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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 섬, 그곳에서 살고 싶다


 

 

야마오 산세이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도솔 | 2002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산다는 것이 시작된다. 때때로 떠나는 여행도 포함하여,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다수인 우리에게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야마오 산세이 씨는 시인이다. 서른 아홉에 일본 남쪽 끝의 야쿠 섬이라는 곳으로 간다. 숲속에 터를 잡은 그는 오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는 삶을 시작한다. 직접 집을 짓고, 먹거리를 재배하고, 땔감을 구하는 삶, 원숭이와 사슴이 애써 기른 농작물을 다 먹어치우기도 하고, 잦은 태풍으로 번번이 집과 터전이 황폐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행복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삶, 이 책은 그러한 삶에 대한 보고서이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게는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고, 조몬 삼나무가 그리 하듯이, 텃밭 한 귀퉁이에 놓은 통나무에 앉아 날마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는 시간이야말로 참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섬이라는 외딴 공간, 숲속의 작은 오두막, 아침에 눈을 뜨면 간밤에 망울을 터트린 나팔꽃이 마당에 가득하다. 바쁜 일도 서두를 것도 없다. 필요에 맞추어 오늘 할 일을 정한다. 가족과의 소박한 밥상, 노동의 기쁨.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남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수십 억 년 진화가 가져온 축복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야마오 씨 삶의 편린을 살펴보자.

 

5월, 수유나무 열매와 나무딸기가 익는 달이다. 빗쿠리 수유나무 열매는 새끼손가락 끝 정도의 타원형으로 잘 익으면 반투명한 루비처럼 진홍빛이 된다. 그냥 빨갛기만 할 때는 시고 떫어서 손길이 가지 않지만, 진홍색으로 잘 익었을 때는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울려 먹기 좋은 들 과일이 된다. 오후에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하는 최초의 놀이는 수유나무 열매따기다.두 살짜리 동생과 작은 봉지를 들고 둘이서 새빨갛게 익은 것만 따 모으고, 먹고 싶은 만큼은 자기들도 먹는다.

 

열흘 정도 지나면 수유나무 열매의 계절은 끝이 나지만, 나무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무딸기는 집 주위의 풀숲을 비롯하여 어디에나 자생하고 있는 까닭에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이 시기는 딸기의 계절이다. 수유나무 열매는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에 대여섯 알 정도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나무딸기는 거기에 있는 것을 다 따먹고 다른 곳에 새로운 나무를 발견하면 또 따먹고 싶어진다.

 

채집의 즐거움, 야마오 씨는 이것을 석기문화라고 부른다. 나무열매를 따먹으며 생존해온 우리 인류가 수백 만 년에 걸쳐 유전자에 각인된 즐거움, 이것이 산업혁명 이후 단 일, 이백 년 만에 사라질 리가 만무하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으로 기억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작가가 '석기시대 충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깊은 성찰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야마오 씨는 그 깨달음을 일컫는 말로 '가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가미',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 하느님, 신령. 특히 부처님에 대한 神道'라고 되어 있다. 나도 '가미'란 보통 神으로 번역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야마오 씨가 말하는 '가미'란 우리가 알고 있는 신과는 그 개념이 많이 다르다. 책에서 '가미'에 대해 소개한 글을 몇 개 찾아보자.

 

"가미는 아직 명확하게 신의 형태에 도달해 있지 않는 원초의 존재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예배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하나로서의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지만 새로운 신을 그냥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가미에도 여러 가미가 있지만 제비꽃이라는 가미는 무조건 사람을 행복 속으로 밀어 넣는 성질을 가진 가미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나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가미가 무엇을 일컫는 말인지 알겠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라도 알 것 같다면, 당신도 아마 깨달음에 조금씩 다가가려는 사람이리라. 그렇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야마오 씨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터득한 깨달음,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숲은 숲이기에, 바다는 바다이기에, 또 풀 한 포기는 그 풀 한 포기의 생명이기에 그곳에 즐거움과 행복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야마오 씨는 그것을 '가미'라는 단어로 표기한다. 마치 노자와 장자가 '道'라는 용어를 사용하였 듯이.

 

야마오 산세이 씨는 200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25년간의 섬생활을 마감했다. 권력과 부귀를 탐하지 않고 수고로움과 소박함에 감사하던 삶, 나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지구 전체의 생명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자 꿈꾸었던 삶. 어차피 정해진 시간의 둘레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어떠한 것이 보다 더 가치있는 삶일까? 야마오 산세이 씨의 삶과 자세는 어쩌면 내가 가야할 길의 작은 등불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duck’ 님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나를 인정하며 스스로 만족해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책 읽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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