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김형수 |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아시아 | 2014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30분이나 방황했다.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며, 수첩에 손으로 꾹꾹 옮겨 썼다. 그리고 다시 읽으며 그 문장이 뿜어내는 많은 추억과 생각의 파편들을 곱씹고 보니 30분이 흘렀다.

“오늘 이야기는 프롤로그에 속하는데,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피력하는 자리라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위의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책의 깊이나 가치는 제외하고, 그저 무슨 책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30분이나 방황한 후의 내 가슴은, 이 책의 서평을 ‘글쓰기로만’ 쓰지 말자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선물’이란 단어가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인간은 흔들리면서, 뼈아프게 후회하면서, 자기 성찰의 낯 뜨거운 시간을 견디면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

“종소리는 아무런 글자도 싣고 오지 않아요. 그런데 울려오는 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과 마찰이 되면서 어떤 느낌을 안겨다 줍니다. (...) 시는 언어를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다루듯이 다룹니다. 건반이 배,고,파 하고 말하지 않지만 듣는 사람이 거기에서 오래 굶은 자의 슬픔을 전달받는 거예요."

뼈아프게 후회하기, 낯 뜨거운 자기 성찰의 시간, 그런 것들이 쌓여 우리의 삶이 조금씩 완성되어간다는 말들을 읽었다. 이 말들이 나의 마음과 마찰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을 멈춘다.

“겉으로 보이는 숱한 현상들이 섬세한 사유의 ‘체’로 걸러지고 전형화의 대패질에 벗겨져 나가 마침내 속을 드러내게 된 논문과 문학작품으로 변했을 때에야 비로소 쉽고 명쾌하며 의미 깊게 다가오지요.”

2월의 첫날, 일기장을 펼쳤을 때 ‘선물’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한 달을 또 선물 받았다. 1월은 너무 갑작스레 찾아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아닐까 후회하며 2월의 첫날을 조심스레 펼쳐 보았다. 1년이라고 하면 길게 느껴져 지루해지지만 1년을 다시 열두 달로 나누어 이렇게 한 달씩 선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새롭다. 1월의 부족한 점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란 지루함, 권태로움도 사라진다. 몇 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2월 1일이지만, 위의 문장에서 말하듯, 나의 ‘사유의 체’로 걸러진 하루는 반복된 2월 1일이 아닌 특별한 ‘오늘’로 다가왔었다.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놀라운 측면은 글 쓰는 행위 안에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이 숨어 있다는 겁니다. (...) 낡은 사회의 가장 구체적인 산물인 나 자신이 새로운 나로 태어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하고, 이 글쓰기가 세계에 대한 인식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장차 위대한 작가가 될 꿈이 있거나 말거나, 적어도 전인교육을 실시하려면 학생들에게 글쓰기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글쓰기 열풍 시대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글쓰기 관련 책도 많아졌고 블로거의 글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결국 내가 이렇게 나를 알고 싶고 글을 쓰며 마음을 헤아렸던 것이 알고 보니 나의 의지가 아니라 유행하는 옷을 좇아 입었던 것에 불과했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기운이 빠지긴 했다. 나의 생각이라 믿었던 것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주입한 남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거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가 보상도 없고 출세도 보장 안 되는 죽음의 길이라고 썼다. 이 책의 저자도 ‘풀과 나무’에 빗대어, 문학의 길이 얼마나 더디고 먼지 말한다.

“봄에 싹이 돋을 때 풀과 나무는 떡잎 상태로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오뉴월이 되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나무를 덮어버리지요. 그런데 가을이 되어서 찬바람이 불면 풀은 말라서 소멸하기 시작하고, 겨울이 오면 완전히 모습을 잃어서 이듬해 봄에는 무의 상태에서 다시 떡잎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그에 반해 나무는 풀보다 성장하는 바가 훨씬 더뎌 보이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와도 존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속 움츠러들지만 자신의 몸에 나이테를 남겨서 이듬해 봄이면 전년도에 성장한 자리에서 다시 싹을 돋우지요. 이 때문에 풀은 숲이 되지 못하고 나무는 숲이 됩니다. 문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풀의 길을 가는 자는 소멸할 것이고 나무의 길을 가는 자들이 숲을 이룹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지 두려울 때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이 겨울을 이겨내면 분명 그만큼 나는 성장해 있을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견디어 보자,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과거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좌절을 반복해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 나와 내 친구를 위해 편지를 써 주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방송에서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나와 친구에게 전해주셨다. 그때 나는 마음을 선물 받았다.

“글을 쓰는 과정이 단지 생각을 글자로 베껴내는 과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새로운 자기로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평을 쓰며 내가 오늘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된다. 이 서평을 쓰기 전의 나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나로 깨어난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reella'님은?

책과 글을 사랑합니다. 책은 저의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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