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2. 2012.09.06 [詩로 물드는 오후] 진은영, 고백
  3. 2009.06.05 오지은, 그녀의 두 번째 이야기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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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진은영, 고백

 

진은영 | 《훔쳐가는 노래》 | 창비 | 2012

 

고백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
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버린 이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
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 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
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
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수음처럼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해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재밌게 읽었던 생각이 납니다. 진은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죠. 이 시는 세 번째 시집인 《훔쳐가는 노래》에 실려 있습니다. “청춘은 글쎄…… 가버린 것 같다”며 가슴을 쿵 치는 시, “금지된 일터로부터 망명한 당신”이라며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위원에게 보내는 시, 또한 여러 편의 시에 눈길이 머뭅니다. 모든 시편을 “나 대신” 사는 자들 대신 쓰는 자로서, 시인의 ‘고백’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어쩌면 시인은, 사람은 서로에게 대신 사는 자. 이 슬픔의 연을 품고 가자면, 시를 쓰지 못하는 나는 시 한 편이라도 전하는 수밖에, 한 마디 ‘고백’의 말을 옮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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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그녀의 두 번째 이야기

 

오지은, "지은[2집]", Mnet Media, 2009

오지은에게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백적 가사다. 자기 고백을 음악적 수단으로 사용할 때 그것이 단순한 감정적 배설이나 의미 없는 혼잣말을 넘어 음악으로 담을 수 있을 만큼의 공유의 가치를 가지려면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 했던 생각이나 감정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거기서 노래로 엮어낼 만한 내용을 골라내는 냉정한 자기 인식과 똑똑함이 필요하다. 그가 지금 이만큼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인디를 찾는 미디어의 요구와 그의 만화 같은 데뷔 과정,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유행이라는 흐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당연히 그가 건져낸 자신의 얘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채워줄 사랑에 대한 제어하지 못 할 만큼의 강렬한 욕구는 젊음, 혹은 미성숙의 상징이다. 그의 사랑 노래가 유난히 저릿하게 닿는 이유는 그 감정에 대한 섬세한 탐색을 통해 사랑에 관한 욕망과 고통을 깊게 훑고 있어서다. 그는 자신 안에서 누구나 경험하지만 부정되고 묻히는 어두운 사랑을 꺼냈다. “너를 갈아먹고” 싶고 “자빠뜨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해서 사랑의 대상을 파괴할 정도의 욕망에는 섬짓한 광기가 서려있지만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렴풋이나마 느꼈을 감정이다. 전에 없던 과격한 사랑의 표현은 단순히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너를 차버리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반사적으로 대상에 의존해 반응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상대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지은에 대한 지지는 그가 내보이는 욕망이 그만의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물론 이 욕망은 남성에게도 유효하며 그래서 그의 욕망은 좀 더 넓은 공감대를 만든다.
 
관계의 가장 격렬한 부딪힘인 사랑에 대한 탐색은 곧 자아에 대한 탐색이다. 적극적 태도는 단순히 타인과의 관계인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사랑의 욕망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인생론’에서 드러나는 것 같은 담백하고 긍정적인 인생관이다. 앨범 안에서 그는 이 태도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싸 스스로를 치유하는 감정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다양한 감정으로 꽉 짜인 그의 드라마는 곧 듣는 이의 드라마가 되고 감상자는 그와 함께 자아 탐색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공유한다.
 
2집은 영역을 넓히기보다 눌렀던 음악적 욕구를 터뜨리는 앨범이다. 담아내는 정서는 1집과 같지만 제작 여건상 불가피했던 소박한 구성은 많은 게스트를 동원하는 화려함으로 바뀌었다. 한편 사랑의 파괴적 욕망과 집착으로 인한 불안, 일상에서의 갑작스런 고독과 같은 정서는 유지되지만 말랑하고 따뜻한 정서를 추가하거나 좀 더 감정 그 자체로 집중하는 내용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전작의 특장점이었던 간결함을 통한 감정의 날은 좀 다른 방식이 되었는데 이언과 전자양의 편곡이나 용린의 기타 사운드 같은 게스트 뮤지션의 활용이 이 표현의 확장을 담당한다.
 
2집의 내용은 전작의 성향과 지명도 있는 레이블과의 결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두가 예상한 그 범위를 뛰어넘어 생각 이상의 노련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만의 강렬한 감정의 표현과 그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다양성, 자의식과 대중적 소통 사이의 적절한 균형 감각이 있다. 같은 맥락 안에서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완성도를 다듬은 새 앨범은 전작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감춰진 본색을 드러냈다는 인상을 만든다.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구성 능력은 그에게 좀 더 후한 점수를 받도록 했다. 가능성 있는 신인의 성공적인 두 번째 앨범은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게 하는 법이다. 새 앨범을 통해 오지은은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대중과 비평 양쪽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굳히고 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고' 님은?
한때 풍운의 꿈을 안고 음악 업계에 도전했으나 좌절 후 낙향하여 칩거생활 중. 좌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생활인으로서의 예술가보다는 그들을 숭배와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며, 글이 쿨하게 써져 있지 못한 것은 그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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