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4.11.28 그래도 읽어 간다
  2. 2014.11.28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3. 2014.11.27 《혈통》- 아스라이
  4. 2014.11.26 《동물을 깨닫는다》 - 알쏭달쏭 동물의 마음
  5. 2014.11.25 난 너만 있으면 돼!
  6. 2014.11.25 파울로 코엘료 《불륜》
  7. 2014.11.25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월요일을 재즈처럼
  8. 2014.11.24 《The Endless River》 - 아름답게 사라지는 전설의 밴드
  9. 2014.11.21 《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10. 2014.11.20 미리보는 양띠 해 세상

그래도 읽어 간다

 

< SESAME STREET >

 

그래도 읽어 간다

 

도서정가제가 11월 2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11월 20일 자정이 다 될 때까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는 인터넷 서점들이 차지했습니다. 평소 책과 서점을 먼 산 대하듯 바라보셨던 분들도 이날은 장바구니를 비워내느라 바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고 싶었던 책들, 좋은 기회에 잘 구매하셨는지요?

 

한때 유행처럼 독서캠페인이 번졌었습니다. 국가와 매체에서는 책 좀 많이 읽자고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가에서는 제대로 된 책을, 제값에 사야 한다고 새로운 법을 시행했습니다. 독서캠페인과 도서정가제 모두 ‘독서 진흥’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진흥’이라는 말은 떨치어 일어나거나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들여도 스스로 읽어야 완성되는 것이 독서일 텐데, 새삼 ‘독서’라는 성질과 타의에 의한 ‘진흥’이라는 조합이 영 어색해 보입니다.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다시 없을 기회에 붙잡은 책들은 지금 ‘독서 진흥’하고 계시는지요.

도서정가제를 맞아 왜 책을 읽으려 하나, 혹은 왜 또 사려는 건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 ―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 소설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PARIS REVIEW, 권승혁 ? 김진아 역,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


아쉽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좀 더 저렴하게 책을 취할 수 있는 묘미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책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가장 순수한 것 하나만 남은 셈입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요. 도서정가제의 취지대로 더 좋은 책이, 즐거움을 주는 책이 오래오래 ‘점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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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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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줄리언 반스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다산책방 | 2014

 

제목이 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인지 영, 감을 못 잡았다. 책을 읽어보니 단박에 알겠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작가 줄리언 반스. 그가 아내를 잃고 처음 쓴 소설이라는 말에 이 책이 궁금했다. 나는 그의 예전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랑에 냉소적이고, 아니 인간에 냉소적이던가, 아니면 통찰력이 넘치는 것인가? 책을 읽기 전에 곤혹스러울 수 있겠다고 지레짐작했었다. 과연 그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까? 아니면 평소의 그답게 냉소적으로 죽음을 고찰할까? 관계의 허망함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롭게 말하는 그가 과연 사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그는 자신 앞에 떨어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과연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내가 집중해서 본 이야기는 마지막 장 ‘깊이의 상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었다. 문학이니 예술을 위한 소리가 아니라, 그는 그가 아는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애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내를 허망하게 보낸 뒤 자신이 느꼈던 심정 그대로였다. 그가 그려 왔던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나의 감정과 거리를 두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가.

 

사별의 고통이란 건, 언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깨달음조차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것에서도 위로를 기대할 수 없다. 그가 어쩜 그리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별의 고통에 대처하였던지 실소하고 말았다. 나는 당시 대부분 지인과 절연했다. 살다 보니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그렇게 유난을 떨게 된다. 비이성적인 것을 알면서도, 비이성적으로 굴어야 속이 시원했다.

 

그의 애도 방식 말고도 나는 다른 감흥에 잠기게 됐다. 이젠 내가 꽤 사별의 고통에서 멀어졌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으로부터 졸업했다는 걸 알았다. 20년 넘게 끙끙 앓았으니 그럴 때도 됐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과연 사별의 고통에도 무뎌지는 날이 올까, 의문을 품는가 하면,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는 듯하다. 조심스럽지만 그런 날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날이 온다. 평온해지는 날이.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해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데도 공허마저 너무 익숙해진다.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고도 한참을 살아남으면 죽음도 나를 더 이상 할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많다는 것 역시. 사랑마저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죽음이 오기도 전에 끝난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어떤 것이 나을까?

