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5.02.2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2. 2014.12.03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3. 2014.03.03 《청춘의 문장들》 - 겨울에서 봄으로
  4. 2014.01.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5. 2013.10.30 《오래된 물건과 속닥속닥》 - 옛 물건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
  6. 2012.05.09 《원더보이》 -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과 마주하다
  7. 2011.09.23 [접어놓은 구절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8. 2011.06.21 <대책 없이 해피엔딩> - 나는 핑, 너는 퐁 (2)
  9. 2011.06.20 [접어놓은 구절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10. 2010.06.16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2)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2013


대학 졸업반 시절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문학 관련 잡지도 찾아 읽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할까 고민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요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뒷장에서 이 책의 편집, 디자인, 마케팅을 누가 했는지 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찾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봤었다. 요즘은 통 못 봐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토록 꿈꾸던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학이라도 간 걸까.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새해」의 주인공은 성진과 정연이다.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는 옛 여자친구 정연의 요구에 성진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헤어진 남자에게, 그것도 6년 전에 준 선물을 내놓으라는 정연의 요구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건, 고가의 명품인 줄 알았던 그 시계가 알고 보니 짝퉁이었던 것. 시계를 되찾기 위해 성진과 정연은 다시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둘은 연인이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성진의 대사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29~30쪽)

둘이 사귈 때는 영화 속 여배우의 대사마저도 내 것 같았다는 정연의 말에 성진은 다 남의 것이고 내 건 하나도 없다고 자조한다. 정말 그렇다. 사랑할 때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온갖 사랑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 사람이 내 것 같지만, 헤어지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품인 줄 알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짝퉁만도 못한 싸구려로 전락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건 하나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성진이 언젠가 둘이 함께 갔던 휴양지 호텔방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연인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도 기억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어서 인간은 아무리 이별이 슬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던 그 남자와 그 여자. 문학을 사랑하던 그 남자를 동경했던 그 여자는 이제 그를 동경하지도 않고 남자를 따르는 대신 택했던 길을 걷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던 소설을 읽고,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는다. 가끔 그를 추억할 뿐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정말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기고 간 '내 것' 덕분임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다시 사랑할 때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내 것'으로 취했을까?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블로그에 올리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다른 서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부재, 아쉬움, 무력하고도 귀한 감정이 담긴 책을 읽을 땐 그 책을 읽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단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읽어야 좋던가요?

저녁 퇴근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할 일 없는 주말 낮 등 여러 시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은 옛 애인, 돌아가신 부모님 등 과거의 인물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아서 팍팍한 현실을 잊고 추억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에 읽기 좋았습니다. 단편집이라서 한 편씩 읽고 잠을 자기에도 좋았고요.

● 이번 서평에는 쇼키치님 개인의 사연이 퍽 담겼습니다. 이 서평을 마친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청춘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대 초, 중반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책에 실린 「벚꽃 새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학 졸업 무렵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렸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서평을 썼는데요, 서평을 마치고 나서는 그 사람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 펜벗 앨범을 다시 열어 쇼키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독자와 서평 블로거로 보냈고, 30대는 '지은이'로 거듭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책을 써 볼 생각이라면, 어떻게 쓰실 건가요?

20대에 고시, 취업, 전직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소설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거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책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처럼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처럼 기발한 발상이 빛나는 인문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4개월간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여쭤봐도 될까요- ‘펜벗’은 어떠셨어요?

비록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매달 같은 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평을 공유했으니 이 또한 더없이 소중한 ‘벗’이 아닐까요. 그동안 다수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보았는데, 서로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공유하는 활동은 없었기에 펜벗 활동이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펜벗 1기로 활동한 지난 4개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쇼키치'님은?

블로그 ‘키치의 책다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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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김애란, 박민규, 황정은 외 | 《눈먼 자들의 국가》 | 문학동네 | 2014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 조정래 작가의 말씀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해양 참사가 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슬픔과 상처의 흔적은 몸속 깊이 만연해 있습니다. 잘못과 죄는 일어났는데,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 없는 이 사회에 문인들이 슬픔과 진실을 외칩니다. 이 책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김애란, 김연수, 황정은 등 12명의 글을 묶은 것입니다. 김훈 작가가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유가족들 모두에게 준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라고 쓴 박민규 작가의 표제작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읽는 내내 심장을 두들깁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 크게 울립니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될 예정이라니 더 눈길이 갑니다.

