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 의뭉스런 언어, '멀쩡함'을 희망의 언어로!

애덤필립스,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알마, 2008


참으로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멀쩡함(sanity, sane)’이란 어휘에 시원찮은 기운을 느끼는 것은 왜지? “멀쩡한 녀석이 왜 그래?” 도대체 어떤 녀석이면 멀쩡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이 표현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용되었던 기억도 없는 듯하다. 무언가 바르지 못한, 일반의 상식을 가진 이들이 인정하기에 거북한 행위이기에 그 기준으로서 갖다 붙이는 애매한 관습적 언어 같다. 그래서 저자가, 이렇듯 모호하기 짝이 없는 ‘멀쩡함’이란 언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게 보인다. 기실 이 두루뭉술하고 누구도 정의내리기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기괴한 어휘가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일상에서 사용되는 현상을 보면, 분명 우리들(인간)의 내면에 지지하고자 하는 무엇이 틀림없이 존재하리라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멀쩡한 상황을 벗어난 상태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멀쩡하지 못한 녀석이면 어떤 녀석일까? 바로 미친 녀석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멀쩡하지 않은 것은 미치거나 미치고 있는 중이란 이야기다. 저자의 화두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치는 것, ‘광기’는 멀쩡한 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무수한 도덕적 가치기준을 비롯해서 매 상황마다의 실로 다양한 언어와 행위에 대해 어디까지가 멀쩡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미친 것인가? 우린 이러한 상황마다에 멀쩡함의 정확한 기준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인가? 실로 애매하고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이 저술은 아마도 ‘멀쩡함’에 대한 인류 최초의 심도 있는 저작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다는 철학자들도, 언어의 마술사라는 문인들도, 정신의학, 심리학에서도, 인류학에서도, 심지어 자연과학에서도 이 멀쩡함이란 말짱한 단어에 대해 정의를 회피해 온듯하다. 그렇다면 이 언어가 왜 이렇게도 기피되어 온 것일까? 사실 존재감도 없어 보이고 밋밋하며, 고작 흐리멍덩한 기준에 부정적이기만 해서 무언가 불유쾌한 상황에나 사용됨직한 언어에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기피되어온 단어의 그 음험한 본질을 찾는 여정이 그 어떤 미지세계의 모험 못지않게 흥분을 자아내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 조마조마한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 것은 당연하기 까지 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비로소 처음 등장한 멀쩡함(sanity)이란 단어의 사용을 필두로 레잉, 키르케고르(Kierkegaard) 등의 시선을 통해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의뭉스러운” 이 어휘를 해부한다.

이 저술이 관통하고자 하는 본질의 단서가 되는 멀쩡함에 대한 정의로, “멀쩡함을 긍정적으로는 자신의 본성(자신의 과거, 욕망, 두려움)에 현실적인 두려움을 지닌 상태, 부정적으로는 자아 가운데 거짓으로 적응한 유순한 부분을 가리려고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는 더불어 전개되는 ‘광기’와 대응하여 인간내면의 근원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여기에 따르면 “조화로운 조직,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는 상태인” 멀쩡함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는 ‘책략주머니(성격)’와 같다는 암시” 로부터 “사람들이 멀쩡함을 언급하거나 요구할 때는 대개 뭔가가 사라지지 직전이다.”라는 성찰에 동의하게 된다.

이처럼 무언가 진실에서 이탈하는 자신을 은폐하는 수단으로서의 멀쩡함에는 인습에서 벗어나는 것, 즉 광기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결국 “스스로 배반해야만 역설적으로 살아남아 번식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으로서 적절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미친 사람은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광기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영적인 영양분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여기는 모순처럼 보이는 진실을 대하게된다.

멀쩡함에 대한 문화사, 철학, 의학, 문학을 망라하는 이 화려한 저술의 백미(白眉)인 현대의 인간들을 향한 욕망 속에 은폐된 광기와 멀쩡함의 해부는 유아 발달 과정을 통한 인간의 시원적 본성의 탐구를 기초로 성욕에 대해서, 그리고 돈(Money)에 대한 욕망의 뿌리에 대해서 명쾌한 통찰력을 과시한다. 