 

그나마 죽음으로도 끝나지 못한 사랑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인간인 우리로서는 나은 것 아닐까? 아마 내가 줄리언 반스의 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에게 사랑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네사'님은?

아이들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삶이 마냥 행복한 조카 바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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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아스라이

 

 

파트릭 모디아노 | 《혈통》 | 문학동네 | 2008 

 

일명 '게이' 오를로프, 스티오파, 드니즈, 남십자성, 나치 점령하의 파리, 레지스탕스, 이중 신분, 여러 개의 여권, 어느 저녁 카페의 테라스, 희미한 실루엣…. 평범해 보이는 이 단어들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단어들의 열거이자 희미한 불빛을 품은 몸짓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던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 나는 이제야 그 '한낱 환한 실루엣'에 가려졌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혈통>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한 해설 같은 작품이다. 또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한데, 영화로 말하자면 스핀오프(spin- off)개념으로 얘기해도 될 것 같다.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는 주인공이었던 '기'가 기억을 잃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내용인데, <혈통>을 읽다 보면 '기'의 모델이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아버지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1940년 6월,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으로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되었고 이 때문에 프랑스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감시를 받게 되는데, 저자 파트릭의 아버지는 '토스카나 유대인 가문'이었다. 

 

인간에게 '이름'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정해진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지 A에서 B로 바뀌었다는 사실만 남는 걸까? 그때 그 기억의 사슬에서 하나를 제거하면 '당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서너 개 나누어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들에겐 각각의 영역에서 불리는 이름이 존재할 것이다. 만일 그때 각각의 영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이 그 질문을 받기 전에 "불행히도 사람들은 당신에게 결코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치의 탄압에서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큰 파장과 균열을 가져오게 될지 어린 파트릭은 물론 파트릭의 아버지 자신도 몰랐다. 파트릭은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이중 신분과 그 외에도 몇몇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중 신분을 사용했던 아버지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정말 이상하고 묘한 시대였다. 파트릭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개와 늑대의 중간쯤에 위치한 묘한 시대를 살던 묘한 사람들...' 이라고 지칭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묘하게 사라지기도 하고 묘하게 덧붙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들을 나열하면 '유령들의 목록'과도 같았다. 아마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유령들의 목록' 중의 한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어두운 상점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기'는 소나쉬체와 스티오파에 의해서 자신이 몰락한 귀족 가문인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며 게이 오를로프와 프레디를 추적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되는 추적 끝에 '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여권과 '페드로'라는 이름과 앙주국 15-28번이라는 전화번호, 캉바세레스가 10번지 8구라는 주소를 어렵게 찾아낸다. 하지만 자신이 '페드로'일지도 모른다며 찾아간 주소에서 '기'는 또다시 자신이 '멕케부아'라고 불리던 남자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드니즈'였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기억이자 여러 사람의 기억이기도 한 묘한 이야기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을 읽고 나면, 똑같은 단어와 똑같이 등장한 인물들 때문에 두 작품 간의 경계는 미묘한 망설임 속에서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워지는데,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그 시간에 대한 회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감정 이입 없이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 그 특징이다. 대략 열네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나치 치하의 유대인 탄압, 이중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과 그 피를 물려받은 아들의 피로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혈통>의 내용을 요약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기엔 그 얄궂은 시대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가득 찬 것 같다.

