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용'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0.07.14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4)
  2. 2010.06.30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2)
  3. 2010.06.16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2)
  4. 2010.06.03 올디즈 벗 구디즈 (2)
  5. 2010.05.19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6. 2010.05.13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7. 2010.05.06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2)
  8. 2010.04.21 쿨하지 못해 미안해
  9. 2010.04.14 캥거루 통신 1
  10. 2010.04.07 우리는 달려야해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7 -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Dear Son」

사랑하는 아들아
네 안에 항상 힘세고 뭐든 잘 하는 아빠가 있게 해 주렴
나를 닮은 아들아
넌 멀리 보게 되고 넓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렴

*
Album form 이승환, 『Dreamizer』「Dear Son」 중  


나에게 들리는 따뜻한 노래

이승환의 『Dreamizer』에 수록된 「Dear Son」은 2007년 방영한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 중 ‘안녕 아빠’ 편을 보고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승환의 노래에는 ‘가족’이 종종 등장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발표한 3집 『My Story』(1994)의 마지막 트랙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 날 아시죠. 외롭고 약한 나를 세상물정 모른다 하시며 걱정하셨죠. 하지만 이제 아니죠. 내 어머니 당신께 약속드릴 게 있어요. 이제부터 당신의 강한 아들이 될 수 있다고” 1997년 발표한 5집 『Cycle』의 「가족」은 광고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며 많이 알려졌다.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안녕 아빠’에서의 ‘아빠’는 남매의 아빠보다는 부인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서의 아빠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았지만)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Dear Son」은 가사가 인상적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라면,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너와 먹고 자고 씻고 입고 울고 웃고... 가르쳐줄 게 좀 더 남았는데...”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라는 부제를 단 <윤미네 집>은 전몽각 선생이 1964년부터 1989년까지 장녀 윤미씨를 비롯해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1990년 약 1천부만 초판으로 출판되어 중고서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책이었다. 수집가들의 애도 꽤 많이 태웠다고 한다. 이 책이 2010년 빨간 옷을 입고 다시 세상의 빛을 봤다.  

책을 받아들고 집에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사진을 훌훌 넘겨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것이 아버지의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이 가족들의 모습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이에 대한 신뢰와 사진 속에 있는 이에 대한 사랑이 끈끈하게 묶여 있었다. 전몽각 선생은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은 것 같았다. 솔직히는 그렇게 따뜻한 시선 속에 자란 윤미씨가 부러웠다.  

누군가가 나를 그토록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혹자는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이라도 그 시선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가. 가족은 늘 아름답기만 한 이름이 아니다. 특히나 가족에서 태어나 가족으로 마감하는 우리네 가족들은 애증병존(愛憎竝存)의 장이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TV 속의 가족주의 신화를 들춰내지 않아도 좋다. 안에 있으면 벗어나고 싶고 밖에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감정은, 서른 해를 넘기고서도 계속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그들을 따뜻한 시선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머잖아 필자도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즈음엔 <윤미네 집>을 떠올리게 될 거다. 그리고 그들을 사진 속에 담으며 다시 한 번 <윤미네 집>을 떠올리게 될 거다. 아마도.

덧붙임.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읽었다. 여기에도 ‘심각한’ 가족문제가...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4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6 -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Alison」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 Album form Elvis Costello, 『My Aim Is True』「Alison」 중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책은 없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책은 사람과 같다.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책도 있고 만날 때마다 즐거운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관심은 있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책도 있고 말을 걸어보지만 대화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가장 힘든 책은 나름대로 말을 걸지만 소통할 수 없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여러 상황들이 있다. 꽉 막혀버린 내 문제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린 책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없는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책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할 이야기는 별 것 아니다. 읽는 책이든 만드는 책이든, 지난 몇 주 동안 전혀 소통할 수가 없었다는 것. 겨우겨우 읽어낸 책 두어 권과 페이지 넘기는 게 천근만근인 책 두어 권, 그리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롭게 작업했던 책들. 매달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특히 심난할 때가 있는데, 이번 달이 그랬다. 휴. 이런 필자를 구원(?)해준 건 만화책이었다. 

순정만화, 그 순정한 시절을 지켜봐준 친구들

중학교 무렵, 필자의 꿈은 만화잡지 기자였다. 만화 그릴만한 센스는 없으니 만화잡지에라도 취직해서 마음껏 만화를 보며 살고 싶었다. 또 당시 출간되던 댕기나 윙크의 편집후기는 만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만화보다는 일본 만화들이 더 많이 읽히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의 침체가 빈번히 거론됐다. 필자 역시 더 이상 ‘순정’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만화는 뜸하게 소식을 접하는 친구가 됐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지만 다음에 연락하지는 않게 되는 그런.

