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5.03.02 『우스운 사랑들』 -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2. 2015.02.2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3. 2015.02.1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4. 2015.01.12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느지막한 사랑
  5. 2015.01.07 《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6.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7. 2014.01.28 《올 어바웃 러브》 - 사랑할 줄 아나요?
  8. 2014.01.13 《자기 앞의 생》 - 사랑으로 살아요
  9. 2014.01.07 [반달토끼의 책방앗간] 법륜, 《스님의 주례사》
  10. 2014.01.07 《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우스운 사랑들』 -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밀란 쿤데라 | 『우스운 사랑들』 | 민음사 | 2013


우리가 위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또는 쇼팽과 조르주 상드 이들의 사랑에 왜 감동하는 것일까? 거세된 아벨라르 곁에서 충실하게 곁을 지켰던 엘로이즈와 정신적 관계를 추구했던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특별한 그 무엇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일까? 처음엔 달콤한 꿈처럼 느껴지던 감정들이 점점 더 건조한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푸석한 감정으로 바뀌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는 사랑에 관한 문구, 문장, 해석이 무수히 존재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면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할 때 연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그림자를 향해 몸을 돌리지만 서로 껴안으면서 그림자를 뭉개버린다."고 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그 감정의 토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감정을 더 충실하게 알기 위해 상대방을 껴안고 감정이 포개어지는 순간, 그들 각자의 그림자는 형체가 없어져 누가 누구의 그림자인 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사랑의 아이러니'다.

밀란 쿤데라의 『우스운 사랑들』은 일곱 개의 단편집이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고 사랑의 감정에 진실하지 못하기에 우스운 사랑이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에서는 스리보비체라는 교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투레츠키라는 사람이 쓴 논문의 비평을 써주기로 약속하고 점차 미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인 클라라를 끌어들인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자 그는 클라라를 이용해 자신의 복잡한 현실을 피하려 한다. 자신에게 놓인 불리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스리보비체는 클라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다. 클라라는 오히려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으로 스리보비체를 떠나려 한다. 스리보비체의 모습은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가느라 정작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대변한다. 제목처럼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씁쓸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예측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는 「에드바르트와 하느님」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자신이 욕망하는 감정을 겪고 난 후 뜨거웠던 사랑의 감정이 식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에드바르트는 여자 친구인 알리체의 육체를 욕망하지만 그녀는 크리스천으로 독실한 신자다. 알리체는 믿음이 없는 에드바르트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겠다고 선언하면서 에드바르트는 거짓으로 하나님을 믿는 척해야 한다. 에드바르트는 교장과의 면담 이후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자신의 불온한 정신을 들키고, 교사 직책에 불안을 느끼게 되자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한다. 결국 에드바르트는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한 교장과의 갈등, 거짓으로 둘러싸여 불안의 요소를 만들어낸 모든 인간관계가 단조롭고 의미 없는 기호들이라고 생각한다. 알리체를 사랑했던 감정까지 혼란스러워지자 그는 진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에드바르트를 보면서 현대인들의 낯익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는 믿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과도한 믿음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인생에서 함정이 될 수 있고, 배교자나 이교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히치 하이킹 게임」은 단순한 게임에서 시작되었던 서투른 사랑놀이가 죽음의 계약서와 같이 서로를 파멸시켜 간다는 내용이다. 순수했던 두 남녀의 단순한 게임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쌓여지지만, 동시에 모방된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고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의 감정이 사람을 가장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랑의 폭력은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하다. 세상에는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고 또 사랑만큼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사랑에는 존재하고, 우리들의 사랑에는 없는 것이 상대방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의 사랑에 진실한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과 연결돼 있다. 인간관계의 무대 위에 서다 보면, 때때로 눈이 가려진 채 연기를 하거나, 누군가가 무대의 배경과 장치를 바꿨는데도 모르고 계속 연기를 하다가 실수와 오해를 사기도 한다. 모든 감각과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러한 실수와 오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실수와 오해가 없었다 해도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이기적인 감정은 늘 이타적인 마음을 이긴다. 상대방 본연의 색이 드러날 수 있도록, 또는 나와 상대방의 그림자가 뭉개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순간, 자신의 언어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오색 무지개 색깔 같았던 사랑의 감정이 단일한 회색 그림자가 되는 것을 목격하고 만다. 그러한 상황들은 "우리는 모든 색깔을 다 보여줄 수 있지만 아무리 변화무쌍한 카멜레온도 흰색을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도르비이의 말처럼, 수많은 색 중에서 정작 흰색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방이 가진 본연의 색깔을 가끔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뭉갠다. 자신의 색은 '언어'라는 화려함으로 치장하기 바쁘다. 마치 무수히 찍힌 점들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었단 '쇠라'의 그림처럼 가까이 가서야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랑의 실체는 이와 비슷하다. 이론적인 현실 속에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랑의 거리'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사랑은 적절한 거리의 침묵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o'님은?