 

파트릭은 사십 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그렇게도 들어가기 싫었던 기숙사 생활을 6년 동안이나 계속하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아버지의 모든 고독의 시간에 대해 이해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존재하지만 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반쪽짜리의 삶으로, 자신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은 버렸지만 ‘피’만은 버릴 수 없었던 얄궂은 시대의 묘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해해야 하는 삶은 압박과 불안이 되어 그 얄궂은 시대를 흔들고 균열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소설 속 '기'는 끝내 자신의 온전한 기억을 찾지 못했고, 파트릭의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뒀다. 그 시간은 이제 희미한 실루엣이 되었다. 우리는 파트릭 모디아노가 느끼듯이 전쟁의 비극으로 인해 타인이 자신에게 제대로 질문한 시간을 영원히 놓쳤음을 안다. 그리고 나는 전쟁의 비극, 인종차별에 대한 비극, 그 시대의 균열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희미한 실루엣으로 완성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혈통>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덧없이 흘러가는 저녁 빛의 어스름한 불빛들 속의 희미한 실루엣. 그 불빛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알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o'님은?

삶의 모든 흔적 때로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는 듯한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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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깨닫는다》 - 알쏭달쏭 동물의 마음

 

 

버지니아 모렐 | 《동물을 깨닫는다》 | 추수밭 | 2014

 

어릴 적부터 동물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스레 그들을 사랑하도록 자라온 나는 사실 동물의 의식에 관한 이 연구가 굉장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만큼 나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동물들의 감정 세계에 감탄하기보다, 많은 사람이 동물을 열등한 존재 혹은 감정이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음에 더욱 놀랐다.

 

우리 인간은 이 모든 ‘하등한’ 존재들의 정점에 서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동물들은 하등하지 않으며 우리는 진화의 절정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계통적으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조상인 침팬지보다 더욱 수준 높게 진화하지 않았다. (중략) 자연선택의 작용은 생명의 나무 위에 있는 모든 유기체들의 구조와 특징을 그 조상들이 직면했던 도전들에 대응해서 형성해왔다. 성공하지 못한 종은 이제 나무 위에 없다. 그들은 멸종한다. 지구에서 4억 년 이상 살아온 상어를 가장 성공적인 동물 중 하나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1쪽)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의 감정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나 역시 그러한 사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깊이 있는 사고체계를 갖추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의 구분을 살펴보자. 우리는 주로 생물의 복잡성 정도를 기준으로 그것을 구분하고 있으며 언제부터인지 인간이 진화의 정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시 여겨왔다. '우리는 진화의 정점에 있지만, 우리는 하등한 그들과 평등하게 지낼 거야.' 평등을 외치면서도 묘한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종'일 뿐이다. 자신의 환경에서 모두는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일 테다. 만약 인간의 모습이 모든 진화의 정점이라면, 다른 종들은 무슨 이유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겠는가. 그것은 곧 그들 스스로 하등한 형태를 취했다는 의미인데, 이는 진화의 이유로 말이 되지 않는다.

 

저는 정말이지 인간이 왜 항상 모든 영역에서 우월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다른 모든 동물들과 구별돼야 하는지도, 특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383쪽)

 

우리는 늘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 때때로 나에게 맞지 않는 비교기준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 받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인간인데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동물들에게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은 우리보다 하등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맞게 배우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와 같이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는 많은 존재들. 그 모든 존재들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종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신의 종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다른 종을 비하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여기, 많은 과학자들이 주변의 비난 속에서 동물들의 감정을 증명하기 위해 싸워오고 있다. 변했다고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의 감정은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있으며 아마도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신경기관을 가졌다거나, 마음을 가진 듯한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믿지 못하겠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끝끝내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 지루한 실험들을 반복하며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어류들의 '어권'을 지키기 위한 법과 관련한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보아 많은 부분이 바뀌어는 중인 것 같다.)

 

프랭크스는 잠시 말없이 사랑하는 개미들만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는 이 개미들이 생각을 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눈썹을 추어올리며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제 호기심을 자극해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마치 생각하는 양 행동하거든요."
의식적으로 제 행동을 반추하는 양. 스스로 무엇을 성취하려는지 알고 있는 양.
"개미가 저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매우 정교하고도 수준 높은 행동에 반드시 생각이나 언어나 마음이론이 필요한 건 아니란 사실입니다."
(중략)
"개미처럼 우리도 머릿속에 알고리즘이 있을 뿐인데, 우린 거기에 좀 그럴싸한 사유를 보태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게 다일 수도 있죠. '난 충분히 생각했다고 생각해.' "(78, 79쪽)

