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사랑들』 -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밀란 쿤데라 | 『우스운 사랑들』 | 민음사 | 2013


우리가 위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또는 쇼팽과 조르주 상드 이들의 사랑에 왜 감동하는 것일까? 거세된 아벨라르 곁에서 충실하게 곁을 지켰던 엘로이즈와 정신적 관계를 추구했던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특별한 그 무엇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일까? 처음엔 달콤한 꿈처럼 느껴지던 감정들이 점점 더 건조한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푸석한 감정으로 바뀌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는 사랑에 관한 문구, 문장, 해석이 무수히 존재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면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할 때 연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그림자를 향해 몸을 돌리지만 서로 껴안으면서 그림자를 뭉개버린다."고 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그 감정의 토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감정을 더 충실하게 알기 위해 상대방을 껴안고 감정이 포개어지는 순간, 그들 각자의 그림자는 형체가 없어져 누가 누구의 그림자인 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사랑의 아이러니'다.

밀란 쿤데라의 『우스운 사랑들』은 일곱 개의 단편집이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고 사랑의 감정에 진실하지 못하기에 우스운 사랑이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에서는 스리보비체라는 교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투레츠키라는 사람이 쓴 논문의 비평을 써주기로 약속하고 점차 미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인 클라라를 끌어들인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자 그는 클라라를 이용해 자신의 복잡한 현실을 피하려 한다. 자신에게 놓인 불리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스리보비체는 클라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다. 클라라는 오히려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으로 스리보비체를 떠나려 한다. 스리보비체의 모습은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가느라 정작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대변한다. 제목처럼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씁쓸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예측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는 「에드바르트와 하느님」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자신이 욕망하는 감정을 겪고 난 후 뜨거웠던 사랑의 감정이 식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에드바르트는 여자 친구인 알리체의 육체를 욕망하지만 그녀는 크리스천으로 독실한 신자다. 알리체는 믿음이 없는 에드바르트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겠다고 선언하면서 에드바르트는 거짓으로 하나님을 믿는 척해야 한다. 에드바르트는 교장과의 면담 이후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자신의 불온한 정신을 들키고, 교사 직책에 불안을 느끼게 되자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한다. 결국 에드바르트는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한 교장과의 갈등, 거짓으로 둘러싸여 불안의 요소를 만들어낸 모든 인간관계가 단조롭고 의미 없는 기호들이라고 생각한다. 알리체를 사랑했던 감정까지 혼란스러워지자 그는 진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에드바르트를 보면서 현대인들의 낯익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는 믿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과도한 믿음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인생에서 함정이 될 수 있고, 배교자나 이교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히치 하이킹 게임」은 단순한 게임에서 시작되었던 서투른 사랑놀이가 죽음의 계약서와 같이 서로를 파멸시켜 간다는 내용이다. 순수했던 두 남녀의 단순한 게임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쌓여지지만, 동시에 모방된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고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의 감정이 사람을 가장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랑의 폭력은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하다. 세상에는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고 또 사랑만큼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사랑에는 존재하고, 우리들의 사랑에는 없는 것이 상대방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의 사랑에 진실한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과 연결돼 있다. 인간관계의 무대 위에 서다 보면, 때때로 눈이 가려진 채 연기를 하거나, 누군가가 무대의 배경과 장치를 바꿨는데도 모르고 계속 연기를 하다가 실수와 오해를 사기도 한다. 모든 감각과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러한 실수와 오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실수와 오해가 없었다 해도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이기적인 감정은 늘 이타적인 마음을 이긴다. 상대방 본연의 색이 드러날 수 있도록, 또는 나와 상대방의 그림자가 뭉개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순간, 자신의 언어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오색 무지개 색깔 같았던 사랑의 감정이 단일한 회색 그림자가 되는 것을 목격하고 만다. 그러한 상황들은 "우리는 모든 색깔을 다 보여줄 수 있지만 아무리 변화무쌍한 카멜레온도 흰색을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도르비이의 말처럼, 수많은 색 중에서 정작 흰색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방이 가진 본연의 색깔을 가끔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뭉갠다. 자신의 색은 '언어'라는 화려함으로 치장하기 바쁘다. 마치 무수히 찍힌 점들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었단 '쇠라'의 그림처럼 가까이 가서야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랑의 실체는 이와 비슷하다. 이론적인 현실 속에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랑의 거리'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사랑은 적절한 거리의 침묵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o'님은?

삶의 모든 흔적 때로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는 듯한 책들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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