삶의 모든 흔적 때로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는 듯한 책들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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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2013


대학 졸업반 시절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문학 관련 잡지도 찾아 읽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할까 고민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요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뒷장에서 이 책의 편집, 디자인, 마케팅을 누가 했는지 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찾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봤었다. 요즘은 통 못 봐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토록 꿈꾸던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학이라도 간 걸까.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새해」의 주인공은 성진과 정연이다.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는 옛 여자친구 정연의 요구에 성진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헤어진 남자에게, 그것도 6년 전에 준 선물을 내놓으라는 정연의 요구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건, 고가의 명품인 줄 알았던 그 시계가 알고 보니 짝퉁이었던 것. 시계를 되찾기 위해 성진과 정연은 다시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둘은 연인이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성진의 대사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29~30쪽)

둘이 사귈 때는 영화 속 여배우의 대사마저도 내 것 같았다는 정연의 말에 성진은 다 남의 것이고 내 건 하나도 없다고 자조한다. 정말 그렇다. 사랑할 때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온갖 사랑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 사람이 내 것 같지만, 헤어지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품인 줄 알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짝퉁만도 못한 싸구려로 전락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건 하나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성진이 언젠가 둘이 함께 갔던 휴양지 호텔방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연인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도 기억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어서 인간은 아무리 이별이 슬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던 그 남자와 그 여자. 문학을 사랑하던 그 남자를 동경했던 그 여자는 이제 그를 동경하지도 않고 남자를 따르는 대신 택했던 길을 걷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던 소설을 읽고,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는다. 가끔 그를 추억할 뿐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정말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기고 간 '내 것' 덕분임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다시 사랑할 때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내 것'으로 취했을까?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블로그에 올리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다른 서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부재, 아쉬움, 무력하고도 귀한 감정이 담긴 책을 읽을 땐 그 책을 읽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단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읽어야 좋던가요?

저녁 퇴근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할 일 없는 주말 낮 등 여러 시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은 옛 애인, 돌아가신 부모님 등 과거의 인물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아서 팍팍한 현실을 잊고 추억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에 읽기 좋았습니다. 단편집이라서 한 편씩 읽고 잠을 자기에도 좋았고요.

● 이번 서평에는 쇼키치님 개인의 사연이 퍽 담겼습니다. 이 서평을 마친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청춘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대 초, 중반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책에 실린 「벚꽃 새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학 졸업 무렵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렸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서평을 썼는데요, 서평을 마치고 나서는 그 사람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 펜벗 앨범을 다시 열어 쇼키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독자와 서평 블로거로 보냈고, 30대는 '지은이'로 거듭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책을 써 볼 생각이라면, 어떻게 쓰실 건가요?

20대에 고시, 취업, 전직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소설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거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책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처럼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처럼 기발한 발상이 빛나는 인문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4개월간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여쭤봐도 될까요- ‘펜벗’은 어떠셨어요?

비록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매달 같은 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평을 공유했으니 이 또한 더없이 소중한 ‘벗’이 아닐까요. 그동안 다수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보았는데, 서로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공유하는 활동은 없었기에 펜벗 활동이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펜벗 1기로 활동한 지난 4개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쇼키치'님은?

블로그 ‘키치의 책다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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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버거, 이브 버거 | 『아내의 빈방』 | 열화당 | 201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켜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있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져 꺼내지 않는 옛 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힐 수 없다.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방은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에는 사랑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아내의 빈방』은 어떻게 읽게 되셨어요?

존 버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내의 빈방』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제게도 2014년은 죽음과 상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해였기에 더욱 마음이 닿았습니다.

