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4.12.31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2. 2014.12.30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
  3. 2014.12.30 안녕히 가십시오, 2014년
  4.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5. 2014.12.29 《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6. 2014.12.26 《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7. 2014.12.24 《악의》 - 뒤틀린 인간
  8. 2014.12.23 * Merry Christmas *
  9. 2014.12.23 《고래》 - 천명관을 처음 만났다
  10. 2014.12.22 《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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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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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십시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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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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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에릭 호퍼 | 《길 위의 철학자》 | 이다미디어 | 2014

 

뒤늦게 에릭 호퍼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엔 그가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국가, 인종,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선사한다. 그는 평생 장사 생활과 식당 보조 웨이터, 야적장 인부,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남긴 삶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풍미가 가득하다.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광적인 독서 습관은 에릭 호퍼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에릭 호퍼의 인생과 독서 습관 덕택이라 생각한다.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가 남긴 자서전으로 그가 썼던 다른 책들에서보다 떠돌이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가난과 굶주림은 그의 생을 빚어가는 양분이 되었다. 젊은 시절 노동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다가 이른 결론은 자살이었다. 그는 수산염을 사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자살을 시도했다.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자살이라는 결론은 방랑하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릭 호퍼는 방랑자로 살게 되었다. 그는 샌디에이고 엘센트로 임시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모든 사상을 세워나가는 데 기초가 되었고, 그곳에서 한 달여간 낯선 사람들과 지내며 인간의 속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이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던 에릭 호퍼는 토마토 모종의 성장을 관찰하다가 식물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던 식당에서 그는 독일어로 된 책을 어렵게 읽고 있던 스틸턴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만남은 계속 이어졌고, 에릭 호퍼는 스틸턴 교수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스틸턴 교수의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택했다. 스스로 이러한 지식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어째서 궁핍하고 비참해 보이는 삶을 산 것인지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독으로 철학적,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던 에릭 호퍼에게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의 대답은 몽테뉴의 수상록일 것 같다. 그는 이 두꺼운 책에서 자신과 마주쳤다고 표현했다. 몽테뉴가 마치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된 생각에 관해 쓴 것 같다고 한다. 나 또한 마치 읽은 느낌이 드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었다. 수상록에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기에 에릭 호퍼라는 한 인간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무척 흥미로워졌다.

 

이리저리 떠돌며 일하고 책만 읽었을 것 같은 에릭 호퍼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만났던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50년이 지나 그는 자서전에 그녀와의 추억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뻗어 그녀를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고 말한다. 헬렌과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그였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자신의 여생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껴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갔다. 어째서 그는 그녀와 함께 정착하지 않았을까? 한때의 감정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그녀와 함께 살면 한순간의 평화도 얻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젊은 시절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가던 에릭 호퍼는 2차 세계대전 중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부두노동자로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길 위에서의 삶과 부두에서의 삶이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 불안정성은 독특하게 비슷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관하여 경험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내가 노동의 현장과 노동조합에서 받았던 충격이 에릭 호퍼가 경험했던 것과 유사하다. ‘보통 사람들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나눔에 더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이라는 에릭 호퍼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에릭 호퍼의 아주 짧은 생의 순간들을 마주하니 ‘길 위의 철학자’라는 제목이 그의 삶과 아주 잘 어울린다. 떠돌이, 방랑자라는 에릭 호퍼의 자기 인식은 삶에 대한 정직한 대면에서 온 것이리라. 수년 전부터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나는 그의 삶, 그가 남긴 글들에 힘찬 자극을 받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초원위의양'님은?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연구원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어서 환경 관련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점점 더 깨끗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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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마크 해던 |《빨간 집》 | 비채 | 2014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는 가족…. 분명 어떤 이는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마크 해던의 《빨간 집》이 곧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진 않을까. 책 제목부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 장례식을 통해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서로의 속내는 달랐다. 한편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불현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한다 해도 꼭 한 번은 싸우기 마련이다. 그만큼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그들의 배우자와 여행 자체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은 어떨까. 이들의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으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서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를 정도로 거리가 있다. 리처드는 가족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꽤 복잡하다.

 

옆 좌석의 안젤라를 곁눈질했다. 그 옛날, 대학 술집에 앉아 있던,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뚱뚱해지고 살갗도 처지고 장딴지에 정맥이 불거져 나와서 할머니가 다 된 모습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13쪽)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엉망이다. 그들에겐 자식들이 있다.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데이지는 종교에 심취한 소녀로, 멜리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와 생각들이 벅차기에 가족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연관은 되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한데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는데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알아챈다. 교묘하게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은 선뜻 예뻐하기 어려우니까.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데이지 역시 무엇인가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양쪽 부모 모두를 긴장시키고 만다.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그토록 모르고 지냈던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어 엄마를 붙잡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세월이 백일몽처럼 밀려오면서 데이지는 시내로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129쪽)

 

딸과 엄마 사이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벽을 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사춘기 딸이 갑자기 심취해 버린 종교와 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자신이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크기에 사춘기 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엄마 안젤라에게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가족끼리의 여행이 애초부터 순탄할 리 없었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생겼고, 그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으며 또 서로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마음이 상해 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인 부분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케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과 고통, 상실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얻어야만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처음에 만날 때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현실 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우리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8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어쩌면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며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떼12'님은?

