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 - 우리 모두의 슬픈 월리스 라인


 

 

 

김인숙 | <미칠 수 있겠니> | 한겨레출판 | 2011

 

자꾸 붕붕 떠다니는 어떤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도 역시 모른다. <미칠 수 있겠니>라는 제목과 화사한 표지가 주는 소설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고 묻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문득 깨달은 건 나는 삶에 미치지도 않았다는 것과 미칠 수도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이었다.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만 삶에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주인공 진이의 삶에 동조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채로 묵묵하게 읽어 내렸다. 절반 남짓. 

 

그럼에도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공허한가. 내가 그러한지 소설이 그러한지 분간이 안 됐다. 그럼에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애처로움이 솟아올랐다. 딱히 슬프지 않은데 꾸역꾸역 삼켜지는 삶이 의아해서 울고 싶었다. 울지 않았다. 울어서는 안 되었다. 진이의 삶은 내 삶이 아니므로. 그녀의 사랑보다 내 사랑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보다 나을 수 없었다. 잘 넘어가는 페이지를 부러 천천히 넘기며 오래 시간을 끌었다. 생각했다. 삶이 마음대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걸. 하물며 강물은 자유로워 보이나 가는 길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러웠다. 한낱 강물이, 부러웠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둘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런 이야기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두근거리는 가슴, 은밀한 떨림과 의심, 그리고 망설임과 그 망설임을 한꺼번에 압도해버리는, 그 무엇도 확실하다고 할 수 없으나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결정적이라고 믿고 싶은, 그냥 이거, 바로 이거라고 말하고 싶은... 그 모든 불분명한 감정과 추상어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났다.' 혹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들, 가족에 대한 치밀한 탐색, 유년기의 장황한 추억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습관들, 같이 영화 보기, 각자 선물 사기,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 떠들기... 그리고 마침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 상처를 찾아내기, 상처를 만들어내기... 제 성한 살을 뜯어서라도 상처를 만들어 그 안에 그를 들여놓기... 그리고 마침내 운명이라고 믿어버리기” (145-146쪽) 

 

내가 알고 있는 시작은 무조건 설레고 아름다운 것. 남자를 보낼 때 여자는 이렇게 되어버릴 줄 몰랐을 것이다. 그를 찾아 나섰을 때 그의 새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의 당당함에 분해 그 여자를 찌르고, 찔렀는데 죽었는지 어떤지 몰라 섬을 배회하다 현지 택시기사 겸 가이드인 외국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될 줄을, 진은 당연히 몰랐다. 하필이면 관광 중 지진이 나서 눈앞에서 폐허가 된 건물 잔해와 비명을 지르는 사람과 비명조차 지를 줄 모르는 사람들 틈에 멍하니 쓰러질 줄은, 어떤 연유로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이 미쳐야만 살 수 있는 거였나. 진의 과거와 미래를 온전히 짐작할 수 없다. 소설은 잠이 드는 와중에만 읽어 흐릿하고 고요하면서도 처절하게 읽혔다. 마치 현지에 떨어져 길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명확한 언어로 쓰인 소설인데도 모호하기만 하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니까 <미칠 수 있겠니>는 읽고 있되 읽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름이 같아서 운명이라 믿었던 두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가 일찍 생기지 않았으므로 근사한 여행을 반복할 수 있어 섬 여기저기를 드나들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삶이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외아들인 남자는 이름이 같은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청혼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언젠가 다시 한 번 그렇게 울 때, 네가 내 손을 잡아주고 있으면 돼.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148쪽) 

 

연애를 시작했으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아야 삶의 이야기는 완성된다. 둘 중 하나라도 룰을 어기면 잘 먹고 잘 사는 삶의 규칙성은 어김없이 깨지는 법. 여자 진을 남자 진이 배신한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 진을 찾으러 갔다가 오래전 그곳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어주던 다른 언어를 쓰는 여자의 달라진 표정을 확인하고 그녀는 남편의 배신을 직감한다. 그래도 사랑이다. 남자가 살기 위해 섬으로 떠나고 싶어 한 것도, 남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여자도. 불안을 직감하면서도 남자를 멈추게 하지 못했던 여자도, 여자에게 함께 가자고 하면서도 여자를 떼어놓고서라도 가고 싶어 했던 남자도. 그들은 사랑이다. 그런 남자와 여자의 상태는 월리스 라인이다. 