최근에 다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덩달아 만화까지 챙겨보게 됐다. 기왕 친구 얘기가 나와서 비교해보자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우연히 친해진 사람이 알고 보니 예전 친구의 베스트였다던가, 하는 류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냥저냥 친했는데 볼 때마다 새로워서 더 친해지게 되는 친구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그런 만화로 <노다메 칸타빌레>와 <호타루의 빛>을 꼽고 있다. 한참동안 <노다메 칸타빌레>에 빠져있었지만 최근의 ‘훼이버릿’은 단연 <호타루의 빛>이다. 어쨌거나, 필자는 천재도 아니고, 세계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맥주나 탐하는(?) OL이 되었으니 말이다. 

‘건어물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호타루가 27살부터 34살(혹은 그 이후까지) 겪게 되는 일과 사랑, 연애에 대한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그것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가정은 틀에 맞춰 만드는 게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돌아오는 장소가 어느새 기분 좋은 두 사람의 집이 되는 것이지” (14권)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은 아무리 좌절할 일이 있어도 그걸로 이 세상이 끝났다거나 자신의 포인트가 완전히 제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작은 힘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샌가 예전의 자신을 넘어선 것도 실감할 수 있다.” (15권) 아, 물론 그런 연애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내 소원은 진심이야

번외편인 카나메-유우코 커플을 연결해주는 곡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다. 혹자는 설정이 유치하다든가 「Alison」이 웬 말인가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선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나 비틀즈의 「Yesterday」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화 <노팅 힐>의 「She」로 너무(?) 많이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는 팝 보다는 락/ 펑크/ 컨트리 등 전방위 가수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즈 쪽에 엘비스 코스텔로가 알려진 것은 2003년 보컬리스트 다이애나 크롤과 결혼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다이애나 크롤이 발표한 『The Girl In The Other Room』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곡을 노래하고, 또 그와 함께 작곡하며 매혹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쌍둥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들 역시 서로의 ‘작은 빛’을 만난 셈이다. 

p.s _ 비를 가득 머금은 날씨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도, 「She」도, 그리고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이나 「Almost Blue」도 좋은 선곡일 듯하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2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5 -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넌 할 수 있을 거야
뒤를 돌아봐
웃어 이만큼 온 거잖아

언젠가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날
조금 멋쩍을지 몰라
너도 몰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너일 테니

* Album form Verandah Project, 『Day Off』「괜찮아」 중

어쩐지, 기필코, 괜찮아

김동률과 이상순이 베란다 프로젝트(Verandah Project)로 『Day Off』를 발표했다. 온라인 음반 매장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았다. 솔직히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만 있지 않은가. 김동률과 이상순이 만나 어쿠스틱한 음악을 한다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필자는 순전히 청개구리 심산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ay Off』는 최근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 됐다. 첫 곡 「Bike Riding」은 연애로 달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예쁜 곡이었고, 연애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어쩐지」는 듣기만 해도 간질간질해지는 곡, ‘이대로 그냥 멈출 순 없잖아 절대 아무렇게나는 안 돼(그럴 순 없어) 제대로 내가 맘에 들 때까지 내일의 내가 부끄럽지 않게’라고 노래하는 「기필코」는 불끈불끈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롤코의 담백함과 전람회의 풋풋함, 그리고 카니발의 세련됨을 적당히 뽑아내 한 장의 앨범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Day Off』를 듣기 전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책은 <씨네 21>의 인터뷰어 김혜리가 펴낸 인터뷰 모음집 <진실의 탐닉>이었다. 인터뷰 집은 화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만큼 직접적인 울림이 있기는 하지만 독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게다가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인터뷰어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이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왜 그렇게 ‘잘난’ 이들이 많은 건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유명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려는 얄팍한 속셈이 먼저였다. 그나저나, 『Day Off』는 꼭 소개하고 싶고, <진심의 탐닉>은 글을 쓰기 위해 구입까지 해 놓았고, 그런데 이를 어떻게 연결시킨담?!