 

동물의 감정에 대한 연구라면, 채식주의, 동물학대 등의 예민한 주제들을 빗겨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많은 대중에게 소개 된다면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를 한다. 대게 이러한 책들은 학문적인 내용만을 서술하기 마련이건만, 이 책에서는 '감정이 있는 이들을 계속 드실 건가요?' 하는 뉘앙스의 글이 살짝 가미되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 글을 엮어낸 저자의 의견(이 책은 학문적이기보다는 약간의 감정적인 방향으로 글을 풀어가는 듯하다. 그런 만큼 적어도 읽기에 까다로운 글은 아니다.)일뿐, 이러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니 그들을 지나치게 옹호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단지,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에 응원을 보낼 뿐이다.

 

세상에 진정한 진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우리가 진리인양 배우고 있는 것들조차도) 계속해서 변하고, 그 끝에는 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호기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가치관을 그냥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부드럽게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어떤 이의 순수한 호기심에는 아무도 사견을 달지 말았으면 좋겠다. 궁금한 사람은 자신의 연구를 하면 그만이고,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헛수고한다며 혀를 차는 정도로 관심을 끄면 그만 아닐까? 어찌 되었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엄청난 인내의 결과물들이며,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결과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일냥'님은?

과학이 품은 신비로움을 사랑하며, 책을 통한 다양하고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을 소망하는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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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만 있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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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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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월요일을 재즈처럼

 

 

 

에릭 홉스봄 |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포노 | 2014

 

음악은 삶이다. 음악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주며 기쁠 때는 기쁜 마음을 고조시키고 슬플 때는 슬픈 마음을 위로하며 나누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각기 음악으로부터 얻는 위안과 즐거움은 같을 것이다.

 

음악의 한 장르로 이해되는 재즈는 발생과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재즈는 “미국 흑인의 민속 음악과 백인 유럽 음악의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이라고 한다. 재즈의 기본이 되는 리듬·프레이징·사운드·블루스 하모니는 아프리카 음악의 감각과 미국 흑인 특유의 음악 감각에서 나오고, 사용되는 악기·멜로디·하모니는 유럽의 전통적인 수법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재즈의 특색으로는 오프 비트의 리듬에서 나온 스윙감(感), 즉흥 연주를 통해 나타난 창조성과 활력, 연주자의 개성을 살린 사운드와 프레이징 3가지를 들 수 있으며 이것들이 유럽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자 구별되는 점이다.

 

흑인 음악을 재즈라 부르게 된 것은 191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래그타임음악 또는 래그라고 불렀다. 재즈는 행사를 위한 행진 음악에서 댄스 음악 그리고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 음악의 괄목할 만한 한 분야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내용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러한 재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하여 그는 직접 재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별하여 책으로 펴냈으니, 그 책이 바로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다. 이 책은 2012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에릭 홉스봄이 공식적으로 허락한 유일한 재즈 원고라고 한다. 이미 그는 재즈 관련 ‘원시적 반란’, ‘재즈 동네’ 저작물의 유통을 금지했으나 이 책은 유일하게 제외했다고 한다.

 

이름난 역사학자가 바라본 재즈. 그에게 재즈는 어떤 음악으로 다가왔을까? 저자는 책을 통해 역사,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시야로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뛰어난 예술적 성취 ‘비범한 음악’ 재즈를 만들어 냈는지를, 그리고 재즈가 하층민들의 음악에서 교양인들의 음악으로 올라서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깊은 애정을 담아 이야기한다.

 

책을 통해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를 소개하는데, 그들의 삶과 재즈의 관계는 물론 이들이 재즈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에릭 홉스봄 그 자신이 얼마나 재즈를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도.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무진기행'님은?