책을 좋아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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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 뒤틀린 인간

 

 

히가시노 게이고 | 《악의》 | 현대문학 | 2008

 

신간이 나왔다 하면 또다시 신간 혹은 재출간이 쏟아져 나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들을 보고, 또 그런 다수의 작품에도 시들지 않는 인기를 보면서 '도대체 그 많은 작품이 전부 다 재미를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뜬금없는 궁금증이 생겼더랬다. 정말 많은 작품을 내다보면 뻔하거나 구성이 반복되진 않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믿고 보는' 것을 보니 이 걱정은 기우인 듯했다. 그의 작품 중 첫 번째로 만난 《용의자 x의 헌신》의 충격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컸는데, 이 책도 '그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 하면서 작가와의 새로운 만남에 또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요즘은 왠지 모르게 추리소설 끝까지, 긴장감을 안고 마지막에 범인의 정체를 아는 것보다 일단 사건이 공개된 후 범행 동기를 거꾸로 파악하는 방식이 흥미롭게 여겨진다. 《악의》는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용의자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만든 후 사건에 대해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방식이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 형사'의 기록과 사건에 대해 엄청난 함정이 기록된 주인공의 수기를 통해 능수능란한 전개를 펼친다. 범죄를 고백하는 듯하면서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묘한 기운을 뿜는 범인의 기록과 이를 치밀하게 살펴보려는 형사의 기록이 번갈아 등장하기에 소설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 제목이 '악의'인 걸 보면 범인의 범행 동기가 엄청난 '악의'에 의한 것이라 예측할 수도 있는데, 끝 부분에 등장하는 비밀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범인의 '악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설마'할 정도로 깊지 않았다. 심지어 '사소하다' 말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며, 원인 모를 그것에 '악의'적인 생각이 점점 덮어 씌워져 얼마나 큰 덩어리가 되는지…. 그 생각에 잠식되어 한 인간이 얼마나 무모하게 변해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범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과거의 악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사건이 일어난 현재까지도 치밀하게 속임수를 만들어 내고 사실을 왜곡하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우발적 범행도 때로는 이렇듯 사소해 보이는 악의를 품고 있을까.

 

현직 작가가 살해되고 그와 죽마고우인 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상황. 가가 형사가 한때 동료였던 주인공을 취조하는 상황들을 보면, 작가가 참 재밌게도 그들을 얽히고설키게 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절대 답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사건에 대해 아주 침착하게 접근하는 '가가 형사'의 모습도 마음에 든다. 이상한 사건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며 범인과 형사의 수기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소설 《악의》. 단연 근래 읽어 본 추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리니링'님은?

책을 유랑하며, 책장 한 칸 한 칸 좋은 책들을 꽂아 넣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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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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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을 처음 만났다

 

 

천명관 | 《고래》 | 문학동네 | 2004

 

천명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답니다. 꽤나 유명한 소설가인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이라는 말에서 오는 기대와 설렘보다는 오히려 밋밋하고 그저 그럴 것이라는 편견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처음'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대개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한 짜릿한 설렘을 느끼게 마련인데 말이죠. '첫눈', '첫사랑', '첫키스' 등 처음으로 시작되는 이런 숱한 말들은 그 흔함과는 별개로 각별하고도 강렬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처음'이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언어인 동시에 가장 개별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러한 개별성 때문인지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첫'경험은 항상 새롭고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워 듣게 됩니다. 어쩌면 '처음'은 가장 진부한 주제인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느꼈던 한국 소설에 대한 편견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고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묘하게도 천명관의 소설 《고래》는 그가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그럴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은 기존의 한국 소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지요. 뭐랄까, '신선하다'고 하면 식상하고, 이게 과연 소설이라는 장르에 제대로 속하기나 할까 의심부터 드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파격의 연속이지요. 그는 형식 밖의 형식으로 자신만의 글(또는 소설)을 쓴 셈입니다. 

 

그의 이력이 궁금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국어국문학이나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내가 어느 시점에서 한국 소설과 멀어진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만 보였던 창작 분야에서마저 산업화의 영향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소설이라는 특정 형식은 판에 박은 듯 일정하고 내용만 조금 달라진 수많은 소설이 쏟아졌던 거지요. 제 눈에는 그게 그거인 듯 보였고, 심지어 일정한 생산 설비에서 자동으로 뽑혀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내가 한국 소설에서 멀어졌던 게 아마 그때부터였던가 봅니다.