 

재일 학자 강상중은 ‘문학의 힘’에 관하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는 2010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느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소설이 《마음》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문학이 해야 할 일”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라는 김애란의 글에서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겠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는 우리의 무기력을 고백하는데, 정말 가슴속 깊은 곳을 뜨겁게 찌릅니다.

 

세월호는 고도성장과 눈부신 발전 이면에 숨은 거품과 안개의 단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잊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면, 다른 쪽에서 그만하자고 외치죠. 처칠은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비극으로….’라고’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문인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이 책은 곁에 두고 항상 봐야 할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쁜뚜영이님은?

좋은 책을 읽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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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겨울에서 봄으로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 마음산책 | 2004

 

겨울 추위에 그렇게 당했는데도 매년 봄이 올라치면, 떠나는 겨울이 아쉬워진다. 계절은 돌아왔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아디오스”는 소치에만 전할 것이 아니다. 겨울도 떠난다. 감기가 나으면, 어느새 봄이 와 있다는 걸 안다. ‘청춘(靑春)’이란 말에는 ‘봄(春)’이라는 글자가 완연히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청춘은 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청춘은 환절기에 제법 어울리는 삶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청춘은 많은 것들을 겪어보는 과정이고, 모든 것을 견뎌보는 시도다. 적어도 내가 아는 청춘은 그랬다. 지금도 나의 청춘은 뭔가가 모자란 상태로 지나가고 있다. 《청춘의 문장들》에는 작가 김연수가 “사랑한 시절들, 사랑한 사람들,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빠져 있는 것들(9쪽)”이 적혀 있다. 그가 기억하는 청춘의 장면들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한 시절들, 사람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청춘의 문장들》에 비추어 본다.    

 

내가 기억하는 청춘이란 그런 장면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창문 너머로는 북악 스카이웨이의 불빛들이 보이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하지만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합창한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하지만 과연 잊을 수 있을까? (…) 그래서 내 기억 속 그 정릉집의 모습은 거대한 물음표와 함께 남아 있다. 그건 아마도 청춘의 가장 위대한 물음표이지 싶다. (138쪽)

 

누구에게나 청춘은 완벽하지 못하다. 누군가 내게 ‘나의 청춘은 완벽했다’고 한다면, 그게 ‘진짜’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완벽한 청춘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청춘의 쓸모는 ‘완벽하지 못함’에 있는 것 아닐까? 겨울에서 봄처럼 쉽게 바뀌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겪어보라고. 매화 잎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견뎌볼 필요가 있다고.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 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 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53쪽)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다. 흘러가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청춘도 지나간다. 여전히 결여된 것들은 새롭게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가운데가 뚫린 도넛처럼. 청춘은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도넛과 같은 존재니까.(9쪽)” 그러니까 청춘의 속도를 굳이 붙잡으면서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건 좀 치사한 일이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9쪽)”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243쪽)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243쪽)”이라는 걸 알겠다.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 (243쪽)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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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혜원
사진 제공 | 문학동네

 

같은 책이라도 전집(全集) 안에 들어가면, 새로워 보입니다. 책의 새로운 터전 같다고나 할까요? 위대한 문학전집이 세상에 나오면, 이 땅에 훌륭한 집 한 채가 지어진 것 마냥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자꾸 보면 살고 싶어지는 것이 집입니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전집일수록 전부 다 모으고 싶죠. 그래서 전집은 ‘샀다’는 말보다 ‘장만했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고전문학전집을 출판한 문학동네에도 새집이 들어섰습니다. 하얗고 튼튼한 스무 권의 책들입니다. 김승옥의 단편 10편이 수록된 1권부터 2009년에 나온 박민규의 <카스테라>까지. 스무 권을 아우르고 있는 시대는 사실 모호합니다. 문학동네의 신형철 편집위원은 한국문학전집의 발간을 기념하며, 선정 기준을 밝혔습니다.

