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타인과 사이에 늘 말을 두었다. 이해하길 바랐고 이해되길 바랐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계엔 점차로 말이 늘어갔다. 침묵은 허용되지 않았다. 말 없는 침묵이 이해보다 오해에 더 가까워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말에 근거를 둔 이해를 구했기에 그렇다. 심지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이를 테면 눈짓, 표정, 움직임, 촉감, 말이 아닌  소리들까지 때마다 말로서 붙잡고 설명해 어떤 의미로 남기느라 애를 써댔다.

 

이로써 모든 건 이전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다른 게 돼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기어이 어떤 말을 찾아내려는 방황을 계속해갔다. 내 안의 무엇을 꺼내려 입 밖에 내뱉은 그 말이, 말이 된 순간 그것과 무관해지는 절망적인 체험을 거듭하면서도, 침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덧칠해놓은 말들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뒤틀리고 망가져 나로부터 타인을 멀어지게 했는지 재차 확인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말은 놓지 못했다. 침묵이 오해된 이후로(이유로) 언어는 이렇듯 오용되기만 해왔다.  

 

   우리는 묵상에 잠기지 못하고, 서로의 품안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사랑 속으로ㅡ말없는, 마법에 걸린, 향내 나는, 가식 없는, 아연하게 만드는, 우리의 포옹들이 반쯤 열어놓은, 직접적인 의사 소통 속으로ㅡ잠겨들어가지 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말을 했을 뿐이다.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어둠 속에서,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난로의 붉은빛에 잠겨,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에 값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관심, 진정한 비참함, 가련한 몸짓이었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입 밖에 낸 말이나 판단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집착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자기 이야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끌어내는 데 열중했는데, 그런 짓은 뒤틀린 것이었다. (80쪽)

 

나는 아마 닿지 못할 것이다. 눈치 채지 못했으나 줄곧 기다려온 《은밀한 생》에.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통해선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침묵과 그 안에서 가능해진 이해 그리고 소통,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바쳐진 《은밀한 생》에 대한 이 매혹을, 어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매혹된 채로, 드러나고 숨겨지고 소리 내고 침묵하고 나아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단 한 곳으로 철저히 향하고 있는 탐색의 길에, 흩뿌려진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매복되어 있는 치밀한 사유, 다만 퍼즐처럼 주어진 삶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집요하게 주워 끝내는 그것을 통째로 만져보기 위한 무도한 헤맴을, 고통스럽게 즐거운 이 독서를 언제까지고 놓지는 못할 것 같다.  

 

… 사랑이 마치 열쇠처럼 갑자기 소통 불가능한 것을 열어젖히곤 했다. 마찬가지로 책들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들일 경우 영혼의 방어물은 물론 갑자기 허를 찔린 생각의 성벽들을 모두 허물어뜨린다.
   마찬가지로 벽에 고정된 유명한 그림들도, 그것이 찬탄할 만한 것들일 경우 문이나 창문, 유리 창구, 성벽의 총안 등등보다 더 벽을 열리게 한다.
   음악이 자신을 넘어서 심장을, 호흡을, 최초의 분리를, 그에 수반된 근본적인 괴로움을, 그리고 일생 동안 그 분리에서 생긴 기다림을 뒤흔들어 스스로의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49쪽)

 

… 나는 하찮은 문장의 반복, 실패한 농담의 되풀이, 끝마칠 수 없는 바보 같은 말의 재탕의 재탕의 재탕이 드러내는 내면의 우스꽝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내가 생각해낸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말을 삼가는 것이었다. (7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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