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집시의 시간>, UNIVERSAL, 2009
개인적으로 기타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르는 스페니시 기타라고 생각한다. 기타 한 대와 플라멩고 가수 한 명만으로 무대를 채울 수 있는 장르는 많지 않다. 물론 포크도 감동을 가져다 주지만, 기타 한 대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가 구현되는 장르가 바로 스페니시 기타가 아닐까 싶다. 현 하나하나가 튕겨내는 불꽃, 그리고 명창을 연상케 하는 플라멩고 가수의 짱짱한 목소리. 저절로 테킬라 한 잔이 생각난다.
박주원은 그런 Fireworks의 기대를 슬며시 비켜간다. 첫 번째 트랙 「집시의 시간」을 플레이하면 맑고 차가울 만큼 명징한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라 벤타나와의 6분짜리 협연 「Hide & Seek」은 박주원의 깔끔한 플레이와 라 벤타나의 부드러운 곡 해석이 어우러진 넘버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기타와 후광처럼 드리워지는 아코디언과 피아노의 앙상블은 한마디로 멋지다. 재즈 페스티발에서 이들의 협연을 기대해볼 만하다.
피아졸라의 넘버 「Oblivion」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기타 독주를 귓가에 바짝 댄 녹음으로 뒷받침해준다. 「Por Una Cabeza」는 아코디언이 상투적인 멜로디를 소화하고 기타가 따라가는 편곡으로 재탄생했지만, 아무래도 까를로스 가르델의 진부하면서도 기름기 적당한 원곡이 더 재미있다. 탱고 넘버 중 굳이 이 곡을 고른 이유는 아무래도 대중적인 선택 때문이 아니었을까. 몇 백 개의 리메이크 버전이 존재하는 「Por Una Cabeza」를 여기서 다시 연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말로가 피처링한 「Made in France」은 스캣과 기타가 어울린 멋진 곡이다. 스캣을 좀 더 살려 기타와 대결을 벌이는 구도로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 들을 때에는 특별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한 번 듣고 나면 100미터 밖에서 들어도 ‘앗 말로다’하고 알아듣게 된다. 정엽과 전제덕도 피처링했지만 유독 귀에 남는 사람은 말로다.
이 앨범의 장점 중 하나는 깨끗한 음질이다. 녹음이 너무 잘 되어서 기타에 귀를 바짝 댄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런 깨끗함이 스페니시와 집시 기타를 표방한 앨범 컨셉과 어긋난다는 게 문제다. 클래식이나 재즈를 들고 나왔다면 깔끔한 녹음이 어울리겠지만, 귓가에 대고 거슬릴 정도로 깨끗하게 울려 퍼지는 스페니시 기타는 왠지 낯설고 어색하다.
마지막 트랙 「J's Theme」를 듣고 나면 정작 박주원이 가장 하고 싶은 건 클래식 기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스페니시 기타를 치는 데 필요한 테크닉과 해석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모자란 건 감성이다. 하나의 장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 장르를 형성시킨 시대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주원의 앨범에서 들리는 것은 스페니시 기타의 테크닉이되, 녹아나는 감정의 흐름이 아니다. 스페니시 기타의 테크닉으로 표현한 클래식 기타의 감수성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어쨌든 관능적인 폭발력을 보여주기엔 박주원은 너무 깨끗한 감수성을 지녔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오필리어'님은?
주변인도 본인도 실명보다 ‘오필리어’라는 닉네임이 편하다. 서울 변두리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동거중이며, 아르헨티나 탱고를 연마한 지 만 4년이 넘었다. 마실 커피는 직접 로스팅한 뒤 추출해 마시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몸은 편하게 마음은 무겁게' 지내는 걸 좋아한다. 근대 문인의 지식축적 과정으로 학위논문에 몰두하려 애쓰고 있으나 트위터에 엄청난 방해를 받고 있다. 주소는 http://twitter.com/ophellia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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