 

 

 

 “’문학성’입니다. 문학동네가 소설을 출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신뢰하는 기준은 ‘서사의 힘’입니다.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이야기가 밝혀서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이 어느 정도 독자들과 소통했는지,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를 대표적으로 보여줬는지 하는 ‘문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박완서를 읽고 자랐고, 모두가 박완서를 읽으며 세월을 났다.” (400쪽)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세 번째 책, 박완서의 대표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에 쓰인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해설입니다. 세월을 함께한 책을 전집으로 다시 보는 기분은 어떨까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2014년에 나온 ‘새 책’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을 계기로 누군가는 한국문학 입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통해 ‘한국문학이 이런 거구나.’라고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대의 한국문학 독자,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속에 정착되도록 하는 게 문학 출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연 편집위원의 바람이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출간하는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선으로 발표된 스무 권 외에 앞으로 전집에 입주 예정인 이웃도 궁금해집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자신감 있게 입을 모았습니다. “전집을 만든다는 것이 기존에는 정서를 확정 짓는 대단히 권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문학동네는 좀 더 동시대 독자들과 호흡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어떤 작품은 전집으로 묶기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대의 작품 중 앞으로 어떤 것이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될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맨 처음 기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문학동네의 자신감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학전집을 장식하는 표지에는 한강 사진이 있습니다. 낯선 풍경의 한강을 아름답게 찍는 이대원의 사진입니다. 문학동네가 기록할 한국문학전집의 역사가 한강의 물결을 따라 굳세게 흘러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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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과 속닥속닥》 - 옛 물건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

 

 

 

이정란·김연수 | 《오래된 물건과 속닥속닥》 | 에르디아 | 2013

 

물건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본적으로 물건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 용도와 쓸모를 다하면 버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떤 물건은 쓸모와 별도로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 그렇다. 이런 물건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의 삶과 인생, 그리고 추억이 담겨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건을 쏟아내고 있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실용적이면서 편리한 사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매를 서두르게 한다. 며칠 전에 산 물건이 벌써 유행에 뒤쳐졌다거나 사용하기에 불편한 경우도 생겨난다. 따라서 예전의 물건들은 점점 더 생활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기능상 문제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지은이는 오래된 물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오래된 물건들은 이미 현재의 일상 속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골동품에 가까운 것들이다. 반닫이, 함, 뒤주, 사방탁자, 병풍, 괘종시계, 백자기, 화로, 다듬이, 한지, 고무신, 적삼, 손수건, 목화솜 이불, 버선, 참빗, 소반, 바가지, 시루, 약탕기, 옹기, 바구니 등이 《오래된 물건과 속닥속닥》에 이야기로 담긴 옛 물건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성인들이라면 한 번쯤 보았음직하다.

 

지은이는 옛 물건들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각각의 물건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과정, 용도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 물건들을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옛 물건들이 단순히 추억 속의 물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식성과 실용성을 갖춘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애정 어린 눈길과 손길이 닿아 오래된 구닥다리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더욱이 각 물건에 관한 이야기 끝에는 구입처, 사용법, 관리법, 관련 속담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더해져 있다.  

 

물건은 그 시대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시대를 거부하며 옛 물건만을 고집할 수는 없으며, 옛 물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떠받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는 항상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맞추어 생활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환경에 지나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물건 하나하나의 의미는 점점 더 하찮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출시되는 최신 모델의 스마트폰으로 바꾸느라 현재 사용하고 있는 멀쩡한 핸드폰들이 버려진다.

 

옛 물건에 강한 애정을 보이는 지은이의 모습은 물건을 하찮게 여기는 작금의 세태는 물론 물건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간 우리가 잊고 또 잃어버린 물건의 의미를 통해 삶을 돌이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게 아닐까 한다. 옛 것을 되돌아보고 조금은 느리게 가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테니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반디달덩이’님은?
원래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몸답고 있다가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 턴하면서 주로 인문서와 예술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관련 서적들을 관심있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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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과 마주하다

 

 

김연수 | 《원더보이》 | 문학동네 | 2012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소한 우연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이다. 해서 우리는 종종 만약에 라는 말을 사용하다. 만약에 그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공간에 가지 않았더라면 삶은 분명 달라졌을 꺼라 말한다.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시각, 그 순간에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건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만약에라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나와 닿은 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상하게도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작은 위로를 받은 듯 충만해진다. 그러니까 이 말은 김연수의 소설은 누군가도 나처럼 슬프고 누군가도 나처럼 아팠고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너도 괜찮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함이 있다는 거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 열네 살 정훈이 들려주는 이야기 《원더보이》는 특히 더 그랬다.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는 아빠와 단 둘이 살던 정훈은 1984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빠는 죽고 정훈만 살아남은 것이다. 공교롭게 그 사건은 남파 간첩이 연류 되어 있어 죽은 아빠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자가 되고 정훈은 세상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고아가 된 정훈은 나라의 보호를 받게 되고 그 뒤로 정훈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된다. 정훈의 능력을 알게 된 국가는 이를 이용하려 한다. 

