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 하비에르 사발라 | <필경사 바틀비> | 문학동네 | 2011

 

 

 

빽빽한 건물들로 빈틈없이 채워진 월 스트리트. 그 수많은 건물 중 하나에 아주 작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한 인간이 있다.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25쪽) 모습의 ‘필경사 바틀비’. 그는 우선,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인을 갖고” “편안한 은신처가 주는 유유(悠悠)한 평화로움 속에서 부자들의 채권이나 저당권, 등기필증을 다루며 안락하게 살”고 있는 변호사에게 고용된 피고용인이다. (8-9쪽)

 

그 외에 특이할 만한 사항이라면 법률문서를 필사하는 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그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할 뿐, 말도 행동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 그를 고용한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바틀비의 그런 모습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피고용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근면하게 일하던 바틀비가 필경사라면 반드시 해야 할 검증 업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일을 지시한 변호사는 당연히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 즉 차분하고 태연하며 ‘정상적으로 인간다운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틀비를 보며 변호사 또한 정상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파업을 선언한 피고용인에 대한 ‘정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정말 이상한 일이야”라고 생각할 뿐.

 

하지만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다 나중에는 필사 일까지 거부하게 되자 이런 상황은 달라진다. 당혹과 연민 등의 수많은 감정을 오고가며 지시와 질문, 설득과 포기를 반복하던 변호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는 그를 남겨두고 사무실을 이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월 스트리트의 건물 속, 아주 작은 공간을 점유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용 관계, 사적 소유 등을 거부하던 바틀비는 결국 구치소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조차 아무 것도 먹지 ‘않는 편을 택’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바틀비의 거부 선언은 <필경사 바틀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반복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작가는 그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 편을 택’한 것 같다. 그러므로 이를 읽는 독자들은 당연히 그를 고용한 변호사처럼 당황하고, 연민을 느끼는가 하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바틀비의 행동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왜? 라는 질문은 다시 독자 자신으로 돌아와 ‘왜 바틀비의 행동이 불가해한 것인지, 당연한 것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관례와 상식을 벗어난 바틀비를 통해, 관례와 상식에 갇혀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모두를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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