● 오랫동안 서평을 써 온 선인장님에게 ‘서평’은 특정한 활동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일부 같아 보입니다. 서평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그저 독후감으로 시작된 메모였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모든 책을 소장할 수 없기에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책에 대한 애정의 작은 표현이랄까요. 정작 지금은 좋은 책에 대해 쓰지 못하고 있네요.

●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으시죠. 『아내의 빈방』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한국문학 작품도 추천해주시겠어요?

같은 주제라 할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떠오릅니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한강의 『검은 사슴』,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서영은의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박범신의 『외등』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잡았는데 감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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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느지막한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민음사 | 2005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첫문장이다. 어쩌면 불쾌할지 모를 이런 말들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해석하진 말아 주길. 소설의 미덕은 소설 안에서 확인해주길. 주인공은 평생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랑은 해 본 적 없는 90세 노인. 그는 90세 생일 선물로 14세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날 밤, 그는 소녀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첫사랑을 시작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은, 근 1세기 동안 홀로 견뎌온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사랑은, 반세기 넘게 지켜온 문체를 버리게 만들었고, 열정에 대한 들뜬 칼럼을 쓸 수 있게 만들었고, 욕망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죽음을 코앞에 둔 90세에, 그는 비로소 삶을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다. 삶이여, 영원하여라.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 받았던 것이다."


삶은 90세라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화와 죽음이 우리 삶에 주어진 절대적인 결말일지라도, 반드시 허무를 담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마르케스 특유의 낙천적인 힘은, 이제는 낡아 버린 말들 -사랑, 열정, 삶 등- 을 찬란하게 복귀시킨다. 그는 사랑을 믿고, 열정을 간직하고, 삶을 예찬한다.

이미 공언된 사실이지만, 마르케스는 믿을 만한 작가다. 이 책이 《백 년 동안의 고독》만큼 '내 인생의 책'이 돼주진 못 했지만 사랑에 관한 소설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실하고 생생한 소설이었다.


설정 자체가 파격적인 만큼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이 사랑이 90세 '여성'과 14세 '소년'의 사랑이라면, 어떨까. 젊은 여성의 육체를 생명력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문학에서 무척 흔한 일이지만 남녀를 역전시키면 여지없이 낯설어진다. 의도치 않아도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전복된다.


혹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90세 노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간에, 그는 주책 맞고 망령든 노인네가 될 수밖에 없다) 몇 살 차이뿐일 지라도 범죄가 성립된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흐름과 유려한 결이 존재했다 할지라도, 원래 사랑은 나이와 몸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라도.

반드시 법이 없어야 인간의 자유가 실현된다고 생각진 않는다.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법의 취지 역시 공감하고 동의한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해버린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증발될 것이라는 불안감. 삶의 근거로 법을 내밀기는 싫은. 소설의 미덕은 이런 지점에 있다.


또 하나. 사랑에는 나이가 소용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상대방의 나이와 무관할 순 있되, 나의 나이와는 무관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삶의 맥락 속에서 사랑을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사하라'님은?

끝없는 잡념의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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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알퐁스 도데 | 《사포》 | 예문 | 2014

 

《사포》에는 사랑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그 앞에 웅크리고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있다. 장과 파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사랑의 숨은 그림자들을 발견한다.

‘연애’보다도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언제나 쉽게 달라져 버릴 것을 알고도, 늘 사랑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 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란 그것의 본질적 속성 위에 유연한 형체들을 지닌 모습으로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만 같다. 다양한 문학 작품 속의 새로운 주인공과 그들이 알려주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의 정의를 하나씩 보태어 본다.

