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원색 그림의 본색 - 그림 동화 작가, 로저 멜로

 

 

 

어린이 책이라는

아주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흥미로운 일러스트 전시의 막이 올랐다. 브라질 출신의 그림·동화 작가, 로저 멜로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린 것.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수상 직후,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던 차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한낮 미술관을 찾았다.

Editor_김민경

 

 

2014 안데르센상 수상

로저 멜로. 국내에선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타국에서는 어떨까. 그는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림 작가 중 한 명이다. 아동문학계의 ‘작은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것은 올해 초 일이다. 수상 직후 로저멜로는 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동문학계에서 ‘안데르센상’이 차지하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상을 수여하는 협회 측은 수상자 선정에 만전을 기한다. 기본적으로 아동, 청소년 문학에 지속적으로 공헌해온 작가여야만 하며, 현재까지 작가가 완성한 모든 작품을 평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여타의 상과는 '급'이 다른 셈이다. 어린이 책 작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그와의 첫 만남. 늦었지만  짧은 축하 인사로 반가움을 표했다.

 

“수상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상을 수여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협회입니다. 설립자인 옐라 레프만은 어린이 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죠. 그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이 상이 제게 더 의미있죠. 안데르센은 제가 본받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행가이며 사상가이자 상상의 세계를 연구하는 작가로서,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멋진 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죠.”

 

 

그림책을 탐험하다

로저 멜로가 지금껏 펴낸 책은 100여 권에 다란다. 그중 22권의 책은 직접 글을 썼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대부분 그림으로만 구성되었다. 페이지를 한가득 매웠던  그림들은 이번 전시를 빌어 ‘책’을 탈피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는 전시장 곳곳에 ‘하나의 작품’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전시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그림책이라 볼 수 있어요. ‘근대 미술’을 하는 이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책과 전시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보다, 거대한 또 하나의 책 안으로 들어간다고 접근해 보면 좋겠어요."

애당초 그림이 책이란 틀을 벗어나게 됐다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림을 ‘작은 책’이란 공간에서 꺼내어 더 '큰 책’(전시장)에 배치했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책 속을 맘껏 거닐고 만지며 ‘체감’하는 게 가능토록 하였다.

 

 

    

                (좌 - 마리아 테레사)                                        (우 - 피레네폴리스의 가면 축제)

 

 

                                                                                                                        

그림에 깃든 고유의 문화

그림을 면면히 살펴보면 작가가 브라질 출신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남미 특유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은 작가에 의해 과감히 사용되어졌다. ‘푸름’을 표현할 때, 그는 어두울 정도로 짙고 선명한 파란색을, ‘붉음’을 표현할 때는 브라질의 날씨마냥 열기가 느껴지는 새빨간 색을 거칠게 펴 발랐다. 원색의 구성 요소들은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특성이 작가가 태어난 브라질의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

 

“브라질은 알다시피 다문화 국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죠. ‘다름’ 그 자체는 요즘 브라질 문화 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죠. 다름이란 여러 모로 긍정적인 측면을 내포하는데, 인간 존재로서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하나의 객체로서 우리를 좀 더 도전적으로 만들어 주지요.”

 

그림 속 녹아든 브라질의 전통 문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흥미롭게 여겨진다. 이는 장소를 불문한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그림 책을 넘기며 브라질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타국의 문화를 접하기에 로저의 ‘그림 책’은 더없이 훌륭한 ‘매체’로써 기능한다.

 

 

 

(좌 - 일어나 일어나 소야)               (우 - 맹그로브 소년)

 

 

그들의 삶도 동화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실 작가는 인류의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외로움, 브라질의 문화 문제, 아동 노동 착취 등 사회적인 문제도 풀어낸다. 맹그로브 숲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철’ 생산 공장에서 뜨거움을 견디며 일하는 어린이의 생활상 등이 그러하다.

 

“어린이 책이라는 것은 아주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브라질은 독재 정부 체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어떠한 ‘금서’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됐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어릴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책은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죠. 반대로 생각해 보면, 책이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책은 일상이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야 만 합니다. 만약 열악한 가마터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맹그로브 숲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일상도 그림책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세상의 일부라든지 시민이라는 생각 자체를 갖지 못할 거예요. 아이들은 나의 인생은 동화 에서는 제외된 소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외치고 있었다. "여기 이 아이들도 세상의 일부랍니다." 로저 멜로는 어떠한 변화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이라 전했다. 이같은 생각을 책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그는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부드럽게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렇다면 그림이 ‘텍스트’보다 유용한 점이 무엇일까. 그에게 물었다.

 

“책은 언제나 이미지와 글자의 통합체였습니다. 서술적 이미지와 글자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다가갈 방법이라 믿습니다. 책에는 언제나 그림이 있었고, 글자가 의미전달 수단으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책이 필사되어 전해지기 이전 시대부터 그림은 존재했습니다."

 

그림이 ‘origin’ 한 것이란 말인가. 어찌 됐건 좋다. 그의 메시지를 어린 친구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 더군다나 그림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과정. 이러한 경험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굴한다는 사실에 토를 달 여지가 없다. 끝으로 인터뷰 말미. 작가가 남긴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 본다. 책과 기술의 대립에 대한 대화 중, 기술에 의해 사람들이 책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오갈 쯤이다. 짧지만 강한 그의 답변이 마음에 스친다.

 

“사람들 모두 입 모아 말합니다. 책이 위기라고요. 하지만 이때에 우리는 책 얘기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회인거죠. 기술이 마치 책과 경쟁하는 인식이요? 이것이 어찌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책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합니다. 이같은 현상은 책을 위해서도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닙니다.”

 

 

본색의 진화

원색 그림의 본색. ‘본디의 특색이나 정체’는 작가가 그토록 사랑하는 브라질일 수도, 소외된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 혹은 피터 팬을 꿈꾸는 소년일지 모른다. 로저 멜로의 그림에 대해 본색을 규정하기에 아직은 그 시기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작가는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본디 빛깔이나 생김새’는 진화를 거듭할 예정이다. 물감, 붓, 책에 의해 완전한 형체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를 로저 멜로는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멋지지 않은가! 앞으로 그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한낮 미술관에서 그와의 만남. 잠깐이었지만 작가와 그림과 책과 문화를 논하던 시간은 이내 유쾌함으로 각인되었다. 로저의 그림처럼 강렬하고 여운이 짙다.

 

 

 

작가의 새 책_《실 끝에 매달린 주앙》(나미북스)

 

 

최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로저 멜로의 책이 출간되었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은 밤에 홀로 남아 잠을 자야 하는 어린이 ‘주앙’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불 속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주앙에게 이불은 온 세상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데…. 작가는 어린 소년의 두려움을 경쾌하고 발랄한 상상으로 풀어냈다.

 

이불 속에서 발장난을 치자 지진이 일어나요! 하늘로 솟은 산등성이가 순식간에 산골짜기로 바뀌어요. 그러는 동안, 이불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에서는 지진에 대비할 방법을 찾아요. 거인 주앙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본문 중에서)

 

 

 

 Tip_ 로저멜로 한국전

동화의 마법에 홀리다!

읽기만 하던 책에서 벗어나 책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작가가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작업했던 그림책 원화 88점은 물론 한국전을 위해 작가가 특별 엄선한 30여 점의 원화 및 스케치. 아이디어북과 브라질 소품 등을 선보인다. 책 속 그림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공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기간: 2014년 9월 19일(금) ~ 2014년 10월 15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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