베란다 프로젝트, 사랑 한 편 

『Day Off』에서「Bike Riding」이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지만 어쩐지 필자가 마음을 빼앗긴 곡은 「어쩐지」였다. 이 곡을 듣는 순간 떠오른 곡은 김동률과 이적이 결성했던 카니발의 1집 『그땐 그랬지』에 수록된 「그녀를 잡아요」였다. 전람회(김동률, 서동욱)와 패닉(이적, 김진표)의 멤버가 모두 참여해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에게 그녀를 붙잡으라며 충고와 위로를 해주는 곡이다. ‘지난 노래 가사처럼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백하면 어때요?’(모두들 알다시피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일컫는 가사다) ‘이 여자다 싶을 때가 또 오는 게 아니죠.’ ‘두고 두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그때 가서 우리 책임 없어요.’ 같은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대의 정서를 닮았다. 그때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연애문제로 힘들어했고,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고, 그러다가 학교도 과감하게(!) 빠질 수 있었다. 연애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청춘의 6할쯤을 사로잡은 건 ‘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 참여한 「어쩐지」는 ‘다시 연애 같은 건 못할 것만 같다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어대던 너 우리 몰래 풍덩 사랑에 빠져서 몰라볼 것 같아 다른 사람 같아 어색해’ ‘Bye Bye 기쁘게 보내줄게 가끔은 우리도 잊지는 말아줘 축하한다 정말 참 부러워 근데 왜 이리 맘 한구석이 휑한걸까’라고 노래한다(이 곡에서 이적이 참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설마 아기 아빠라 빼놓은 건 아니겠죠?!).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연애 얘기에 수줍어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고, ‘불꽃’ 사랑보다 ‘군불’ 애정을 선호하게 된 30대의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를 노래하는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젊음과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진심의 탐닉, 인생 한 편

그런가하면 <진심의 탐닉>에서는 스물두 명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표현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들이 창조적인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진지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찍었던 청춘이라는 영화는 좌충우돌(좀 멋지게 좌충우돌이긴 했지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찍고 있는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고 우직하며, 자아성찰적이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그가 생각하는 실패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가짜로 산 인생이요. 가면의 생. 특히 이른바 성공한 사람 중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경험이 없고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 (27쪽)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잡지 <키노>를 이끌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이 와 닿을 것이다. “시네필 중에는 쓰거나 하지 않고 계속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바보예요. 중의적 의미의 바보죠. 반면 어떤 학생은 줄창 책만 읽어서 모르는 이론가가 없어요. 하지만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대화해보면 머리가 뒤죽박죽이에요. 결국 저는 보기, 읽기, 쓰기의 삼위일체가 계속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만들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가야 하고요. 쓰는 것을 멈추는 순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서랍처럼 느껴져요.” (120쪽)

읽는 내내 ‘질투크리’가 ‘작렬’한다.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어쩜 이렇게 생각이 깊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멀었다는 투다. 그 겸손이 ‘척’이 아니라 ‘진심’인 걸 알기에 그들의 인생 한편 한편이 매력적인 영화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2

올디즈 벗 구디즈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4 - 올디즈 벗 구디즈

「오빠는 풍각쟁이」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 Album form 최은진, 『풍각쟁이 은진』「오빠는 풍각쟁이」 중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

얼마 전 신문에 신간 <근대서지>가 소개되었다. 2009년 7월 창립한 근대서지학회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묶어 낸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근대(近代)와 관련된 서지(書誌)를 다루는 반년간지다. 창간축사에서 ‘동호인들의 도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썼듯 기존 학회지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과 글감을 택하고 있다. 책의 문을 여는 ‘문원’에서는 ‘카피가 되어버린 안도현의 시 한 편, 그 독법의 에고이즘’(박성모), ‘울랑브르트의 헌책방’(박태일) 등 책과 관련된 수필이 소개되고 있다. 근대 문헌들이, 한자도 많고 한글 표기/표현이 달라 어려운데 비해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그럼에도 한자가 나오면 적당히 포기(?)하며 읽었다) <교수신문>에 소개된 서평에 의하면 “식민지기 일본에서 간행된 한국어출판물처럼 기존 서지자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 뿐 아니라, 출판미술 목판화나 근대 초기 잡지 영인현황 등 그동안 소홀히 지나쳤던 분야의 서지와 정확한 서지 파악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소개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평을 연결한다. 