 

1980년대, 사회는 불안했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젊은 청춘이 많았던 시절이다.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정훈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했다. 아니, 국가가 원하는 대로 읽어야 했다는 게 맞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누군가의 두려운 마음을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는 일은 사춘기 소년 정훈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도 힘든 아이에게 국가라는 보호자는 참으로 가혹했다. 그러던 중 정훈은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 있다는 기쁘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고 아빠의 유품인 망원경과 수첩을 통해 어딘가 존재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세상의 모든 게 다르게 보였을 정훈은 자신의 병실을 지키다 제대한 선재를 찾아가고 그를 통해 강토를 만난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고 했을까. 아니, 사실은 강토를 고문을 당하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보았던 것이다. 약혼자를 잃은 강토는 정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훈은 죽은 아빠가 단지 보이지 않을 뿐 저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그러니 언젠가는 분명 아빠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수는 정훈이라는 아이의 슬픔을 통해 1980년대의 슬픔을 보여준다. 더불어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그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 정훈의 아픔을 안아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는 현실은, 그 시절을 지나온 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의 어른은 어떠했나. 강압적이었고 비겁했다. 오직 당사자만이 그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세상이, 끔찍하다. 물론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가령 그것은 서울대공원에 놀러 간다거나, 밥을 짓는다거나,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거나, 나무의 연두빛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일이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이거나,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막연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일상들을 아름답고 경건하게 지켜보고 말한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사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 <뉴욕 백화점> 중에서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

 

그러니까 정훈은 열네 살이었던 1984년을 지나가게 될 것이고 어른이 될 것이다. 아빠가 죽던 그 순간 보았던 빛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희선 역시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희선이 아닌 강토의 삶을 살았던 시절을 간직할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정훈처럼 열네 살의 소년도 아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기는 커녕 내 마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정훈과 강토가 서로에게 바람이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우주에서 부는 바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바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봉우리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 말이다.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300쪽)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좋은 시절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슬픔, 아픔, 고통, 절망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삶이라는 걸 말이다. 그 위험한 돌, 하나 하나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훈의 삶이 그러했듯 우리는 분명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찰나의 순간에 우주의 빛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저절로 어떤 비밀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당신과 마주한 지금 일 수도 있고, 아직 닿지 않은 누군가를 만날 때일 수도 있다. 그렇게 눈부신 날들이 바로 생이다. 그러니 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품은 비밀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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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문학동네 | 2009

 

"요즘 들어서, 살아오는 동안 안 하고 넘어간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청년은 아직 이게 무슨 기분일지 모를 거야. 한 일들은, 그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스스로도 창창하다 생각하는, 나는 이팔(28)청춘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청춘답게 살고 있나? 지금에만 할 수 있는 일들,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들, 진실로 간절히 원하는 일들, 오랜 시간 하고 싶어한 일들 그런 일들을 하고 있나? 젊고 건강한 몸으로 가능한 더 먼 곳까지, 더 먼 세계까지 나아가려 하고 있나?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럼 그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족한 시간, 빈곤하기만 한 통장, 용기 부족, 의지 박약 등등 셀 수도 없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이유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없는 시간은 만들어 내고, 가벼운 통장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차곡차곡 채워나가면 된다. 그러면 용기 부족과 의지 박약은? 이 둘을 극복하기 위해 한 노인이 청년에게 건내는 이야기인 위의 문장을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 안 하고 넘어간 일들이 어딘가에 남아 여전히 마음을 걸려 넘어지게 할 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솟아 오르고 나약한 의지도 굳건해진다.

 

나중에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다 해봤다. 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미련은 없다. 생각보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었고 즐거운 일 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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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나는 핑, 너는 퐁


 

김연수, 김중혁 | <대책 없이 해피엔딩> | 씨네북스 | 2010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라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종종 자연인으로서의 작가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독자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것이 에세이일 것이다. 한 작가의 지난 시간, 지금의 시간, 또 앞으로의 시간을 엿볼 수 있기에 에세이 한 권을 읽고 나면 작가와의 거리가 한 뼘쯤 좁혀진 기분이 든다. 더불어 그 작가의 작품이 조금 더 투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작품 속에서는 알지 못했던 의외의 면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혹시 ‘김천 3인방’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김천 3인방’은 경상북도 김천 출신인 3명의 문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 3인방의 주인공은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과 시인 문태준이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바로 이 김천 3인방 중 소설가인 김연수, 김중혁이 함께 쓴 ‘영화 에세이’다.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서 ‘나의 친구, 그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1년여 간 연재되었던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날개를 살펴보면 김중혁이 두 사람의 우정 연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김연수는 `1970년에, 김중혁은 1971년에 태어났지만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김중혁이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같은 학년이 되었다.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기록지를 교환하다 친구가 됐고, 이후 28년 동안 친구로 지냈다. 김연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김중혁은 대구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사이가 멀어지는 듯하였으나 김중혁이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학교수업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김연수는 서문에서 위의 김중혁이 말한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기록지를 교환’하며 두 사람이 처음 친구가 된 시간을 되살려 낸다.

