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껴안고> - 패전이 가져온 일본의 현주소와 그 진실

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민음사, 2009 

 


많은 개인들이 전쟁,폭력,강간, 정신적 가해 등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심각한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의사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요인, 즉 트라우마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인간의 뇌구조로 인해 완전치유는 불가하더라도 효과적인 트라우마 희석으로 그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현실과의 조화를 통해 좀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비단 개인뿐 아니라 국가 내지는 민족적 형태로 확대되기도 한다. 우리 한민족에게 다름 아닌 일본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감정기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기간내내 민족 개개인에게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확대 재생산 되면서 민족 전체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발현시키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가까우면서도 멀기만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는 일본의 패망 이후 5년 8개월이라는 미군정기간 동안 일본과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고찰한 책이다. 우리에게 일본 특히 1945년전후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거의 1차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강력한 트라우마를 제공한 원인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일본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존 다우어는 이 시기의 일본과 일본인의 심리상태를 고찰하므로써 지금의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시금석을 제공하고 있다. 얼마전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권이 자리잡은 일본은 패전의 아픔(?)을 딛고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극우세력들의 망언과 전범을 위한 신사참배 및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통해서 주변 당사자국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일본과 일본인의 근저에 깔려 있는 심리상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에게는 상당한 숙제거리 중에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지금의 일본의 상태를 100%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군정의 점령 하에 놓인 일본의 상태와 일본인들의 심리상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가능 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보기엔 다소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시각으로 패망 이후 일본을 바라보고 있지만 학자다운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상 그대로를 기술하고 있어 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쇼와천황(히로이토)의 항복선언으로 일본, 적어도 일반대중은 한밤중에 난리를 맞은 격이었다. 극도로 통제된 사회에서도 몇몇 루트를 통한 불리한 전황의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동안 천황을 비롯한 군국주의자들과 초국가주의자들의 오래된 교육과 홍보에 의해 도저히 질 수 없는 전쟁에서 패망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미군의 점령이 현실화 되면서(이때 미군은 19세기 페리제독을 앞세워 강제로 개방을 할 당시 게양했던 성조기를 다시 달고서 또 다시 일본땅에 발을 딛게 된다) 일본인의 삶은 표현 그대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망이나 허탈의 의미하는 '교다쓰'라는 말이 전후 일본 사회전체를 대변하는 신조어가 되어버렸다. 이전까지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야마토신민이라는 우월성을 입증(?)받은 민족이 하루 아침에 4류국민으로 전략함으로써 교다쓰의 강도는 실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능가했던 것이다. 육체적인 피로감보다 패망 이후 밀려오는 심리적 허탈과 절망은 일본사회구조를 송두리채 변신시키기도 남을 만큼 엄청난 것이였다. 이러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대해서 일본군국주의하에서 고통받은 민족이나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시되는 시각이지만 당시 일본인들은 분명 그랬다는 것이다.

맥아더를 수장으로 하는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일본은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연합국의 좌장인 미국의 점령으로 일본은 수술대에 오르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군정의 정책에 따라 사회구조를 재편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미군와 함께 온 민주주의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일반 대중 속으로 깊고 넓게 퍼지면서 동시에 왜곡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겪어던 비뚤어진 민주주의 산출물들을 고스란히 일본대중들도 겪었던 것이다. 식민지로부터의 물량공급이 차단되면서 일본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자체였고 일반대중은 그저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익히 겪었던 바 있던 이데올로기의 혼란은 패망이라는 좌절과 함께 이들을 강타했고 나라의 근간이라고 하는 헌법의 제정 마저도 그들의 손이 아닌 미군정 하급관리들의 손에 의해 명시되는 치욕을 겪게 된다. 물론 연합국측에서 보면 당연시 되는 방법이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오히려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행착오였고 이러한 시행착오가 불씨를 남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군정은 한반도의 남쪽에서와 같이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역활을 수행하지 못했다. 일본에 대한 전문가 없이 일본을 통치했던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정작 도쿄전범재판은 피해당사자인 조선이나 인도네시아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를 배제한 서구일색으로 처리하여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한 꼴이 되어버렸다. 또한 맥아더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천황제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역사적 단절이 아닌 재연장시키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의 재등장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근원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시기 미군정과 일본 극우세력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민의식의 정점에 서있던 천황을 존속시키면서 왜곡된 민주주의의 도입자체가 그 태생적 한계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전범재판을 통해서 면죄부를 획득한 구군국주의자들의 정계 복귀(미군정의 암묵적 동의하에)와 히로히토의 건제는 패망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스틱스의 강속으로 밀어버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부적인 요인과 일본인들이 말하는 신의 선물인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행운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군정은 일본경제에 대해서 관심 자체가 없는 그저 뿌린대로 거둔다는 방관자적 입장을 견지했으나 한국전쟁은 이런 방침을 일거에 바꿔 버린 결과가 돼버렸다. 미군정은 그동안의 점령을 통해서 파악한 일본의 최대강점인 집중과 관료주의에 의한 경영방식을 통해 한국전쟁을 지원하게 되면서 일본은 하루 아침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전범재판을 통해 도조 히데키등의 A급전범을 비롯한 몇몇 군국주의자 및 초국가주의자들을 처리하므로써 더 이상 국민전부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면죄부를 받은 상태에서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으로 일본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물론 일본인 전체가 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진정으로 전쟁에 대한 책임과 황군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해외에서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를 통해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제도의 근본적인 변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심리는 단지 신에서 인간으로 옷만 갈아입은 천황을 위주로 정말 새로운 일본을 향해 질주했던 것이다. 패망으로 받은 교다쓰의 상태는 너무나 쉽게 마치 어느날 갑자기 피었다고 져버리는 벚꽃처럼 정말 허망하게 잊혀져 갔던 것이다.

대동아공영을 내세워 조선,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편입하면서 시작된 군국주의의 망령은 지금도 그 피해 당사국들에겐 너무나 큰 결코 완치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일본 역시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임에는 틀림없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고 해외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인명들을 생각하면 가해자나 피해자를 떠나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고 상고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그 첨경인 것이다. 이런면에서 보는 패망 이후 일본 점령정책과 사회변화상은 아주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과 패전은 일본인이 '인간성,인격,개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며,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군국주의나 초국가주의의 도래를 막지 못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쟁 책임은 일본인 전체가 져야 하며 국민은 세계를 향해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의 이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큰 것이다.

<패배를 껴안고>는 피해당사자국들이 보기엔 일종의 일본 껴안기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은 패망 이후 일본의 변화과정을 미군정과의 관계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는 일본 국내에 한정된 내용들이다. 패망을 받은 상처와 개인들의 산산조각난 꿈을 통해서 결국 인류가 껴안고 가야할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껴안기는 결코 일방적인 껴안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성숙된 일본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외 당사자국들의 진심어린 상호 껴안기를 통해서 좀더 성숙하고 발전된 미래가 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잡이'님은?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는 불혹의 뜻만큼 진실한 독서는 40부터라고 생각하기에 요즘 부쩍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는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없는 소통을 책과의 만남에서 찾고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저 책을 읽어나갈 뿐이다. 행복이 동사이길 바라듯이 독서 또한 타인과의 소통행위로 인식하면서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572 573 574 575 576 577 578 579 580 ··· 75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