필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근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재즈 때문이다. 1920~30년대 한국에 재즈가 소개되었다는 문헌들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듣는 재즈와는 달리(당시 재즈는 미국에서 춤추며 즐기는 대중음악이었다) 도시적 감성이나 분위기에 치중하고 있지만 말이다. 장유정이 쓴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는 첫 문을 <삼천리>에서 인용한다. “술과 계집, 그리고 엽기가 잠재하여 있는 곳이다. 붉은 등불, 파란 등불, 밝지 못한 상데리아 아래에 발자취 소리와 옷자락이 비비어지는 소리, 담배 연기, 술의 냄새, 요란하게 흐르는 재즈에 맞춰서 춤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 파득파득 떠는 웃음소리와 흥분된 얼굴, 그들은 인생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모조리 잊어버린 듯이 즐겁게 뛰논다.” (현대어로 옮겨지긴 했지만) 이 글이 발표된 건 1932년이다. 또한 1930년대 기록에 의하면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은 현대인보다 더 멋진 도시남자였다. 허연 기자는 그를 “그는 코피를 쏟아가며 글을 쓰면서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운다. 원두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10리길을 걸어 다방에 가고, 재직하던 학교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베토벤에 심취했다. 밤이면 위스키를 마시며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날에는 눈물을 흘리는 감성어린 모던보이였다.”고 썼다. 1930년대 커피, 베토벤, 스키를 상상할 수 없는 게 필자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래서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보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더 신기했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근대의 음악이라고 하면 사실상 재즈나 클래식보다는 만요(漫謠)가 더 떠오른다. 1930년대 불리던 만요는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흔히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만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억압된 식민지 사회에서 만요가 뒤틀림과 풍자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빠는 풍각쟁이라고 타박하는 이 노래 역시 “식민지 시대의 식생활 문화와 가족애, 삶의 풍속이 코믹하고도 흥미롭게 반영된” 곡이라고. 2008년 <천변풍경 1930-이태리의 정원>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던 연극배우 최은진이 <풍각쟁이 은진>을 발표했다. 근대가요 13곡이 칼칼하고 구성진 목소리에 실렸다. 근대의 매력을 알고 다시 듣는 ‘오빠는 풍각쟁이’는 근사한 멋이 있다.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1920년 혹은 30년 서울로 가보고 싶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 이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2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3 -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중략)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보면 걸어가다보면 걸어가다보면 

* Album form 강산에, 『Vol. 3 - 연어』「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중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춰봤다. 마음에 꼭꼭 담아두려고 몇 번이나 이 책을 읽던 시절에는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스스로 ‘먼 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사춘기가 훌쩍 지났다. 어른이 되어 달라진 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희망을 잃었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잃은 건 단지 어렸을 때 꿈꿨던 혹은 꿈꿨다고 믿는 희망들이다. 어릴 적 꿈이 순수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지금의 꿈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는 건, 기억의 미화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모천회귀(母川回歸)성 존재가 아닌 인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는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연어 이야기>가 나왔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의 속편이라면 그 부담감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된다. <연어 이야기>는 3인칭과 1인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학교를 통해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끈’이나 ‘스며듦’으로 치환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연어>에 비해 직접적이다.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는 태어난 강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생이 시작된다. ‘나’는 알이었다. 그것도 다른 연어들보다 한 달이나 늦은 알이다. ‘나’는 말한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건,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나’가 ‘너’를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언제부터 연결되어 있었는지 모를 끈으로 연결되어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스며든다. “물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81쪽) 그리하여 ‘나’는 “너를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아야 했지만, 그러나 끝내 붙잡지 않”고 울지도 않는 연어가 되었다. 그리고 예견된 죽음을 향해가는 ‘너’에게 “너는 자유야!”라고 외쳐줄 수 있는 주체적 자아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삶을 배우고 성장한다. 

희망을 찾는 것도, 희망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많은 벽에 부딪히고 많은 것들을 잃지만 살아나가는 삶이 곧 희망이다. 신문이나 주변에서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지금 이 삶을 살아가는 당신이, 바다로 나아가려는 당신이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2010/05/19 - [블로거, 책을 말하다] - <시간의 혼> - 찰나에게 영원까지,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다!
2010/05/18 - [블로거, 책을 말하다] -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 영혼을 깨우는 저항의 교육학
2010/05/17 - [반디 음악 광장]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 31, 21번> -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
2010/05/14 - [책, check, 책] - <거꾸로 생각해 봐> - 거꾸로를 다시 거꾸로, 그래야 '바로'
2010/05/13 - [민용 in 재즈피플] -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Trackback 0 Comment 0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2 -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사계」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Album form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사계」 중

날 붙잡은 노래

‘노래’를 통해 어떤 것들, 특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일부분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1992년 보았던 KBS 드라마 <희망>(양귀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에서 울부짖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운동’을 인식하게 했고, 어디선가 듣고 경쾌한 리듬이 좋아 흥얼거렸던 ‘사계’는 ‘노동’을 인식하게 했다. 물론 이 곡을 듣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라는 건 없다. 컬러 TV와 컴퓨터의 호혜 속에 자라난 필자는 지금도 운동이나 노동에 대해 ‘인식’만 하고 있는 정도다. 다른 민중가요는 거의 모르거니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MC 스나이퍼 버전으로, ‘사계’도 거북이 버전으로 더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노래들은 몇몇 책들을 읽으며 빨간꽃 노란꽃처럼 내게로 와서 ‘생각’이 되었다.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

망제작소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를 내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우리들의 구로동 연가 -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를 발견했다. 이 총서의 열여섯 번째 책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필자는 노동에 대해 글을 쓸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노동자로 살고 있으면서 노동에 대해 모른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노동을 ‘자연상태의 물질을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아직도 투쟁이나 피로 같은 것을 머금고 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그 단어의 기억을 구성한 요소 중 하나다. 

