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출근길> -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라!


 


법륜 | <행복한 출근길> | 김영사 | 2009

 
오전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이 지겹다. 일을 시작한지 3년 하고도 3개월. 도대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1년간 책만 읽고 싶다, 여행도 가고 싶다, 회사가 언젠간 망할 거 같은데 이직 준비라도 해야 하나?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오늘도 하루가 간다. 번민과 불안이 부침을 거듭한다. 얼굴이 갈수록 탁해지고 몸은 감기에 걸린 듯 무거워졌다.

일이 즐겁지 않으니 인생이 답답하다. 마음은 불만투성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돈과 명예를 쟁취할 것을 요구하는 작금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자본에 빌붙는 정부와 정치권이 혐오스럽다.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좋은 회사에 면접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 사회도 밉다. 모든 인간이 공정하게 존중받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몽상가 취급했다. 현실은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쓸데없는 책은 그만 보고 다른 자기 계발도 하라는 충고까지 덧붙였다. 친구들이 왜 이렇게 세상을 좁게 바라보는지, 운명론적 사고에 젖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은 항상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 왜 그들은 현실을 감내해야만 할 고정된 시공간으로만 바라보는가.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따금 외로웠다.

늘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 신경 쓰지 않았다. 돈도, 명예도, 지위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매순간 내가 해야 했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적당히 놀았고 연애도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직장도 잡았다. 직장에서도 내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다. 저축도 또래에 비하면 꽤 많이 했다. 적어도 물질적으로 궁핍하진 않다.

하지만 나는 항상 비관주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인생이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느낀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늘 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탓했다. 나를 장벽처럼 둘러싸고 굽어보는 세상이 두려웠다. 돈에 목메는 인간 족속들을 냉소했지만 나도 따지고 보면 그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존재의 분열과 모순이 감당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나를 괴롭혔다. 얼마 전에 육촌 동생에게 이런 말까지 들었다. “오빠는 겉으로 보기엔 정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사고가 뒤틀려 있는지 모르겠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가 뭐라 하던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안다고 확신했으니까....

하지만 법륜 스님의 《행복한 출근길》을 읽으며 나 자신을 뼛속까지 꿰고 있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괴로움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르시스트적인 자아가 나를 옥죄는 멍에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의식이 강한 자는 대부분 자존심이 세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매순간의 결심과 선택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허례허식에 얽매이고 외부에 구속당하는 걸 싫어한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고집도 세다.

직장생활의 비극과 스트레스는 이러한 자아로부터 파생된다. 직장 생활과 자존감이란 대부분의 상극 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성질 다 부리면서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너나 상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직원은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 말로는 소통을 외치지만 개개인은 엄격한 분업 시스템과 수직적인 직위 체계 속에서 부품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인격을 무시하는 상사의 잔소리와 지적을 무덤덤하게 견딜 줄 아는 감정 노동도 필수다. 나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속으로 혼자 앓아왔다. 나 자신을 바꾸기보단 나를 둘러싼 상황만 탓하면서, 이런저런 불평만 잔뜩 쏟아댔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무겁고 현실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모든 게 욕심 때문이라고 책은 말한다. 뼈아픈 정문일침이다. 그동안 직장에서 나오는 월급, 직장이 있다는 안정감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누릴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 다른 꿈과 목표까지 이루려고 했다. 전부 다 날로 먹겠다는 속셈과 다를 바 없다. 이러니 인생이 고달프고 불만스럽다.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업무를 완벽히 처리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독서에 서평까지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모든 걸 바득바득 다 하려다 보니 하루가 짧고 몸은 피폐해져 간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겠다는 진지한 엄숙주의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말한다. 생각을 다르게 하라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라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온갖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고학생들이나 취직도 못하고 졸업하는 백수, 백조들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얼마나 행복한가. 일상을 즐길 줄 아는 긍정적 자세로 새로운 목표에 도전했을 때, 실패에 관대해지고 인생이 즐거워진다. 삶이 별 거 아닌 줄 알고 하루하루 그저 열심히 살아갈 때 삶은 비로소 위대해진다. 인생을 대충대충 가볍게 살라는 게 아니다.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꿈을 꾸라는 것이다. 법륜 스님의 법문은 이처럼 알고도 몰랐던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힘이 있다.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이것도 잘해야지, 저것도 잘해야지, 이런 게 욕심이라고 스님은 일갈한다. 이걸 하려면 저건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이치를 거스르는 욕심이 인생을 고통스럽게 한다. 내가 딱 그랬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세상사 다 짊어진 듯 심각하게 굴던 내 자신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리 초조했던 것일까. 몸과 마음에 쌓인 번뇌의 더께를 걷어내고 조금 더 큰 소리로 웃어도 됐으련만.

당장 직장을 그만두진 못할 것이다. 돈을 벌 수 없다는,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지금껏 얻어왔고 앞으로도 얻게 될 이점들도 쉽사리 포기하기 힘들다. 그래도 이젠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마음고생을 했는지 정도는 명확히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바꾸는 수련이 필요하다. 이상 신호가 오면 즉시 물리칠 수 있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사랑하므로' 내 욕망과 목표에 완벽히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은 결국 실현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하지 싶다. 하지만 이 버림은 완전한 유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유예다. 소중한 것들과 언젠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기회는 분명히 올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든 이직을 하든 혹은 꿈꾸던 등단을 하든 결국엔 나의 선택이 나의 길이다.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상황에 휘둘리거나 남 눈치만 살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곧추세워줄 수 있는 가치관이 절실하다.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자학과 불만이 아닌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때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몰킹'님은?
이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길 바라는 비범!한 직장인입니다. 시간 없다는 핑계로 '읽기'만 했던 지난 세월을 후회하며 요즘은 쓰는 데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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