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벗과의 대화》 - 대화가 필요해

 

 

 

 

안대회 | 《천년 벗과의 대화》 | 민음사 | 2011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밖에 없다. 뭐든 말해야 안다. 친구라면 더 그렇다. 대화를 통해야만 정(情)도 쌓인다. 《천년 벗과의 대화》는 한문학자 안대회가 서재를 통해 사귄 벗들의 이야기다. 안대회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친구들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였다. 주로 삶의 구석진 부분을 얘기한다. 불평불만도 다 들어줬다. 친구니까. 그리고 약 10년 동안 쓴 칼럼을 모아 《천년 벗과의 대화》에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을 친절하게 풀어놓는다. 

 

《천년 벗과의 대화》에는 안대회가 바라본 면면이 있다. 이름 정도 들어봤을까 싶은 조선 후기 문인들, 이름조차 낯선 노비의 일화, 대다수가 고리타분한 고전이라고 팽개쳐둔 이야기들. 안대회는 어떤 사람이든 자세히 본다. 누군가가 외면한 삶은 한 번 더. 할 일 없는 시골 생활 중에, 눈에 보이고 마음속에 생각한 것을 설마 남이 보겠나 하고 써서 모은 것. (세이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중에서, 221쪽)까지. 덕분에 독자는 시대를 초월하여 친구가 생기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새삼 ‘교훈’이라는 걸 얻는다. 

 

“책상 위로 책을 높게 쌓아 놓을 처지가 못돼 머슴 어깨에 한 짐 얹어 오느라 몸이 바스러진다. 멋진 손님 모셔 오기가 왜 그리 더딘가? 이름난 꽃을 옮겨 달라 애걸하기 어렵구나. 부자 놈들 서재에 가득 쌓아 놓은 것 얄미우나 해를 넘겨 읽게 해 준 우정에는 정말 감사하네. 신령한 마음과 지혜를 키우려 하는데 석양빛은 너무 쉽게 마루 아래로 내려가네.” (‘서오생의 책 사랑’, 98쪽) 

 

친구들 사이에선 ‘서오생(書娛生)’이라고 불렸던 정조~순조 때의 시인 이명오의 시다. 《천년 벗과의 대화》에서 애서가 친구들이 ‘책’을 말할 땐 저마다 물 만난 고기 같다. 책이 귀했던 시대이니 만큼 그들에게 책은 ‘멋진 손님’이고 ‘이름난 꽃’이다. 읽을 책이 넘쳐나는 오늘날, 나는 ‘멋진 손님’을 모시기 위해 애쓴 적이 있었던가, ‘이름난 꽃’을 몰라보고 함부로 꺾어 버리진 않았나 반성해본다.   

 

“선조 때 일본에서 공작새 한 쌍을 진상하여 서울 사람들이 새를 구경한다고 남대문에서 한강까지 도로를 메운 소동 사건이 일어났다.”
“명의 장수와 일본의 중이 안경을 쓰고서 가는 글씨를 잘 읽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조선에는 안경이 없다.”
“태종 때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의 섬에 방목하자 수초를 먹지 않고 울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세상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에만 사로잡혀 작은 지식으로 천하의 온갖 이치를 다 파악하려 하니 될 일인가?” (‘잡학의 발견’, 185쪽)

 

학자 이수광(1563~1628)이 편찬한 《지봉유설》에 등장하는 기사들이다. 무심코 ‘좋아요’를 누를 뻔했다. 양질의 문장으로 ‘타임라인’을 채운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사실 당대 순수 학자들에게는 외면받은 책이다. ‘잡학’이라고 치부됐었다. 《천년 벗과의 대화》에서 안대회는 《지봉유설》을 명저로 소개한다. 눈 밝은 친구가 자신 있게 추천했던 책들은 대부분 훌륭했다.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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