“구로공단의 공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법안이 제정되면서, 1967년에 1단지, 1972년에 2단지, 1976년에 3단지가 만들어졌다. … 도시 외곽에 버려진 철거민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떠받친 여성 노동자들의 구로동의 주인이었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서울이라는 환상을 좇거나 남자 형제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봉제공장, 먹고 자고 하던 벌방은 구로동의 상징이었다.”
(17쪽) 

뉴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들썩거리던 2000년, 구로공단 역은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디지털’이라는 상징적인 이름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구로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의 구로는 전혀 다른 도시다. 하지만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문재훈씨는 “구로동의 변화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대떡 신사의 변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빈대떡 신사의 변화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 노래 있잖아요. 옛날 노래.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돈이 없어서 맞는 건데, 외양은 양복이지만.” (114쪽) 구로의 실제적인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구로의 상징적인 기억은 여전하다. 지금 노동자들이 ‘빈대떡 신사’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노동조합을 거부하는 대기업들에 열광하고 기륭전자와 이랜드 파업, 88만원 세대와 대학거부 선언을 남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지도 모른다.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 가드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 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리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아니, 어쩌면 더 서글프게도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고 타박하는 요릿집 종업원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0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1 -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Seduce」


한번더 조금더 너의 입술을 내게 가져와
아직은 놓지마 내게 미친듯 너를 홀려와
여기든 어디든 네가 누구든 난 상관없어
지금이 아니면 넌 날 다시는 볼 수 없어
네 기회는 한번뿐야


* Album form 이윤정, 『육감 (六感)』「Seduce」 중 


19세 미만은 알아서 눈 가리세요

“섹스가 억압된다면, 다시 말해서 금기가 되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침묵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면, 누군가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고의로 규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미셀 푸코(<성의 역사> 중)의 지적처럼 성(性)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악시되는 시기가 있었다. 성에 대한 통제가 사회적 산물로 인식되고 역사적·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를 쓴 조너선 개손 하디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에 관한 한 암흑시대 같았던 20세기 무렵에 사람들은 각종 카탈로그와 지침서 등을 통해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성에 관한 지식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일부에서는 ‘포르노’라고 비난했기 때문에 이 책들은 몰래 구입해서 읽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3억부나 팔려 나간 리틀 블루북 시리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성에 관한 정보에 항상 목말라 했다. 오늘날 각종 매체를 통해 이런 정보들이 지나치게 넘쳐 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렇게 급변하기까지는 한 세기가 채 걸리지 않았다.” (122쪽)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는 혹벌을 연구하던 동물학자였으나 1930년대 말 인디애나 대학에서 ‘결혼 강의’를 맡기 시작, 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의 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금기시되어 있던 성을 연구하면서 1만 명 이상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사람들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성행위를 분석했다. 그 결과물이 흔히 ‘킨제이 보고서’라고 불리는 <남성의 성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1948)와 <여성의 성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1953)이다.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는 이 두 권의 책이 킨제이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킨제이 보고서’라는 명칭을 싫어했다고 한다. 또 어떤 자료에는 위 두 책의 명칭이 언론에 적합하지 않아 ‘킨제이 보고서’로 쓰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당시 이 책들은 사회적 파장과 관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으며, 특히 <여성의 성 행동> 보고서는 발간 2주만에 6쇄(18만 5천부)에 돌입했다.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2005년 국내에 <킨제이 보고서>를 개봉하면서 내건 카피다. 포스터에 강렬하게 ‘SEX’를 써넣거나 마광수 교수와 함께 하는 시사회 등을 주최해 이야깃거리를 부풀리기도 했지만 개봉 전부터 영화에 대한 선정성이나 몇몇 장면의 노출 수위 등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덜 야했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국내에서는 ‘성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처럼 소개되었지만 영화의 원제는 <Kinsey>이며 인간의 성행동을 연구한 ‘킨제이’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내 포스터에는 ‘Let's Talk About Sex’라는 타이틀이 작게 쓰인 정도다. 아직 ‘킨제이 보고서’도 번역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킨제이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의 연구는 여전히 학계나 사회적 평가도 엇갈린다. 그런 면에서 빌 콘돈의 영화와 하디의 평전은 ‘인간 킨제이’에 초점을 맞춘다.  

 

<킨제이 보고서>를 감독한 빌 콘돈은 “킨제이는 미국인들이 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지만, 현재 그는 거의 잊혀진 상태”라고 이야기한다(네이버 영화 정보 중). “킨제이는 각각의 사람들은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관해 이야기 할 때에는 ‘보편적이다’ ‘드물다’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급진적인 개념입니다.” 영화를 통해 노출 수위를 따지기보다는 킨제이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기를 바란 언급이다. 