 

이따금 궁금하기는 했어요. 그럴 때면 어려서부터 눈에 익은 유명 작가의 작품에만 손이 가더군요. 그마저도 없으면 일본이나 서구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요. 그러다가 최근 유행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천명관의 《고래》였습니다. 말하자면 《고래》는 나로 하여금 한국 소설과 재회하게 한 첫 소설인 셈입니다.

 

아, 천명관의 이력이 궁금했었다는 말을 해놓고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군요. 늘 이런 식입니다.  두서가 없지요. 다들 예상하겠지만 그가 이 세상에 《고래》를 내놓기 전 그의 (작가로서의) 이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가다판을 전전하다가 영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말입니다. 그가 소설 같지 않은(그래서 더욱 놀라운) 소설 《고래》를 쓸 수 있었던 것도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았던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고래》는 긴 겨울 밤 시커먼 남정네들이 행랑에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을 때, 작가가 투명인간이 되어 그들 몰래 방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그런 소설입니다. 이를테면 허풍과 현실이 한데 섞여 서로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음담패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그러면서도 한국 근대사가 교묘히 섞여들어간, 때로는 '가량맞다'와 같은 순 우리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소설입니다. 설화나 전설, 신화가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 작가는 불쑥 '독자 여러분!'을 외치며 등장하기도 합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놀란 독자는 '아, 맞아.  이건 가상현실이지.'하며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군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는 자신이 다시 선출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정적들은 더욱 거세게 그를 압박해왔고 민심은 그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집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률을 공포한 것이었다. 그것은 독재의 법칙이었다." (351쪽)

 

이런 터무니없는 소설이 어떻게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것이 비단 작가의 글솜씨나 소설로서의 파격에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뻥과 허풍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살짝 비껴간 듯하면서도 결코 현실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그들의 말, 그들의 삶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덕과 법의 테두리 속에 존재하는 삶이 난데없는 뻥과 결합했을 때 우리가 받는 느낌은 비현실이 아니라 무한한 자유와 재미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합쳐 흐트러짐 없는 서사로 엮어낸 작가의 능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것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그들만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소설 《고래》는 기존의 소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것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소설의 태생이 그렇듯 뒷골목의 이야기를 일정한 형식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작가 천명관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내려간 까닭에 독자는 규칙에서 해방된 듯한 자유를 느끼고 그의 뻔한 허풍에 웃음을 짓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탈 없이 이야기가 꾸려지는 게 신기하지요?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 강제로 이끌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자유로운 소설에 무수히 많은 법칙이 등장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작가는 소설 중간중간에 말도 안 되는 법칙들을 갖다붙여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이 다큐가 아닌 예능으로 읽히도록 강제하는 듯합니다.  예컨대 '구라의 법칙', '권태의 법칙', '생식의 법칙', 아랫것들의 법칙', '구호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논쟁의 법칙', '고용의 법칙', '사랑의 법칙' 등 법칙이란 법칙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는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의 말솜씨에 세 여자가 모두 넋을 잃어 국이 졸아붙는지 밥이 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 (140쪽)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별 의미도 없지만 천부적인 입담꾼 천명관의 손에서 펼쳐지는 글의 얼개는 국밥집 노파와 금복, 금복의 딸 춘희로 이어집니다. 읽는 독자에 따라 금복을 주인공으로 또는 그녀의 딸 춘희를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 속 무대인 평대를 중심으로 이재에 밝은 금복은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부자가 됩니다.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된 셈이지요. 그것은 순전히 한을 품고 죽은 박색 노파의 재물을 손에 넣었기 때문인데 결국 금복은 그 죽은 노파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됩니다.  산골 출신의 한 소녀가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는 모습입니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271쪽)

 

금복이 지었던 고래를 닮은 영화관은 그 상징성이 남다릅니다. 영화라는 가상현실, 그 덧없음은 우리가 욕심내는 어떤 것도 스크린의 그것처럼 허망한 것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결국 금복은 영화관과 함께 불에 타 죽게 됩니다. 방화범으로 몰린 벙어리 춘희는 자신에 대한 변명도, 결백에 대해 주장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매섭고 긴 옥살이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장한 육체 하나에 의지하여 간신히 버틸 뿐입니다. 순진하리만치 미련한 춘희, 남에게 해코지 할 줄 모르는 춘희도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주제로 집약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01쪽)

 

천명관의 《고래》는 내가 그동안 줄곧 생각해왔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단박에 깨트린 작품이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천명관이라는 작가로 인해 한국 소설에 대해 기대와 흥미를 한동안 품고 지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첫눈에 대한 막연한 기대처럼 설레는 것일 테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고래》로 인하여 그동안 가졌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가 깨졌다고 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었던 한국 소설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준다면요.