 

“이쪽과 저쪽을 선명하게 가르는, 선명하게 갈라, 아무것도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월리스 라인, 대륙이동설, 판구조론! 단어들이 어지러웠다. 그 어지러운 단어들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그녀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과 기억해야 할 것 사이의 금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녀는 결코 그 금을 건너지 못할 것이었다.” (140쪽) 

 

남자가 떠나겠다 하면 나는 어떡해야 하나. 그제서야 감정이입이 된다. 남자가 섬으로 가자 하면 나를 따라갈 것이나 남자가 가자하는 곳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니라면 나는 남자를 혼자 보내야 한다. 불행이 시작될까 두려우면서도 그를 결코 붙잡아 앉히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그러할 테니까. 그래서 ‘함께’라는 것은 중요한 말이다. 여자는 수없이 돌이켜 생각하고 후회한다. 남자를 혼자 보낸 것이 잘못된 시작이었나 하면서. 

 

꿈을 꾼다고 해서 누구나 그 꿈을 이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진의 꿈은 단지 소망에 그치지 않았다. 진이 기를 쓰고 말렸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진은 유진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현지 공장에 채용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갖고 들어온 날, 그 설레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그가 쏟아낸 계획과 가능성들, 낭만적인 꿈과 무수히 펼쳐지던 소망들, 그것은 거의 신대륙의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는 삼십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어미의 구멍이 아니라 자신의 구멍을 찢고 나갈 태세였다. 그리하여 그는 오래전 수줍은 목소리로 청혼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힘차고도 우렁찬 목소리로 진에게 말했던 것이다. 

 

같이 가는 거지?

 

그리고 진의 침묵... 침묵 끝의 고작 사랑한다는 말... 달콤했을까. 따듯했을까. 혹은 간절했을까.” (152-153쪽) 

 

진은 어떻게, 이야나는 어떻게, 또 다른 남자 진은 어떻게 될지, 미래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미쳐야만 살 수 있는 삶은,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사랑은, 어려웠다. 낯설었다. 완성을 시킬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내 손안에서 완성하고 싶은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이다. 그래도 살 것이다. 계획표대로 흘러가는 게 삶이 아니고, 약속한다 해서 영원한 사랑이 완성되는 게 아니므로. 

 

내가 주말에 서울에 간 이유는 결혼식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모두는 행복하게만 보였다. 마치 영원히 지속될 행복을 나만 빼놓고 획득한 듯 보였다.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도 모두 그런 것처럼 행동한다. 월리스 라인을 만나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린 7년간 수없이 많이 크고 작은 약속들을 했는데 월리스 라인이 우리에게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가 떠날 태세를 하면 나는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또한 그렇듯.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이유나 어떤 핑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 떨어져 살 수도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그때 진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영화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 대사가 비록 변해버린 사랑 앞에서 외치는 지나간 사랑의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얼마나 가벼운가. 그것이 전 생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거라고 믿어도, 서로를 못 견딜 지경이 되면 결국 밀어 올려지고, 마침내 갈라지는 것이다.” (159쪽) 

 

우리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그것. 아름다운 이유는 불안해서. 아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삶은 비극적이고 아름답다. 나는 아무래도 비극 앞에서만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러브 발라드」가 아름다운 선율로 이어폰을 통해 귀로 흘러들었다. 순간 나는 오로지 지금만을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약속은 오늘까지만. 약속의 유효기간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 월리스 라인이 찾아오지 않을 때까지만. 나는 또한 그는 기꺼이 함께 또는 각자. 의연히 대처할 수 있을까. 바닥을 보이지 않고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남자 진과 여자 진 그리고 이야나와 만의 미래 또 이름 모를 이국소녀의 죽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계획 없이, 계획 따위에 구속되지 않은 채로 이렇게 오롯이, 또는 우뚝. 의연하고도 처연하게. 문득 희열 같은 것이 차올랐다. 이것이 지나면 어쩐지 울음이 찾아올 것만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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