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6.20 《여자의 빛》 - 사랑 사랑 사랑
  2. 2014.01.13 《자기 앞의 생》 - 사랑으로 살아요

《여자의 빛》 - 사랑 사랑 사랑

 

 

로맹 가리 | 《여자의 빛》 | 마음산책 | 2013

 

흉터는 제각각의 역사를 봉인한 자물쇠다. 흉터를 더듬어 보면 흉터를 남긴 과거와 아물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견디기 힘든 일이 닥쳐올 때 내 흉터를 어루만지며 위안을 얻곤 한다. 심신이 들끓던 힘든 시기에 자학이 남긴 내 흉터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현재를 견딜 수 있었다.

 

《여자의 빛》을 읽으며 이 작품이 로맹가리의 흉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에는 인간 로맹가리가 겪은 힘든 시간과 그 시간들을 견디기 위한 그의 노력이 담겨있다. 보통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타인과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한탄, 좌절 속에 발버둥 치면서 보내는 데 반해 그에게서는 자학과 타인에 대한 원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타인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늘의 뿌리》에서 단 한 순간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모렐이 바로 로맹가리 자신이다.

 

“사람은 늘 과장하는 법이지. 이제 끝장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즐기지. 인도 피리의 짓눌린 곡조를 듣고 혼자 살아가는 거요.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오. 하지만 낯선 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담겨 있소. 내가 또 이런 것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따로 불행한 두 사람이 함께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오. 두 절망이 만나 하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지만, 그건 그저 희망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것만을 증명할 뿐이오. 내가 여기 온 건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구걸의 한 방식이 아닌가. (22쪽)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로맹가리가 자신의 유서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흉터와 같은 그의 책을 읽으며 어쩌면 그를 마지막까지 지탱했던 힘이 그의 분신,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로맹가리에게 책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위로하는 친구와 같지 않았을까? 그에게 삶은 작품을 통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만으론 부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자문하고 있다. 《여자의 빛》과 《솔로몬 왕의 고뇌》는 그 자문에 대한 결과물이다.

 

상실로 인한 고통을 다른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미셀과 그 고통의 본질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빈약함 때문이라고 말하는 리디아. 둘의 하룻밤 사이 흐른 이야기들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한다. 대화는 서로에게 전해지지 못한 혼잣말 같다. 자신 자신과의 체스경기에서 매번 지는 인물(《레이디 L》)에 대한 묘사처럼 로맹가리는 작중 인물들 각자의 입장에 자신의 삶을 놓는다. 그는 삶이라는 문제를 풀 해(解)를 찾고 있다.

 

이건 명예의 문제니까.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주도권을 갖는 것 말일세. (...) 야니크에게는 저항 정신... ... 도전 정신이 있었네. 명예를 포기하지 않았단 말일세, 장 루이. 인간적 명예, 그게 아직 존재한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네. (52쪽)

 

그는 인간이라면, 희망(《여자의 빛》)을 버리고서는 살 수 없음을 역설한다. 《여자의 빛》 이후 절필을 선언했던 그가 《솔로몬 왕의 고뇌》를 마지막 작품으로 써야만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자신과 닮은 작중인물 솔로몬이 마담 코라와 행복한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야니크처럼 사랑받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간직한 채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닐까.

 

"잘있게, 자노! 최초의 시발점으로 돌아가는 노인들은 변화무쌍한 나날에서 나와 영원한 나날로 들어간다잖은가!" (《솔로몬 왕의 고뇌》본문 중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적 죽음)이 타인에게 해석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여자의 빛》과 《솔로몬 왕의 고뇌》를 통해 죽음이라는 단계를 거쳐 육신을 버렸지만, 영원히 늙지 않는 ‘완전한 나’(자신의 작품)로 지금 곁에 남았다. 로맹가리는 삶에 맞서 단 한 순간도 비겁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 남겨진 흉터 하나하나를 손으로 더듬어 보노라면, 나는 그가 전하려고 했던 희망 속에서 더 이상 자학하지 않고 위로 받을 수도 있겠다.

 

여자와 나의 공통점은 우리만의 특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우리의 현재에는 저항의 시간, 짧은 전투의 시간, 불행을 거부하는 시간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 시간은 우리 사이가 아니라, 우리와 불행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퀴 아래 깔려 으깨지기를 거부하기, 부디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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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삶을 배우는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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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사랑으로 살아요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 2009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12-13쪽)

 

생(生)은 가차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누구라도 그 생의 조건에 관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생은 종종 그 자체로 부당한 것이 되곤 한다. 나로선 어쩌지 못할 현실이 눈앞에 놓여있고 그 결과들 안에서 스스로의 책임을 찾지 못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오롯한 몫으로 남았을 때,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생과 불화하는 불행한 자기(自己)만을 토해낸다.

 

나는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 아주 먼 곳, 그래서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33쪽)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채운 인생들이 그렇다. ‘모모’가 우리라고 부르는 이들, 편견과 차별, 멸시의 대상으로, 그러므로 삶은 늘 낯선 것일 수밖에 없는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멜빌에 모여 사는 가난한 유태인과 아랍인, 흑인들의 삶이 그렇다.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들”과 그녀들의 비“위생”이 낳고 생의 밥벌이가 떨어뜨려 놓은 아이들의 나날이 또한 그렇다. (14쪽)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4쪽)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고 알아주는 이 없다면, 그렇게 아프면 다가와 돌봐주고 기꺼이 따뜻한 품을 내어줄 누군가마저 없다면, 다만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태어남이 곧 상처인 삶들이 있다. 사람으로, 사랑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져야만 그제야 생의 비밀에 조금쯤 다가갈 수 있는 이들이, 그 안에서 숨겨져 있던 기쁨을 찾아 흉터처럼 몸에 새긴 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있다.

 

그렇기에 《자기 앞의 생》에는 아무리 “복통과 발작을 일으”켜도 “끝내 엄마는 오지 않”는 모모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수용” 되었다 끝내 병들어 죽어간 로자 아줌마의 관계가, 그 사이를 잇는 사랑이, 그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 하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살 게 된 아이의 이야기가 부당한 생 대신 아름다운 결말로서 주어져 있다. (15, 307쪽)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보고 싶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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