 

뭐랄까, 기발하다거나 독특하다고 느낄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고요. 일단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에 드는 다른 소설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나 수고 하는 것이 부질없다 생각하게 마련이죠. 다 그게 그거라는 편견이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국 소설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바람이나 한국 소설을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독특한 소재를 다룬 파격적인 소설을 기대합니다. 예컨대 한국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뒤처진다는 느낌이 강했었죠. 저만 그렇게 느꼈을까요? 게다가 표현에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순화하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모습이 많았거든요. 특히 성애의 장면이 그렇죠. 작가가 판단할 때 어떤 장면의 세밀한 묘사가 작품에 꼭 필요하다 느끼면서도 대충 넘어가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일부러 성적인 묘사를 많이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죠.

 

금복이 ‘고래’에게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처럼, 꼼쥐1님에게도 지금껏 그토록 강력하게 매료되었던 대상이 있었는지요. 한 가지를 꼽는다면요.


저는 참 무미건조한 사람입니다. 딱히 어떤 대상에 애착을 갖는다거나 매료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실이나 이별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여 미리 방어막을 쳐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내 소유의 어떤 물건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요.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되어서도 물건에 대한 애착은 생기지 않더군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그동안 일부러 외면하거나 등한시했던 베스트 셀러 작품을 챙겨 읽고 있어요. ‘올해의 책’ 목록에 오른 작품을 위주로 보고 있죠. 책에도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가 있어서 그것을 마냥 무시하며 내 나름의 독서를 고집한다는 것도 조금 우스워 보이거든요. 연말이면 대개 그랬던 것 같아요.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못 읽고 지나쳤던 책이라던가 제 취향은 아니지만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을 주로 읽게 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꼼쥐1'님은?

책을 사랑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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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 《Mahler - Symphony No.9》 | DG | 2014

 

2013년 8월, 말러 교향곡 9번의 연주를 준비하던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이하 정명훈)에게 비보가 전해진다. 문화교류 차 정명훈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은하수악단 단장인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 정치적인 이유(를 빙자한 숙청)로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문경진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예술가였다. 정명훈 역시 그를 매우 아꼈고, 특히 자신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은하수 오케스트라와 파리에서 합동 연주회를 했을 때를 비롯해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무대에 그를 소개했다. 그렇게 아꼈던 후배 음악가를 허망하게 잃은 정명훈은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필 당시 서울시향과 준비했던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 시향 단원 중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의 합동 연주 때 문경진과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단원들은 합동 연주 당시 함께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연미복에 속옷처럼 덧입고 나왔다. 연주회 시작 전부터 단원들에게는 애통함과 비장함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말러 자신이 작곡 당시 느꼈던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 체념 그리고 미련이 전부 녹아있는 작품이다.
1악장을 지배하는 'F#-E'의 짧은 모티브는 이승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다. 그에서 파생된 모티브들은 절규하듯 울부짖거나 꺼져가는 목숨처럼 헐떡거리며 사라지기도 한다.   
2악장과 3악장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거나 산만해서 냉소적인 웃음 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와 같이 느껴질 정도다.

 

흡사 '세상은 나를 위해서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어!' 라고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껄껄 웃는 말러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에 모든 것을 체념하기라도 한 듯 길고 긴 한숨과도 같은 4악장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었던 삶이 비로소 끝나가는 것을 직감한 작곡가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힘을 쥐어짜듯 써내려간 악상으로 가득 차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연주하는 지휘자와 단원들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설프게 연주하려거든 아예 연주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2013년 8월, 정명훈과 서울시향 단원들은 연주 직전에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곡을 연주하는 평범한 일상과 죽음의 공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몇 발자국 차이로 늘 곁에 있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찌 됐든 이날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렇게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러의 9번 교향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죽음의 공포'라는 단어를 썼지만, 거의 울음에 가까운 감정으로 흐느끼며 연주에 참여했던 지휘자, 단원, 스태프들 그리고 거대한 '음악적 현상'에 기꺼이 동참한 관객들은 그 공포를 넘어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공포에 정면으로, 그것도 매우 치열하게 맞선 뒤 생겨나는 의지와 감사함을.

 

그리스인이 비극을 사랑했던 이유가 비극의 정화(淨化) 효과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은 2013년 8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느낀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동안 DG가 작업한 서울시향 음반에 대해 공통으로 제기되었던 답답한 음질, 음색의 블렌딩 문제도 상당히 해소되었고, 섹션마다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충실하게 강조되어있다. 음색의 변화 또한 민감하게 잡아내 상당히 만족스럽다. 한국 관현악 연주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날의 기록이 한층 정성스레 담겨있는 이 음반을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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