 

그러던 어느 날, 좀 어벙벙하게 생긴 애가 우리 반 교실로 나를 찾아왔다. 6년 동안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어본 일이 없었던 애였다.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친구의 부름에 따라서 복도에 나가 그 어벙벙하게 생긴 애를 만났다. 얘기인즉슨 자신도 프로야구 경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전 날 무슨 일이 있어서 한 경기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 해서 낙담하던 차에 다른 반에 자기처럼 야구경기를 기록하는 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록지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 어쨌거나 줄까 말까, 이런 고민 따위를 하게 만들다니 당장 기록하는 걸 때려칠까 말까, 망설이는데 동네 상점 아들인 그애가 기록지를 빌려주면 야구카드를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 김중혁과 나 사이에 무슨 우정 같은 게 있어서, 그 우정의 연혁을 따져보자면 그게 시초의 일이 되겠다. 말하자면, 우리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면 절대로 성립되지 않았을 관계였다.

 

마치 예능프로에서 “자, 두 사람이 첫 키스한 장소는 어디?” 라고 물은 것 마냥 두 사람은 우정의 기원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28년이라는 유구한 시간을 친구로 보내고, 또 ‘소설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답게 집요한 구석이 있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엄연히 ‘영화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보다도 두 사람의 수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통통 튀어 올라 서로의 사이를 핑, 그리고 퐁, 하고 오가는 말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탁구 국가대표선수들의 경기마냥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김중혁이 김연수의 지난주 칼럼 줄거리를 요약(국내 최초 시도란다)하고, 다음주 칼럼을 예고하며 다양한 그래프를 그려 ‘서비스’를 하면, 김연수는 ‘엉성하게 원고 분량을 줄일 속셈’이라고 또 자신의 ‘잘 생긴 얼굴은 천형처럼 문학 인생에 방해만 될 뿐’이라며 스매싱을 날린다.

 

그들의 진중한 소설을 떠올리며 이 왁자한 책을 읽으면 대책 없이 웃음이 터지게 될 테니 그 점, 염두에 두시길. (실제로 지하철에서 혼자 낄낄대는 바람에 뭇사람들의 동정 어린 ? 쯧쯧, 사는 게 많이 힘든가 보군  ? 시선을 받은 바 있다.) 당신이 ‘누구의 팬이든 얼마나 괴롭든’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한국문학의 차세대 기대주’ 김연수와 ‘손가락에 물이 오른 젊은 작가’ 김중혁의 작품을 탐독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컨텐츠 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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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 마음산책 | 2004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하고 싶었다.
 

- Ten Days of Happiness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일하는 개인들은 누구나 그런 기분을 한번씩 느낀다. '수십 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 속에 나는 그저 손톱만한 부품 하나일 뿐이다'하는 기분 말이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도, 나와 별 다르지 않은 누군가가 와서 이 자리를 채울 거란 생각도 들 것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면은 비워져가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날들이 늘어간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은 비단 작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오로지 '안정'만이 유일한 미덕이 되어버린 세상의 직업관에 밀려 '일'이 가지는 가치, '일'이 주는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은 낭만주의로 취급된다.

 

조금 거칠게 말해서, 로또가 당첨되어 평생을 놀고 먹고 살수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멀리 돌아가더라도,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안정이 주는 안락함 뒤에 숨겨진 나태의 함정과, 세상의 시선에 맞춘 허울의 위태로움을 기억하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곳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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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5 -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넌 할 수 있을 거야
뒤를 돌아봐
웃어 이만큼 온 거잖아

언젠가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날
조금 멋쩍을지 몰라
너도 몰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너일 테니