“아기의 압도적이며 가장 놀라운 점인 신체적 욕구의 즉각적 만족”이란 인내의 불비(不備)에서, 멀쩡함은 바로 창조적인 인내 또는 인내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능력임을 간파하고, 발달을 위한 투쟁, 즉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선(善)임을 도출한다. 급기야는 영국의 정신분석가 ‘에더’의 “우리는 미친 상태로 태어나 양심을 발전시키고, 불행해진다. 그러고는 죽는다.”를 빌어 “멀쩡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며, 사람마다 습득하는 정도가 다름”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어른이 되는, 즉 “인간이 되는 것에 뭔가 재앙과도 같은 일면이 있으며,”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유기체로서 지닌 약점 또는 정치적 동물로서 드러내는 잔혹한 부당함, 천연자원의 희소성, 탐욕스런 천연자원 약탈, 낙원에서 쫓겨난 것, 오만함 등. ” 그리고 이러한 재앙들은 우리의 욕망과 연관되어있으며,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여되어 있는 것을 원하고, 그것에 휘둘리는 욕망.”과의 갈등과 조화로 파악된다.

그래서 성(性)행동의 ‘비인간화’라는 우리들의 잠재하는 의식을 통해 일탈적이고 사뭇 이기적이기까지한 성행위(sex)에 대한 성장과정 속 갈등에서 조정되는 멀쩡함과 광기의 타협을 본다. 상대의 동의도 받지 않고 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미쳤다는 말, 즉 광기라는 단어는 우리의 혐오감을 정당화해주는 에두름 일 뿐이다. 성장이라는 과정에서 인간이 필히 거치는 ‘사춘기’는 바로 이러한 광기와의 첫 대면이며, 여기서 이 광기의 경험을 이기고 살아남는 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멀쩡함인 것이다.

한편, 멀쩡함은 모든 것을 똑같이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산업화시대, 자본주의의 본격화에 따라 이 멀쩡함이란 것은 새로움의 적이 되었고 곧, 지혜의 반명제가 되어버렸다. 이제 멀쩡함을 내던지고 광기를 쫓아야 하지만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그래야만 할 멀쩡함, 도덕율을 던질 수는 없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멀쩡함, 이용할 수 있는 멀쩡함은 ‘자기기만적 멀쩡함’ 뿐 이 되었다. “현대의 자아, 즉 두려움보다는 회피 쪽에 맞추어져 있는 자아의 기만 책략은 결국 초조, 무절제, 만족할 줄 모르는 성공 욕구를 낳는다. ”  이 결과는 철학자 노먼 브라운 (Norman O. Brown)이 그의 저서 『죽음에 맞선 삶(Life against Death)』에 피력한 통찰력이 대변한다.

“돈을 향한 욕망이 진정한 인간적 욕구의 자리를 모두 차지한다. 그렇게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부의 축적이 사실은 인간 본성을 가난하게 만들고, ~ 中略 ~ 그 결과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구체적인 전체를 호모에코노미쿠스라는 추상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인간화된 본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감각기관, 관능, 쾌락 원칙과의 접점을 잃어버린다. 이처럼 비인간화된 인간 본성은 비인간적인 의식을 낳는데, 이 의식이 유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 즉 근면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경제적이고, 산문적인 정신뿐이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너무나 어리석고 일방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는 물건, 쓸모 있는 물건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20세기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인간이 안전해 질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불렀던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들의 공동묘지”에 살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의 규범(도덕적 기준)이 되는 멀쩡함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적으로 설계된 ‘훌륭한 삶’, 즉 사람들이 지향해야 하는 모습, 원해야 하는 것,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가장 호전적이고 강압적인 청사진이 낳은 끔직한 결과와 다름이 없다. “이른바 정신건강을 묘사하는 단어들, 멀쩡한 사람과 미친 사람을 구분하는 단어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무슨 이유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나서서 말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입을 막고 쫓아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상징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으로 정신건강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도덕률이 된다.”

도덕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어이다. 이 순간에 멀쩡함이 우리를 안심시키는 그림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씩이나마 자신의 본성과 하나가 되거나 숭고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멀쩡함은 조화 또는 갈등이 낳은 최고의 수확물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 저술은 ‘멀쩡함’이란 이 구태의연해 보이는 단어에서 시작된 해박하게 망라된 지식과, 그 지향하는 오늘의 인간본성에 대한 자각과 도덕률, 그리고 권력, 부(Money), 섹스 등 욕망을 대신하는 ‘좋은 삶’의 주요 요소가 되어줄 현실적 희망, 종의 번영에 영향을 주는 삶의 정의 안으로 멀쩡함을 끌어들인 지성 넘치는 역작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필리아'은?
세상의 위협이나 추함에서 격리되어 책에 몰입하는 순간을 커다란 위안인 동시에 평온의 시간으로 여기며, 자기격려와 스스로를 고무하는데 독서만큼 유익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 이젠 거의 꺾을 수 없는 신념이 되어버린, 그러나 관계의 매혹을 저버리지 못하는 그런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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