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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3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2. 2015.01.13 너의 意味
  3. 2015.01.13 《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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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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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김승옥 | 《무진기행》 | 문학동네 | 2004



만약 소설이란 분야에도 신이 존재한다면, 작가가 정말로 접신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이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표제작인 「무진기행」을 꺼내 읽고, 겨울이 오면 그의 또 다른 단편인 「서울, 1964년 겨울」을 꺼내 읽는다. 두 편 모두 고등학생 때 어느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승옥의 문학 지문을 읽고 나서 느꼈었던 그 오묘함이란 다른 때와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문제는 한참 전에 다 풀었지만,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나의 남은 자습 시간을 뒤덮었다. 하굣길에 결국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려고 챙겨둔 돈으로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덜컥 사고 말았다. 평소 나다운 선택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진기행』을 책꽂이에 둔 지 십 년, 그리고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무려 오십 년이 지났다. 구청 병사계에서 일을 했던 '나'도 부잣집 아들내미이자 대학원생이었던 '안(安)'도, 지금쯤 살아있다면 벌써 춘추가 근 칠십오 세다. 그들이 따로 또 같이 보냈을 오십 번의 겨울은 그들의 정수리 위에 흰 눈을 뿌렸거나 아니면 검은 뿌리들을 몽땅 뽑아버렸거나 둘 중의 하나는 했을 것이다. 파리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손을 뻗어보면 손 안에 잡히기도 하지만, 포장마차에서는 이제 참새구이 대신 출처가 불분명한 닭꼬치를 판다. 젊은 청춘은 일을 마치고 홀로 선술집을 찾지 않고, 길가에 즐비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거나,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싶으면 근처의 바를 찾는다. 가끔 한 모금씩 홀짝이며 주위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 보지만, 불필요한 말 따위는 굳이 건네지 않는다. 괜한 오해도 싫고, 괜한 어색함도 싫다. 눈앞에 있는 낯선 누군가 보다 조그만 휴대폰 속 익명의 존재가 차라리 더 편하다. 언제라도 홈 버튼만 누르면 관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무진의 명산물이 모두를 휘감는 뿌연 안개였다면, 서울의 명산물은 개인을 더욱 또렷하게 분리하는 욕망이었다. 지금, 무진의 명산물은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이 되었고, 서울의 명산물은 여전히 욕망이다. 그러나 서울 밖을 벗어나도 아주 손쉽게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 1964년 당시 '나'와 '안(安)'의 청춘은 마치 발밑의 흙물처럼 기온에 따라 녹았다 얼기를 반복했다. 살얼음 같은 개인주의였다. 비정하나 끝까지 모질진 못했고, 모질지 못했지만, 끝까지 인간답지도 않았다. 그들의 인간성은 어는점 0℃를 기준으로 묘하게 꿈틀거렸다. 평온해 보였다. 반면 요즘의 청춘들은 요동의 폭이 남다르다. 이상하다. 평균치를 내어보면 이들이 수렴하는 곳도 분명 0℃가 맞는 듯한데, 움직임은 확연히 다르다. 퍽 격하다. 이러한 세태는 나만 알고 있는 사실도 아니기에 그다지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옆집 아저씨의 야구 동영상 취향이 무엇인지 복도 창문 너머로 확인하는 일 따위가 의미 있을 것이다. 그딴 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또 실제로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마저 1964년의 '나'와 '안(安)'을 제외하면 인정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SNS가 발달하고부터 나만 알고 있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남도 알게 하는 것에 오히려 더 큰 의미가 부여된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다. 날씨가 춥다. 추위는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도시의 청춘들은 여전히 외롭다. 타인의 죽음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울, 1964년 겨울」의 마지막 장에서 두 청춘은 이렇게 말했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286~287쪽)

이 겨울이 지나가면 반드시 봄이 찾아오고 또 그다음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칠십육 세를 바라보는 '나'와 '안(安)', 이십 대 후반을 달리는 나와 친구들, 이 두 무리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늙을까.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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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라는 사실이다.”고 서평에 쓰셨는데요,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게 만들까요?

사실 그 문장에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는 없습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춥잖아요. 말 그대로 절기상의 겨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1월도 겨울이었을 테니까요. 덧붙여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이 만든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서울과 겨울은 그냥 닮아있는 두 가지 형태인 것 같습니다. 읽었을 때 발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그 속성도 그렇고요. 오지랖이 넓어지는 것을 허용 안 하죠.

● 이십 대 후반을 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김형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공감하신다면, 그때 왜 그렇게 느낄까요?

공감하는 편입니다. 저를 포함한 요즘 세대 중 다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최대한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니까요. 직접 경험에서 답을 찾기보다 간접 경험에서 답을 찾죠. 그게 더 안전해 보여서 그럴까요?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해 고를 수 있는 답도 자꾸만 줄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답이라고 해서 가장 젊은 답은 아닌데 말이죠.

● 펜벗 앨범에 쓰셨던 ‘기계화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엔 무슨 책에 관심을 두고 계세요?

기계화되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호기심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뭐가 됐든 계속 생각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요즘은 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4, 5시간 정도 자는데, 어떻게 하면 잠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질지, 그럴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얼마나 자야 건강에 이로운지 궁금합니다. 새해를 맞아 습관도 바꿔보고 싶고요. 최근에는 『24/7 잠의 종말』과 『잠의 사생활』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양말'님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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