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쓴 윤상의 편지 To: -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

 

윤상,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 엘컴퍼니, 2009


‘윤상의 2555일 동안의 포토 에세이’라. 1990년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윤상은 ‘대중 음악’에서 ‘대중’보다 ‘음악’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뮤지션이다. 윤상은 그만의 분위기가 있다. 조용히 말투,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 그리고 언제 어디서 들어도 ‘이건 윤상이다’라고 느껴지는 음악까지. 그중 윤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에 열광하지 않더라도, 오래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는 동안 윤상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음악을 선물했다. 쉽게 쌓을 수도,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 믿음이다. 



사진제공 엘컴퍼니 ⓒ김기홍


책장을 넘기는 제법 근사한 사진이 나온다. 어느 길 귀퉁이, 담배 하나 물고 잠시 쉼을 찾고자 했으나 걸려온 휴대폰 전화로 인해 잠시도 쉴 수 없는 사내와 그 곁에서 여유롭게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윤상. 정장의 사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스미스’처럼 보이고, 바바리코트를 입은 윤상은 우리들 상상 속에 존재하는 뉴요커처럼 보인다. 근사하다. 또 도심을 가르며 낮게 나는 비행기,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수백만의 조명으로 장식된 미국의 야경 사진 등은 그의 유학생활을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 이런데서 공부했으면 그 정도 음악은 해야지’란 생각도 든다.

‘PROLOGUE’를 거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윤상의 글과 김기홍(오드 뮤직 대표, 사진 촬영)의 사진은 창공을 날다 착륙하는 비행기처럼 바닥에 낮게 깔린다. 2002년 결혼 직후 보스턴에 자리를 잡은 곳은 당시 김동률이 살던 집. 그런데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아파트 사무실에서 신원보증 서류를 잃어 버려 한참을 고생했고, 바다가 보인다는 집은 이국적인 풍경은커녕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시끄럽기만 했다. 또 이미 약속된 장학금은 입학 허가에 필요한 실기 오디션을 거쳐야만 줄 수 있다는 학교의 ‘배신’에 ‘당장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한다.

시간만큼 좋은 약이 있으랴.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차 유학생활도 익숙해진다. 전자음악의 역사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 주던 버클리 음대 교수 Dr.B, 1950년대 만들어진 기타를 만날 수 있었던 뉴욕 웨스턴 14번가에 위치한 기타 센터, (음악, 영화, 만화 등) 마니아 취향의 아이템들이 모여 오감을 충족시켜주던 상점, 그리고 길거리에서 이방인의 쓸쓸함을 위로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무명의 뮤지션들까지, 윤상은 ‘MUSIC’이란 관대한 범주 안에서 만난 사람들, 것들과 함께 시간들은 채워간다. 그리고 계획지도 않았던 NYU(뉴욕 대학) 대학원에 입학을 한다. 



사진제공 엘컴퍼니 ⓒ김기홍


윤상의 이야기는 소소하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뭔가를 품고 있지 않다. 학교생활 외에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지쳐 말다툼을 했던 아내와의 이야기,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 한 번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안겨준 아이들, 사람들은 맞이하기 위해 손수 숯불구이를 만들던 윤상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그는 자신이 아끼는 악기 이야기,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데뷔 전 고 김현식을 만나게 된 과정과 이후의 음악적 여정,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영상에 음악을 입히던 기억들까지 들려준다. 책의 제목과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 보내는 윤상의 일기이자, 편지이다.

유학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 중에 가장 여유롭던 시간들 속에서조차, 마음속에서는 항상 조급했고 불안했고 바빴다. 음악과 관계되지 않은 일들은 언제나 뒤로 미루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하고, 그런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의 하나는 정말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 음악을 통해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 놓을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p. 29 ~ 30, ‘PROLOGUE’)

덧붙이는 말. 책에는 윤상이 과제물로 만들었던 음악 CD가 함께 담겨 있다. 이는 그가 유학 시절 흘린 땀의 성과이자, 6집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흔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자음 속에서도 그가 느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

[윤상의 6집 음반 1번 트랙 「떠나자」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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