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데이비드 리스, 《연필 깎기의 정석》

 

데이비드 리스 | 《연필 깎기의 정석》 | 프로파간다 | 2013

 

연필 깎기. 여태껏 저는 주로 기계의 힘을 빌려왔습니다. 그 편이 안전하고 모양도 매끈하게 나오니까요. 손을 쓴다면 사실 잘 못 깎는 축에 속합니다. 부러뜨리기 일쑤에 못생긴 결과물은 또 어떻고요. 어릴 때는 그래서 연필 잘 깎는 사람이 존경스러웠어요. 커터칼만 있으면 기계보다 완벽한 솜씨를 뽐내는 친구가 반에 꼭 한두 명은 있잖아요. 그 애들이 당시 제 눈에는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처럼 보였습니다. 다들 뭐하고 살까요? 지금도 교실 한 구석에서 연필을 깎고 있지는 않을 테고…… 어디서든 연필 깎듯 삶의 일부를 연마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필 깎기의 정석》은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여도 좋고, 제목 그대로의 책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안내서를 어떻게 써 먹든 사용자의 마음이니까요. 책의 목차는 실로 안내서답게 그 구성이 분명합니다. 준비물부터 연필을 깎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의 응용, 연필 깎기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유명인처럼 연필 깎는 기술, 심지어 부록에서는 연필 맛 와인을 소개하기도 해요. 잡다한 정보가 꽤 많은 듯 보이지만 이 책은 어쨌거나 시종일관 《연필 깎기의 정석》에 충실합니다. ‘연필 목 베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과감한 전략’에 이르러서는 예의 존경심이 되살아날 정도였죠. 저자의 말에 의하면 연필 목 베기는 “연필의 촉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치명적으로 손상돼 있는 경우”에 권할만한 방법으로 “농양이 생긴 치아를 뽑는 것”(101쪽)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요.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는 모종의 과감함이 요구된다는 걸, 저자는 이런 식으로 알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이 절차를 치르고 나서 상실감이나 자괴감이 든다면, 잠시 이마의 땀을 닦고 엘리너 와일리(Elinor Wylie)의 「나의 영혼에 부치는 시」에 나오는 아래 시구를 암송하며 침착을 되찾도록 하라.

 

   “꾸밈없는 담흑빛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가
   숙명의 포물선을 그리며
   폭풍우 속에서 균형을 잡네.”

 

   “숙명의 포물선을 그리”는 연필 촉이 곧 나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면, 우울한 기분은 어느새 성취감으로 바뀔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
   새로운 촉을 만들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방금 자른 연필의 절단면을 사포로 문질러 깔끔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한때는 손상된 상태였던 연필이 마치 흠잡을 데 없는 새 연필같이, 박스에서 막 꺼낸 앞날이 창창한 연필같이 보일 것이다!
   이제 새로이 연필을 깎아도 좋다. (10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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