알퐁스 도데의 《사포》에 그려진, ‘파니’에 대한 ‘장’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사랑은 때때로 이유를 짚어낼 수 없는 따스한 분위기와 찰나에 다가와 환락 같은 안온함에 사뿐히 자리한다. 선택과 결정을 위한 움직임을 알아차잖기도 전, 순간의 얕은 변화에 자리를 쉽게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한 열병과 같은 감정의 휩쓸림만이, 경외심과 찬탄과 아름다움, 희생과 헌신, 그것들만이 ‘사랑’을 그리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슬하는 이리도 깊고 넓다. 알량한 허세 의식, 진흙탕 같은 질투, 우둔함, 나약함, 동정과 연민, 광포한 충동, 우유부단함 속에서도 사랑은 미약한 숨을 내뱉는다. ‘장’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부의 명망가 자제인 장은 외교관 시험 준비를 위해 파리에 있었다. 그는 무도회에서 15살 연상의 파니를 만난다. 고지식하고 엄격한 편이지만 순진하던 장은, 파니와의 관계가 집안과 자신의 미래보다 중하지 않고 마뜩잖음을 느끼면서도 파니의 지속적인 구애와 질긴 숙명과도 같은 끈에 의해 점차 그녀에게로 이끌린다. 장은 곧 파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 쓰며 그녀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난 사랑에 빠진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이처럼 나를 따스하게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사랑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닐까?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러한 행복을 접어 두고 살아올 수 있었지··· ··· 타락이라든가 구속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얼마나 우스운 얘기야··· ···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 여자 저 여자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하게 지내는 지금의 생활을 더 불결하고 추하다고 할 수 없지··· ··· (본문 중에서)

그는 외무부의 연수 기간인 3년 동안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 될 거라고, 스스로 불안을 자위했다. 황홀감에 도취되어 신혼 같은 생활을 보내던 그때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 무도회를 주최했던 디셸레트와 유명한 조각가 카우달을 만나,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많은 예술가와 사랑을 거쳐 온 파니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사랑의 경외심을 찬양하던 라구르너리 시의 사포가 파니였다니, 카우달이 조각한 브론즈 빛의 아름다운 사포가 파니였다니. 파리의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 그녀가 '사포'였다. 그는 역겨움과 더러움을 느끼며 파니를 향한 경멸스러운 감정에 비틀거리면서도, 속마음에 생경한 목소리가 울린다.

생각이 이쯤 미치자 장은 당대의 프랑스를 뒤흔드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 간 여자를 자신도 한번 안아봤다는 우쭐함과 그 예술가들이 자기더러 미남이라고 불러 주었다는 데 대한 묘한 자부심이 어이없게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가는 걸 느꼈다. 그의 나이 때에는 무엇이든 확실한 게 없으며 더군다나 세상에 대한 이해라든가 삶에 대해서 아직도 방황과 모색을 시도하는 때라 남들이 조금만 부추겨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믿는 법이다. (···) 장 역시 그랬다. 라구르너리가 아름다운 운율로 시를 적어 노래하고 카우달이 심혈을 기울여 대리석과 브론즈로 조각한 사포의 모습이 후광에 싸여 그의 머릿속에서 자꾸 커져만 갔다. (본문 중에서)

파니의 곳곳에 새겨졌을 지난 사랑의 방탕한 흔적들과 함께 파니의 출생과 집안에 관한 사실들이 연달아 베일을 벗는다. 감추어 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 파니는 이전의 고귀함과 조심스러움을 버리고 장 앞에서 거침없고 난잡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즈음 도착한 고향의 편지를 빌미로, 장은 파니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끝낼 결심에 이른다.

혼란스러움과 질척거리는 사랑놀음에 진이 빠져버린 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평온함과 순수함에 젖어든다. 결국 그는 파니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원생활의 고루함과 나른함에는 싫증이 났지만, 행간에 녹아나는 애정이 애무와도 같은 파니의 편지는 계속되었다. 궁금함과 기다림은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으로 색칠되어 가고. 장과 파니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여백만큼의 새로움에도―새로움이 늘 그렇듯― 아주 짧은 행복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겨우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짧았던 새로움이 퇴색되고 장은 다시 허물을 벗겨내 벗어나야 할 구실을 들먹였다.

남루해지던 생활이 이어지던 중 장은 급작스레 나타난 어린 소녀에게서 모든 것이 합당하고 정돈된 것만 같은 구원을 발견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자제였고 젊었으며 싱그러웠다. 그렇게 파니를 떨쳐 보냈음에도, 알 수 없는 잔영이 그의 온몸과 정신을 휘감았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채 혼자 사는 사람들 특유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허전하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것은 끝나 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잃어버린 분신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한솥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던 날들이 켜켜로 모여 보이지 않는 견고한 천이 한 올 한 올 짜지기 마련이며 그런 관계가 느닷없이 단절되었을 때 그 견고함은 고통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본문 중에서)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꾸역꾸역 넘기며 새로운 소녀와의 그것이 사랑이자 행복이라고 다짐하던, 장은 그가 보냈던 편지들을 돌려받으러 파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맞닥뜨린 파니의 옛사랑과 흐트러진 침대 시트에 장은 광포한 질투에 휩싸인다. 그날, 장은 파니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늪에 머물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장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장은 저 멀리 사라지는 파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완전히 파멸해 버린 자신의 허망한 삶이 바위가 파도에 씻겨나가듯 그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아름다움과 경외심으로 점철된 열정만이 사랑은 아니다. ‘파니’를 향한 ‘장’의 사랑은 질척했고 갑갑했지만, 처절할 만큼 순수하고 원색적이기까지 했다. '사랑'의 또 하나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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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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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어바웃 러브》 - 사랑할 줄 아나요?