한 명의 저자는 곧 하나의 세상이기에 저자의 눈으로 보는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설렘과 더불어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해줍니다.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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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less River》 - 아름답게 사라지는 전설의 밴드

 

 

 

 

Pink Floyd | 《The Endless River》 | Columbia | 2014

 

기우였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인디펜던트(Independent- 영국의 일간 신문)》가 이 앨범에 별 한 개를 던지고 그 어떤 논리를 펼치든, 나는 이 앨범에 만족한다. 단 한 곡을 뺀 모든 곡이 연주곡이라는 것도 내가 이 앨범을 지지하는 이유다.

 

이 앨범은 6년 전 가을, 세상을 등진 릭 라이트(Richard Wright)에게 바치는 추모 앨범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다. 조금 어색하다. 릭 라이트는 이 앨범에서 추모 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추모하는 주체로서 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많은 이들로부터 욕먹었던 앨범인 《The Division Bell》을 좋아한다. 오르간과 키보드를 넘나들고, 앨범 표지의 구름 위 청년처럼 엠비언스의 끝장을 들려주는 릭의 플레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죽어서도 싸웠다는 신해철처럼 그는 죽어서도 연주하고 있다.

 

 ‘Side 4’라는 과감한 대분류, 그 안에서 또 나누는 섬세한 소분류. 마치 로저 워터스가 주도했던 《The Wall》의 강박감이 떠오른다. 하지만, 'Things Left Unsaid’‘It’s What We Do’로 시작하는 앨범이 《Meddle》과 《Wish You Were Here》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의 깊은 음악적 사유, 바로 그것이다. 다른 멤버에 비해 평가가 덜 되어 온 닉 메이슨(Nick Mason)은 ‘Skins’에서 존재가 새삼 드러나 'Time’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타악을 들려준다. 핑크 플로이드를 잘 모르는 사람도 반길 ‘Anisina’의 감성과 ‘Run Like Hell’이 떠오르는 ‘Allons-Y (1)’, ‘Autumn ’68’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마니아와 대중에게 고루 인정받는 이 밴드가 세상에 다시 한 번 일으킬 또 하나의 반향처럼 느껴진다.

 

셔플 트랙 ‘Surfacing’에서 릭과 데이빗이 주고받는 서사와 ‘Louder Than Words’의 기타 솔로를 모른 척할 수 있는 팬이 과연 있을까. 그럼에도 이 앨범에 등을 돌리겠다면, 나는 딜럭스 에디션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인 ‘Nervana’의 하드한 그루브를 건네고 싶다. 《On An Island》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를 데이빗 길모어의 음악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지에 대해 작은 힌트가 될 곡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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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 | 민음사 | 2009

 

《타임(TIME)》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이런 찬사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면, 어쩌면 《나를 보내지 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영화를 보았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복기이자, 영화와 원작 소설의 차이점을 찾는 오디세이였다고나 할까. 영화 《아일랜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말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여주는 원작 소설의 깊이는 남달랐다.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로 러브스토리와 우정에 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수 작품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주인공 캐시 H.는 클론 즉, 복제인간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론이 등장한 여느 SF 소설과 다른 변별점을 지향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용어라든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려한 서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캐시를 비롯한 루스와 토미가 엮어내는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그들은 영국 모처에 존재한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사육’되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장기를 근원자에게 기증하고 죽어야 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직면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전하고 무병장수 영생의 시기가 도래해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최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만연한 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영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증자인 루스와 토미를 철저하게 타자로 분리한다. 인간은 클론의 운명을 몰라도 된다는 식의 사고야말로 끔찍하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17쪽)

 

헤일셤에서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한 캐시와 루스, 토미는 여느 인간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16 세가 되어 헤일셤을 떠나 코티지에 정착한 그들은 비로소 세상과 접촉한다. 고립된 헤일셤 출신들은 다른 기증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성인이 되기 전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민과 갈등 또한 치열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증폭되고, 자신의 삶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설계되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동안, 캐시와 루스, 토미는 왜 영화 < 아일랜드 >에 나오는 클론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옥죄는 운명을 피하려면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나. 성장, 잠깐의 병간호 생활 그리고 기증과 종료(completion)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고리는 인간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들의 자유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386쪽)

 