그리고 하디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킨제이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킨제이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들에게 쓴 4만~5만 통의 편지들 중 일부만 읽어보아도 그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주었는지 알 수 있다. 자위행위는 전혀 해롭지 않으며, 동성애는 흔한 것이고, 성욕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없는 것도 정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예전의 학자들과는 달리 킨제이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킨제이는 또한 헨리 밀러나 D.H.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성에 관한 이야기를 금기의 영역에서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480쪽)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한 선택에 앞서
진보의 재탄생
리얼진보
현대정치의 겉과 속
한명숙 부드러운 열정 세상을 품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Trackback 0 Comment 2

쿨하지 못해 미안해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9 - 쿨하지 못해 미안해

「쿨하지 못해 미안해(No Cool I'm Sorry)」

No Cool I'm Sorry 쿨하지 못해 미안해
No Cool I'm Sorry 하지만 넌 넌 So So Cool

* Album form UV, 「쿨하지 못해 미안해(No Cool I'm Sorry)」 중

본질적으로 쿨할 수 없는 인간

한참 전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본 글은 드라마 대사라고 했다.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언제나 쿨 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진짜 쿨한 게 뭐냐면, 진짜 쿨 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게 진짜 쿨한 거야. 좋아서 죽네 사네 하는 남자가 나 싫다 그러는데 오케이, 됐어, 한방에 그러는 거 쿨 한 게 아니다. 미친 거지.”(드라마 <굿바이 솔로> 중) 하지만 노희경 작가의 금언(金言)을 다짐처럼 적어놓고도 쿨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게 결국 인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며칠 전 인터넷 판 연예뉴스를 보다가 단박에 눈에 들어온 기사가 있었다. 유세윤과 뮤지(하이사이드)가 부른 「쿨하지 못해 미안해」였다. 그 옆에는 당당하게 ‘No Cool I'm Sorry’라고 적어 놨다. 앞서 유세윤이 불렀다던 「박대기송」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여기저기 검색해서 뮤직비디오를 봤다. 사람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생각보다 노래가 좋았다. 본인들의 노래를 퍼니 소울 팝(Funny Soul Pop)으로 정의할 만큼 ‘정말 예쁘게 아름답게 헤어져 놓고 드럽게 달라붙어서 미안해 So So Cool’로 시작되는 가사는 압권이었다. 반면 ‘No Cool I'm Sorry 쿨하지 못해 미안해 No Cool I'm Sorry 하지만 넌 넌 So So Cool’로 이어지는 중독성 있는 매끈한 후렴구도 이 곡의 매력이다. 
 

 

아, 노래를 들으며 느꼈던 딴 생각 중 하나. 요즘 노래에서는 미니홈피라든가 일촌이라든가 하는 표현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노래에도 일촌 끊은 걸 후회하는 가사가 있다. 요즘엔 트위터가 대세라던데 얼마 안가 ‘나를 따르는 팔로어는 1만 명, 하지만 그 중 너는 없어’ 같은 표현들도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미니홈피와 트위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1人입니다. 흑.)

더럽고 치사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감정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의 5단계’라는 이론을 통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과정을 거쳐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에서도 헤어짐을 부정하다가 ‘너는 쿨해 넌 참 좋겠다 그래 참 좋겠다 나만 울어 너는 웃어 나는 울고 너는 웃어’라며 분노하고, 문자를 보내며 스스로 비겁하다고 느낀다. 다시 일촌을 맺을까 고민도 한다. 하지만 끝난 연애라는 건 매달리고, 울고, 좌절해도 달라지지 않는 결과만 남아 있다. 누군가는 상대편이 매달리는 게, 우는 게, 좌절하는 게 싫어서 더 빨리 헤어짐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그렇게 매달리는 사람도, 매달리는 게 싫은 사람도, 헤어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뒤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헤어져서 ‘만신창이’가 된 뒤에는 책보다 사람이 고맙다. 대책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연애가 단순히 타인과의 교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타인과의 관계 문제는 물론 자기 자신의 문제도 연애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연애가 끝난 후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 셈이다. 이때 도움이 되는 건 나를 반추해볼 수 있는 책들이다. 필자가 ‘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2007년 무렵이었다. 당시엔 자기치유 류의 책에 손을 뻗을 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책장에서 찾아보니 당시 읽었던 책 중에서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이 눈에 띄었다. 아래 내용에 북다트가 끼워져 있었다.  