 

 벨 훅스 | 《올 어바웃 러브》 | 책읽는수요일 | 2012

 

의심 없이 사랑을 말하던 천진한 시절은 갔다. 대신, 그 말 안에 소유욕이나 애정 결핍, 기대와 집착 같은 감정의 산물이 제멋대로 뭉뚱그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마저도 말하고 듣는 사람의 그것들이 제각기 달라 ‘사랑’이라는 말 앞에선 누구나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소통불능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애초에 내 ‘사랑’과 그의 ‘사랑’은 같을 수 없으니 좌절과 상처는 필연이고 결국 사랑은 헛되고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경험상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떨리는 사랑의 고백을 듣더라도 냉정을 잃지 않고 재고 따지고 밀고 당기면서 더는 사랑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기피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몹시 걱정스럽다. 이들은 사랑을 얻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이유로, 또는 잘못되었을 때 입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들은 모험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랑, 힘들게 감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즉 쾌락만을 구하려고 한다. 사랑을 찾다가 실망과 고통만 안게 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랑을 얻었을 때 얼마나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해롤드 쿠쉬너,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때》, 17쪽에서 재인용)

 

그러고도 사랑은 버려지지 않는다. 때마다 유행하는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고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응원한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면 제 일처럼 함께 기뻐하곤 한다. 물론 스스로도 전보다 더욱 깊이 사랑하고 오래 사랑받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따로 하진 않는다. 할 수 있는 게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머릿속 일이 바쁠 뿐이다. 여전히, 지난 사랑의 기억을 붙들고서 그 사랑의 상처에 붙들린 채로, 사랑이 정말 무엇인지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여행을 할 때 원하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스케줄을 짜고 지나칠 곳을 지도에 표시해야 하듯이, 사랑을 향해 떠나는 여행에서도 우리를 안내해둘 지도가 필요”(303쪽)한대도 불구하고.

 

《올 어바웃 러브》는 그 지도에 해당한다. 벨 훅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인 듯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사랑의 부재 현상이 초래할 위험을 경고하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기 위해”(7쪽)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제껏 한 번도 배워본 적 없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랑에 대해, 제목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며 오류와 편견, 왜곡을 바로잡고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것으로 우리와 같은 ‘사랑 문맹자’를 계몽하고자 한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303쪽)에서 출발해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 사랑은 사랑하려는 의지가 발현될 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랑은 의도와 행동을 모두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뜻이다. 아무나 다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35쪽에서 재인용)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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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사랑으로 살아요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 2009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12-13쪽)

 

생(生)은 가차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누구라도 그 생의 조건에 관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생은 종종 그 자체로 부당한 것이 되곤 한다. 나로선 어쩌지 못할 현실이 눈앞에 놓여있고 그 결과들 안에서 스스로의 책임을 찾지 못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오롯한 몫으로 남았을 때,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생과 불화하는 불행한 자기(自己)만을 토해낸다.

 

나는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 아주 먼 곳, 그래서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33쪽)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채운 인생들이 그렇다. ‘모모’가 우리라고 부르는 이들, 편견과 차별, 멸시의 대상으로, 그러므로 삶은 늘 낯선 것일 수밖에 없는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멜빌에 모여 사는 가난한 유태인과 아랍인, 흑인들의 삶이 그렇다.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들”과 그녀들의 비“위생”이 낳고 생의 밥벌이가 떨어뜨려 놓은 아이들의 나날이 또한 그렇다. (14쪽)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4쪽)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고 알아주는 이 없다면, 그렇게 아프면 다가와 돌봐주고 기꺼이 따뜻한 품을 내어줄 누군가마저 없다면, 다만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태어남이 곧 상처인 삶들이 있다. 사람으로, 사랑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져야만 그제야 생의 비밀에 조금쯤 다가갈 수 있는 이들이, 그 안에서 숨겨져 있던 기쁨을 찾아 흉터처럼 몸에 새긴 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있다.