영화는 확실히 소설과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중요한 에피소드의 핵심 위주로 빠르게 진행된다. 노퍼크 여행에서 따로 남겨진 캐시와 토미가 절벽의 벤치로 뛰어가는 장면과 뭍 위에 올라온 배를 찾아가는 미장센은 탁월했다. 소설에서도 역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는 노래, 주디 브릿지워터(judy bridgewater)의 ‘Never Let Me Go’의 애절함도 영화가 잘 담아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소설을 권하고 싶다. 독서에 가속도 붙을 뿐 아니라, 영화에서 미진하게 다룬 부분도 충분히 보충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SF 클론 소설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기대했다면,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모든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한 방도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클론,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한다. 그래서였을까, 에밀리 선생님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사육’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너무 불편했다. 가끔 진실을 관통하는 직언은 그렇게 육중한 무게로 영혼을 타격하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에 나온 캐시의 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근원자의 삶이 클론인 캐시의 삶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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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양띠 해 세상

 

 

 

미리 보는 양띠 해 세상

 

겨우 다 왔습니다. 2014년 말입니다. 한 달 남짓이면 새해입니다. 2015년은 을미년 乙未年 청양 띠의 해입니다. 아직 12월이 채 안 됐건만, 거리 곳곳의 풍경을 통해 새해가 머지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점만 하여도 일찍이 다이어리를 선보였고요. 2015년 트렌드를 예측한 책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습니다. 아직 낯선 숫자인 2015는 책 언저리에 빼꼼하게 자리 잡았죠.

 

내년도 트렌드 분석의 서문을 연 책은 《트렌드 코리아 2015》입니다. 김난도 교수가 집필에 참여한 이 책은 11월 둘째 주 출간 이후,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에 안착하였습니다. 매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한 해의 흐름을 정리하고 내년을 짐작했던 독자라면 더없이 반가운 신간 중 하나일 테죠. 신간 소식에 ‘벌써 이 책이?’라는 놀라움도 느껴보고 진짜 새해가 다가오는구나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김난도 교수는 책 서문을 빌어 내년의 큰 흐름을 아래와 같이 그려보았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거대한 메가트렌드의 물결에 획일적으로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두 마리 양을 세듯 작은 일상에서 평화롭게 만족을 구하는 이미지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쉽게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와중에 소소하지만 풍요한 감각에 탐닉하거나, 평범함으로 사치하고, 좁은 골목길의 가게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하고,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덤’에 영향을 받으며, 내밀한 일상의 경험을 SNS로 자랑하면서, 가볍게 치고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5》, 미래의 창, 2014)

 

뒤이어 선보인 《모바일 트렌드 2015》《2015 한국을 뒤흔들 12가지 트렌드》《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2015 20대 트렌드 리포트》 또한 모두 저마다의 관점으로 내년의 흐름을 담아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자면, 입을 모아 예측한 부분으로는 ‘옴니채널의 도래’입니다. 온라인과 모바일, 오프라인과 TV 홈쇼핑할 것 없이 모든 유통 채널의 경계를 허물며, 이들 유통망이 하나의 ‘축’을 이루게 해 소비자 중심의 편리한 쇼핑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강렬한 문구를 앞세운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은 ‘가면’을 부각한 이유로 이러한 설명을 곁들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많은 가면을 써 왔다. 가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이제 그만 가면을 벗고자 하며, 그렇다고 속살을 다 보일 순 없으니 새로운 가면을 찾는다.’라고요. 덧붙여 2015년은 이 같은 일상의 숱한 가면과 가식, 위선에 얽힌 욕망과 소비, 사회 문화적 변화가 크게 부각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다 보니, 이 같은 ‘트렌드 예측서’는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이드’격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현대인의 ‘필수품’ 혹은 ‘필독서’처럼 인식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지적 호기심과 재미 그 이상으로, 불안함 때문에 강박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예측서 중 하나를 선택하기 전,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듯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2015년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긍정적인 요소들이 시너지를 발휘해서 나라 경제가 다시 제 궤도를 찾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5》, 미래의 창, 2014)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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