* Album form Verandah Project, 『Day Off』「괜찮아」 중

어쩐지, 기필코, 괜찮아

김동률과 이상순이 베란다 프로젝트(Verandah Project)로 『Day Off』를 발표했다. 온라인 음반 매장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았다. 솔직히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만 있지 않은가. 김동률과 이상순이 만나 어쿠스틱한 음악을 한다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필자는 순전히 청개구리 심산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ay Off』는 최근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 됐다. 첫 곡 「Bike Riding」은 연애로 달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예쁜 곡이었고, 연애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어쩐지」는 듣기만 해도 간질간질해지는 곡, ‘이대로 그냥 멈출 순 없잖아 절대 아무렇게나는 안 돼(그럴 순 없어) 제대로 내가 맘에 들 때까지 내일의 내가 부끄럽지 않게’라고 노래하는 「기필코」는 불끈불끈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롤코의 담백함과 전람회의 풋풋함, 그리고 카니발의 세련됨을 적당히 뽑아내 한 장의 앨범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Day Off』를 듣기 전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책은 <씨네 21>의 인터뷰어 김혜리가 펴낸 인터뷰 모음집 <진실의 탐닉>이었다. 인터뷰 집은 화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만큼 직접적인 울림이 있기는 하지만 독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게다가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인터뷰어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이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왜 그렇게 ‘잘난’ 이들이 많은 건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유명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려는 얄팍한 속셈이 먼저였다. 그나저나, 『Day Off』는 꼭 소개하고 싶고, <진심의 탐닉>은 글을 쓰기 위해 구입까지 해 놓았고, 그런데 이를 어떻게 연결시킨담?!

베란다 프로젝트, 사랑 한 편 

『Day Off』에서「Bike Riding」이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지만 어쩐지 필자가 마음을 빼앗긴 곡은 「어쩐지」였다. 이 곡을 듣는 순간 떠오른 곡은 김동률과 이적이 결성했던 카니발의 1집 『그땐 그랬지』에 수록된 「그녀를 잡아요」였다. 전람회(김동률, 서동욱)와 패닉(이적, 김진표)의 멤버가 모두 참여해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에게 그녀를 붙잡으라며 충고와 위로를 해주는 곡이다. ‘지난 노래 가사처럼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백하면 어때요?’(모두들 알다시피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일컫는 가사다) ‘이 여자다 싶을 때가 또 오는 게 아니죠.’ ‘두고 두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그때 가서 우리 책임 없어요.’ 같은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대의 정서를 닮았다. 그때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연애문제로 힘들어했고,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고, 그러다가 학교도 과감하게(!) 빠질 수 있었다. 연애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청춘의 6할쯤을 사로잡은 건 ‘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 참여한 「어쩐지」는 ‘다시 연애 같은 건 못할 것만 같다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어대던 너 우리 몰래 풍덩 사랑에 빠져서 몰라볼 것 같아 다른 사람 같아 어색해’ ‘Bye Bye 기쁘게 보내줄게 가끔은 우리도 잊지는 말아줘 축하한다 정말 참 부러워 근데 왜 이리 맘 한구석이 휑한걸까’라고 노래한다(이 곡에서 이적이 참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설마 아기 아빠라 빼놓은 건 아니겠죠?!).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연애 얘기에 수줍어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고, ‘불꽃’ 사랑보다 ‘군불’ 애정을 선호하게 된 30대의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를 노래하는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젊음과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진심의 탐닉, 인생 한 편

그런가하면 <진심의 탐닉>에서는 스물두 명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표현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들이 창조적인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진지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찍었던 청춘이라는 영화는 좌충우돌(좀 멋지게 좌충우돌이긴 했지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찍고 있는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고 우직하며, 자아성찰적이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그가 생각하는 실패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가짜로 산 인생이요. 가면의 생. 특히 이른바 성공한 사람 중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경험이 없고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 (27쪽)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잡지 <키노>를 이끌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이 와 닿을 것이다. “시네필 중에는 쓰거나 하지 않고 계속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바보예요. 중의적 의미의 바보죠. 반면 어떤 학생은 줄창 책만 읽어서 모르는 이론가가 없어요. 하지만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대화해보면 머리가 뒤죽박죽이에요. 결국 저는 보기, 읽기, 쓰기의 삼위일체가 계속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만들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가야 하고요. 쓰는 것을 멈추는 순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서랍처럼 느껴져요.” (120쪽)

읽는 내내 ‘질투크리’가 ‘작렬’한다.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어쩜 이렇게 생각이 깊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멀었다는 투다. 그 겸손이 ‘척’이 아니라 ‘진심’인 걸 알기에 그들의 인생 한편 한편이 매력적인 영화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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