 

그렇기에 《자기 앞의 생》에는 아무리 “복통과 발작을 일으”켜도 “끝내 엄마는 오지 않”는 모모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수용” 되었다 끝내 병들어 죽어간 로자 아줌마의 관계가, 그 사이를 잇는 사랑이, 그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 하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살 게 된 아이의 이야기가 부당한 생 대신 아름다운 결말로서 주어져 있다. (15, 307쪽)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보고 싶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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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토끼의 책방앗간] 법륜, 《스님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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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타인과 사이에 늘 말을 두었다. 이해하길 바랐고 이해되길 바랐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계엔 점차로 말이 늘어갔다. 침묵은 허용되지 않았다. 말 없는 침묵이 이해보다 오해에 더 가까워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말에 근거를 둔 이해를 구했기에 그렇다. 심지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이를 테면 눈짓, 표정, 움직임, 촉감, 말이 아닌  소리들까지 때마다 말로서 붙잡고 설명해 어떤 의미로 남기느라 애를 써댔다.

 

이로써 모든 건 이전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다른 게 돼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기어이 어떤 말을 찾아내려는 방황을 계속해갔다. 내 안의 무엇을 꺼내려 입 밖에 내뱉은 그 말이, 말이 된 순간 그것과 무관해지는 절망적인 체험을 거듭하면서도, 침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덧칠해놓은 말들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뒤틀리고 망가져 나로부터 타인을 멀어지게 했는지 재차 확인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말은 놓지 못했다. 침묵이 오해된 이후로(이유로) 언어는 이렇듯 오용되기만 해왔다.  

 

   우리는 묵상에 잠기지 못하고, 서로의 품안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사랑 속으로ㅡ말없는, 마법에 걸린, 향내 나는, 가식 없는, 아연하게 만드는, 우리의 포옹들이 반쯤 열어놓은, 직접적인 의사 소통 속으로ㅡ잠겨들어가지 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말을 했을 뿐이다.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어둠 속에서,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난로의 붉은빛에 잠겨,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에 값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관심, 진정한 비참함, 가련한 몸짓이었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입 밖에 낸 말이나 판단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집착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자기 이야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끌어내는 데 열중했는데, 그런 짓은 뒤틀린 것이었다. (80쪽)

 

나는 아마 닿지 못할 것이다. 눈치 채지 못했으나 줄곧 기다려온 《은밀한 생》에.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통해선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침묵과 그 안에서 가능해진 이해 그리고 소통,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바쳐진 《은밀한 생》에 대한 이 매혹을, 어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매혹된 채로, 드러나고 숨겨지고 소리 내고 침묵하고 나아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단 한 곳으로 철저히 향하고 있는 탐색의 길에, 흩뿌려진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매복되어 있는 치밀한 사유, 다만 퍼즐처럼 주어진 삶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집요하게 주워 끝내는 그것을 통째로 만져보기 위한 무도한 헤맴을, 고통스럽게 즐거운 이 독서를 언제까지고 놓지는 못할 것 같다.  

 

… 사랑이 마치 열쇠처럼 갑자기 소통 불가능한 것을 열어젖히곤 했다. 마찬가지로 책들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들일 경우 영혼의 방어물은 물론 갑자기 허를 찔린 생각의 성벽들을 모두 허물어뜨린다.
   마찬가지로 벽에 고정된 유명한 그림들도, 그것이 찬탄할 만한 것들일 경우 문이나 창문, 유리 창구, 성벽의 총안 등등보다 더 벽을 열리게 한다.
   음악이 자신을 넘어서 심장을, 호흡을, 최초의 분리를, 그에 수반된 근본적인 괴로움을, 그리고 일생 동안 그 분리에서 생긴 기다림을 뒤흔들어 스스로의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49쪽)

 

… 나는 하찮은 문장의 반복, 실패한 농담의 되풀이, 끝마칠 수 없는 바보 같은 말의 재탕의 재탕의 재탕이 드러내는 내면의 우스꽝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내가 생각해낸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말을 삼가는 것이었다. (7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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