재능이 휘트니 한 명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휴스턴이 들려준 똑같은 마법을 재생해내지 못했다.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란 그 어떤 디바도, 마이클 매서나 마이클 월든의 그 어떤 아름다운 멜로디도, 데이빗 포스터나 베이비페이스의 그 어떤 천재적인 프로듀싱과 음악적 꼼수도 휘트니의 독보적 위상에 어렵사리 비교될 한 순간 정도를 겨우 허락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보컬리스트의 미학적 정수고 존재 이유가 아닐까. 지독한 프로페셔널리즘, 자로 잰 듯 한 영민한 기획력, 실험적이고 난해한 그 어떤 새로운 음악적 발명과 발견들도 쉽게 복제해내거나 범접하지 못하는 그 목소리와 그 울림 그 자체. 이제 더 이상의 구차한 찬사는 무의미하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한 개의 그래미 트로피도, 또 한 장의 플래티넘 레코드도, 팝 디바의 위대한 전설도 이제는 거짓말 같이 시간에 가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도 보편적인 매력을 선사했던 한 명의 가수가 남긴 울림은 그 진폭을 더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녀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 감동적인 그 한 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새로운 팝 디바의 전설을 꿈꾸며 목소리를 담금질 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또 계속되어야만 한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님은?
웹진 음악취향 Y(cafe.naver.com/musicy) 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 몇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도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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