(헤어짐의) 애도 가정을 의식적으로 충실히 이행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깁니다. 우선 현재의 사건에서 비롯된 모든 감정을 잘 극복하면서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친 다음 새로운 애착 관계를 맺을 때는 좀 더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내면에 형성된 환상이 아니라 상대의 현실적 모습을 보고, 정서적으로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는지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고, 두 사람의 성격이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시간을 들여 점검해보세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 다음에 비로소 정서적인 밀착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눈에 반해 앞뒤 없이 휘몰아치는 사랑은, 냉정히 말씀드리면 신경증끼리의 만남입니다. 젊은 시절에 한번 해봤으면 충분합니다.

-김형경, <천개의 공감>, 한겨레 출판, 155~156쪽

3년여가 지난 지금, 당시엔 이 글귀에 왜 그렇게 감동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도 어떻게든 변화했기 때문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흘러야 한다면 좋은 쪽이 낫다. 단순하지만 그때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한다. 돌아보면 쿨하지 못해서 (너에게) 미안한 것보다 찌질해서 (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크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야 했던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지난 연재는 여기! > 민용 in 재즈피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2) 2010.05.06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  (2) 2010.04.28
쿨하지 못해 미안해  (0) 2010.04.21
캥거루 통신 1  (0) 2010.04.14
우리는 달려야해  (0) 2010.04.07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3) 2010.03.31
Trackback 0 Comment 0

캥거루 통신 1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8- 캥거루 통신 1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Twenty Four Little Hours
단 하루가 변화시킨 것
스물넷의 작은 시간들

* Album form Jamie Cullum, 『Twentysomething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 중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캥거루 통신으로 인사드립니다. 아, 혹시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캥거루를 볼 수 없답니다. 대전동물원에 캥거루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왈라루가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잠들어 있는 잿빛 왈라루는 캥거루와는 다른 과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왈라루는 서울대공원에도 살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참, 말하다가 잊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캥거루 통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야 어떤 것에나 이름은 필요하니까요. …나는 댁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당신이 문을 열고 싶지 않다면 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구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테이프를 끄고 쓰레기통에라도 던져 버리십시오. 나는 다만 당신 집 현관 앞에 앉아, 잠시 동안 혼자 떠들어 보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들어주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사실 귀하가 듣던 안 듣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캥거루 통신’ 중)

지난 4월 10일에는 제이미 컬럼 내한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제 가방 안에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들어있었고요. 몇 년 전인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다들 그랬던 것처럼 저도 체 게바라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었고 자서전을 읽었고, 그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를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보았습니다. 다들 그랬듯 한번쯤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큼직하게 그려진 티셔츠도 입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티셔츠를 살까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체 게바라를 잊고 지내게 됐습니다. 사실, 우리에겐 체 게바라보다 더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았잖아요?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거라고요? 치직치직. 여보세요, 잘 들립니까? 흠흠,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불가능한 혁명보단 가능한 일상을 꿈꾸는 게 우리들이니까요. 그게 인생인 겁니다.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초기에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나중에는 의사 신분으로 여행했습니다. 나는 점차, 가난, 기아, 질병 그리고 가진 게 변변치 않아 아이를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과 친밀히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유명한 연구자가 되거나 의학 발전에 어떤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들을 돕는 것이었지요.”(<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중) 이 말에서 문득 여행을 떠올렸습니다. 여행은 거의 떠나지 못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많은 곳을 여행하거나 또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꽤 있습니다. 공연도 그중 하나죠. 

참, 말하다가 잊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탠딩으로 제이미 컬럼의 공연을 보며 가방 안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떠올렸습니다.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이자 전세계인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이미 컬럼이 영웅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구요. 하지만 체 게바라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어온 것처럼 제이미 컬럼은 동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이미 컬럼은 피자 가게에서 연주하다가 유니버설에 발탁돼 백만 파운드(약 22억)에 계약했다는 일화부터 스니커즈를 신은 프랭크 시나트라라든가 재즈계의 배컴이라는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신경 쓸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피아노 위에서 뛰어내리고 두드리기도 하고, 또 부수기도 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여 왔죠. 내한공연에서는 앨범에서만 듣던 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의 메이저 데뷔작인 <Twentysomething>(2003)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반을 표시해놓은 빨간 딱지도 붙어 있네요. 그땐 재즈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말이죠. 잊고 있었습니다. 최근 발표한 <The Pursuit>(2009)와 비교해보니 그는 점점 ‘그’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제이미 컬럼도 좋아했지만 지금의 제이미 컬럼이 더 좋은 이유는 그겁니다. 공연에서도 그는 “난 이제 ‘Twentysomething’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Thirtysomething’이 된 그는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Jamie Cullum「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들으러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

어때요, 들립니까? 하루하루를 100% 만족하며 살지는 못하지만 어떤 하루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봐요, 어디서 맥주라도 하시지 않겠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좋아”하고 나는 말했다.”(<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 중)는 것뿐일 지라도요. 좋아, 라고 대답하는 것 말입니다. 

