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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