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이후》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

 


도널드 R.프로세로 | 《공룡 이후》 | 뿌리와이파리 | 2013


1억 년이나 넘게 종을 유지하며 중생대를 대표했던 공룡은 상업적으로나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나 크게 성공한 ‘아이템’이다. 특히 공룡의 멸종이 6,500만 년 전에 있었던 운석 충돌과 연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대중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고, 관련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렇듯 지대한 관심에도 공룡의 직계 후손이 우리 눈앞에서 보란 듯 생존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또한, 거대한 비조류 공룡들이 멸종한 덕분에 우리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지구를 점령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의 관심 밖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빙하 시대이며 인류 문명의 역사는 빙하 시대 사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따뜻한 시기인 ‘간빙기’가 1만 년 정도 특별하게 연장된 덕분에 꽃 피웠다는 사실 또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듯하다. 공룡 덕분에 백악기, 중생대, 고생대라는 지질학 용어는 일반인들의 귀에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흔해졌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신생대라는 말은 왠지 낯설고, 신생대를 다룬 책도 중생대나 고생대를 다룬 책보다 드물다. 그렇기에 도널드 R. 프로세로의 『공룡 이후』라는 제목은 더욱 눈에 띄며 발견자의 침체한 호기심 세포를 빠르게 자극하기 충분하다.

비조류 공룡이 멸종한 이후 6,500만 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온난화와 한랭화가 번갈아 찾아오면서 현재의 사막이 사바나나 초원이 되었던 시기도 있었고, 현재 사람이 살기 적당한 곳이 빙하로 뒤덮여 불모지가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다양한 생명체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멸종과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약 200만 년 전에 시작된 플라이스토세의 빙하 시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기후학적 증거에 나타난 바로는, 보통 ‘간빙기’(빙하 시대 중 기후가 따뜻한 시기)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빙하 주기에서 겨우 1만 년 정도만 지속한다.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찰나’에 버금가는 이 ‘1만 년’ 덕분에 인류의 문명은 지금과 같은 화려함을 뽐낼 수 있다. 만약 그 1만 년이 없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아직도 돌도끼를 들고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을 것이며,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동굴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오늘 잡을 사냥감을 위해 열심히 돌을 갈고 있을지도. 믿기 어렵지만 인류의 문명은 우연한 결과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1만 년의 간빙기 와중에도 소규모의 온난기와 한랭기가 있었고, 그러한 기후 변화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홀로세에서 가장 따뜻했던 시기인 BC 5000~BC 4000년에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계곡, 중국의 위대한 문명(황허 문명)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BC 1200∼ BC 800년에는 기후가 다시 변하기 시작했고 앞서 문명이 꽃피웠던 지역 곳곳에 홍수와 가뭄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연재해를 신의 분노로 재앙이 닥친 것이라 해석했지만, 사실은 기후변화가 그 원인이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미케네나 마야 문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세에도 기후변화는 계속되었다. 기후변화는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만이 ‘비참한 14세기’라고 일컬었던 대기근을 불러왔고, 30년 후에는 흑사병을 일으켜 유럽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따뜻해진 그린란드와 래브라도 반도에 정착했던 바이킹족은 다시 찾아온 기후변화 때문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전멸했다. 지구의 기후는 19세기 소빙하기를 끝으로 온난화에 들어섰고 이후 거의 2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이 꽃을 피웠던 축복받은 간빙기, 그 1만 년의 짧고도 긴 시간의 끝은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그것이 문명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다면 우리의 문명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연간 1만 7,000종에서 많게는 연간 10만 종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고생물학자들이 추정한 ‘기본’ 멸종 속도, 다시 말해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때의 멸종 속도는 4년에 1종꼴이다. “심지어 ‘5대 대멸종’의 멸종 속도도 이보다 10배 이상 높지 않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이 자연을 무지막지하게 착취한 응분의 결과이다. 리처드 리키와 로저 르윈은 이를 ‘여섯 번째 멸종’이라고 부른다. 정말 영광이지 않을 수 없다.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격변기를 직접 체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 꽃피운 문명을 뒤돌아보며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자부한다. 그러나 시간에는 당할 자가 없듯이 그러한 이들도 우주의 길고 큰 역사 속에 묻혀버렸거나 묻힐 것이다.

우리 또한 지구와 태양의 종말이 오기 전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는 이상 다사다난했던 인류 역사의 장을 마칠 것이다. 우주가 탄생하고 수많은 은하와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긴 역사에서 우리 은하에 적당한 크기와 밝기의 태양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적당한 거리에 지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혹독한 빙하 시대 중 잠시 따뜻했던 기후 덕분에 번창한 인류 문명을 보면 우리의 존재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다름 아닌 ‘우연’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경이로운 우주의 놀라운 모든 것들이 이 ‘우연’ 속에서 탄생하고 ‘우연’ 속에서 죽었다. 우리의 삶 또한 ‘우연’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우연’ 덕분에 화사하게 꽃 핀 우리의 문명이, 이번에는 ‘우연’이 아닌 인류의 오만방자함이 불러온 ‘필연’ 때문에 시든다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모든 문명은 홀로세라고 하는 짧은 온난기의 산물이고, 우리는 지금 그 홀로세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그 끝은 너무 더울수도, 또는 너무 추울 수도 있다. 우리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자연이 앞으로도 계속 호의적이리라는 가정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본문 중)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노래하는다롱이'님은?

책과 함께 하는 삶은 지루하지 않아.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27 28 29 30 31 32 33 34 35 ··· 30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