이상 멋지게 살고픈 30대 캥거루였습니다. 그럼, 이만.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Trackback 0 Comment 0

우리는 달려야해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 27 - 우리는 달려야해

「말달리자」

이리 띵굴띵굴한 지구상에서
우리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무얼 더 바라랴
어이! 이봐 거기 숨어있는 친구! 이리 나오라구!

* Album form 크라잉넛, 『Our Nation』「말달리자」 중

어디에서나 마주하게 되는 죽음

요즘 일상의 낙은 ‘맥주 마시며 책 읽기’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한 시간 남짓은 하루 중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약간은 노곤해진 몸,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 시원한 맥주, 그리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건어물녀’가 이런 거라면 필자는 기꺼이 ‘건어물녀 찬양’에 나설 것이다. 

그 낙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는 읽던 책을 덮었다. 뉴스든, 신문이든, 눈 돌리는 곳 어디서나 마주하는 죽음을 책에서까지 대면하려니 힘들었다. 죽음에 대한 담론은 때로 삶을 벅차게 한다.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닌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건 서글프다. 물론 의미 없는 죽음으로 치부되는 건 더욱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무거운 시기다. 너무 많은 죽음으로 인해 판단도 언급도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오늘은 무거움을 잠시 덜어내고 (필자를 비롯해)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말달리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출근길에 신문을 들고 나오면 대개 1면부터 본다. 그런데 목요일은 좀 다르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와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부터 펼쳐드는 것이다. 연애부터 진로, 직장, 결혼,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노골적인 질문과 직선적인 대답에서 고개를 끄덕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소심한 필자는 두 사람뿐 아니라 직설화법의 대가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기피하기도 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신문지면을 통해 상처받을 수 있는 이야기는 외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만 킬킬거린다. 이 비겁함이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 필자도 뻔뻔해지거나 자존감이 커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김어준은 <건투를 빈다>에서 일관되게 자존감을 이야기한다. ‘나’로 살라는 거다. 그래서 그는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이에게 지금쯤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지금쯤 실패해서. 회복할 시간이 많아서. 아마 당분간 참담할 게다. 과거 영광과 낮아진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도 할 게고. 그러나 그런 비용을 치르고라도 부모 욕망으로부터,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를 얻은 건, 당신 인생 전체로 보자면, 크게 남는 장사다.”(25쪽) 그 남는 장사라는 건 즐거운 인생이다. “문득 난 내가 참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 살고 있었다. 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그 일을 하면 재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만이 기준이었다. 그 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후순위였다. 어떤 일이 하고 싶으면 그냥 시작했다. 때론 생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때론 돈까지 제법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모든 과정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는 거다.”(27쪽) 

하지만 누구나 김어준 총수처럼 ‘딴지 인생’을 살진 않는다. 그게 자존감이 없어서도, 패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있고 그가 이야기하는 인생 역시 수많은 인생 중 하나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의견에 반대해도 상관없다. 그의 인생을 롤 모델로 삼든 롤 케잌으로 먹든, 건투를 빈다!

김어준의 이야기보다 필자를 더 질투하게 했던 건 서양화가 김점선의 자서전 <점선뎐>이었다. 지난해 신문에서 부고 소식을 듣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됐다. 단수로 치면, 김점선 선생은 김어준 총수 보다 한참 위다. ‘파란만장, 엽기만발, 독야청청 살아온 우리 시대의 화가 김점선. 고통을 물감 삼아 인생의 환희를 그려낸 화가가 글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글에서 느껴지는 에고만으로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내 그것이 그녀가 잘난 체를 한다거나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성질이 아님을 알고서야 마주하기가 편해졌다. 그 글은 그대로의 김점선이었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99쪽)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장엄하게 죽기 위해서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는 그녀를 만날 즈음에는 이미 김점선 선생의 삶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기 보다는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우리는 달려야해 거짓에 싸워야해

두 사람의 인생은 멋지다. 그렇지만 꼭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 살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만날 때마다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이 더해진다고 믿는다. 책 읽기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말달리자’를 듣다보니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필자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해. 바보 놈이 될 순 없어. 말달리자’ 음, 나에겐 건어물 인생이 최고다. 오는 4월 23일과 24일, 크라잉넛은 ‘15주년 표류기’라는 타이틀로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연다.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요건, 쌩뚱맞아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빅재미!!! 민용님의 선물입니다! (^^ㅋ) 

'지난 연재는 여기! > 민용 in 재즈피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쿨하지 못해 미안해  (0) 2010.04.21
캥거루 통신 1  (0) 2010.04.14
우리는 달려야해  (0) 2010.04.07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3) 2010.03.31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조금 불행한 거예요  (2) 2010.03.24
우리는 살아있기에  (0) 2010.03.17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